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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Apr 04. 2023

 스코티시폴드라서 슬픈 내 고양이 크림이

미묘 박명일까 노심초사하는 이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예쁜 고양이가 우리 집에 산다. 내 자식 삼았으니 내 눈에는 당연하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예쁘다고 말하니 어느 정도의 객관성도 확보된 사실이다.



보통 고양이 보다 귀가 작고 접힌 크림이는 코티시폴드종이다.

스코티시폴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61년 스코틀랜드의 한 농장에서 돌연변이로 태어난 종으로 1966년 영국 고양이애호가관리협회에 등록되었으나 관절 심장 신장 등등에 많은 유전병이 있어서 1971년 등록이 취소된 종이다. (출처: 두산백과)


이후 유럽에서 정식품종으로 인정받지 못한 고양이가 우리나라에선 유독 인기가 많은데 바로 잠재적 연골문제의 상징인 접힌 작은 귀와 동그란 얼굴이 귀엽기 때문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일명 셀럽들이  입양을 하고 티브이에 등장하고, (그 셀럽들은 과연 끝까지 책임지고 키우고 있을까) 멋모르는 대중에게 수요가 높아지고 동물에 대한 법적 장치가 없는 틈에 장삿속에 빠진 애견샵 등에서 물건 찍어내듯 만들어 내고 있다.

스코티시폴드는 분양도 하지말고  사지도 말자는 구호가 생겨날 정도로 유전병이  심각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책임과  치료 비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이 종을 분양하고 입양할까.


어쨌든  어떤 집에 입양됐던 크림이는 곧 파양 당해 우리 집에 온 것인데, 처음 본  크림이의 작은 귀는 귀엽기는커녕 내 눈엔 어색하고 이상해 보였다. 물론 익숙해지니 크림이의 접힌 귀와 미간주름, 분홍코와 분홍 젤리 그리고  털 빠짐까지 사랑하게 되었지만.

무슨 종인지도 몰랐던  우리는 중성화를 시키고 나서야 크림이가 스코티시폴드라는 걸 알게 됐고  이 종은 다낭성 신부전, 골연골이형성증, 비대성심근병 등의 심각한 유전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만 무를 수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크림이와 사랑에 빠져버렸을 뿐 아니라, 우리 집에 온 이상은 갈 때까지 함께 해야 하는 게 당연했으니까.



                 슬픔의   시작                     


 20년 8월생인 크림이는 21년 2월에 우리 집에 와서 2년 동안 특별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크림이가 온 이후,  쿠키의 주가도 급등했는데 개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보다 개와 고양이의 콜라보가 신기했는지 두 아이들을 보러 우리집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손님의  수가 가파르게 늘었다. (덕분에 주기적으로 강제  집청소를 했다~  고마워 내 새끼들♡)

또한 개보다는 고양이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우아한 하얀 고양이 크림이에 대한 호기심이 대단했다. 사이좋은 오누이 쿠키와 크림이가 있는 집은 가족들에게도 힐링 그 자체가 되어 크림이가 온 이후 쿠키크림이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취미가 되었고 밖에 나가면 얘네 둘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 일찍 귀가했다.


내 가족 친구 지인들 모두가 사랑해주는  쿠키와크림이


그런데 두 달 전 2월의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크림이의 구토소리에 잠이  깼다.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 바로 내 귓가에서 웩웩거렸다.  안간힘을 쓰며 토하려는 크림이를  얼른 바닥에 내려놨다. 고양이의 구토는 흔한 일이라 해도  온몸을 비틀며  물과 사료가 섞인듯한 토를 두 번이나 크게 하자, 느낌이 좋질 않았다.

작년 10월 11월에  변비와 감기로 네댓 번 병원을 다니면서도  크림이가 너무 사납게 굴어서 피검사를 못한 게 맘에 걸렸다. 단골 병원은 일요일엔 진료가 없으므로 불안한 맘을 달래기 위해선 과잉진료를 하는 줄 알아도 그곳,  고양이 전문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피검사를 꼭 해봐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피검사를 해달라는 내 요구에 수의사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니 일단 항구토제를 맞고 약을 먹다가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피검사와 정밀검사를 하러 다시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피검사를 고집하자 제대로 피검사를 하려면 항목별로 다해야 한다며  컴퓨터화면을 보여주는데 피검사 항목마다  가격이 명시돼 있었다.

ㅡ기본 혈청검사 132000원을  비롯해  십수 가지 항목에 55000원 30000원 등등  아주 친절한 가격표가 붙어있었는데 그걸 다하면 70~80만 원 정도가 될 것 같았다.  동물병원을 여기저기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결국은 췌장과 신장 상태  그리고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몇 가지 피검사만 골라하기로 했다. 10여분 후 보라색 지혈붕대를  얇은 다리에 질끈 감고 크림이가 나왔다.  귀여워서 달래주는데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다.


흥분하면 코기 빨개지는 이쁜 내 새끼, 화가 나있다.


심각해요. 당장 입원해야 합니다

피검사도 필요 없다던 수의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ㅡ네???입원이요?

ㅡ신부전이네요. 수치가 많이 좋질 않아요. 엄마 촉이 맞았어. 일반혈액검사 등 모든 항목의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 신장 초음파를 찍고

수액을 맞아야 해요. 입원은 기본 3~4 일은 하면서 지켜봐야 하고 경과가 좋으면 수액을 계속 맞는 게 좋아요. 피검사는 매일 해볼 거고요.

ㅡ 이 가느다란 팔에서 피를 매일 뽑는다구요??(또 다른 학대 아닌가요)


신장수치는 상당히 안 좋았다.

신장 상태를 보여주는 bun과 crea수치가 시뻘건 색으로 올라가 있었다.

이제 두 살 반 크림이가 걸릴 병이 아닌데.  

고양이가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많이 걸리는 질환이 신부전이란 건 알고 있었고 어느 브런치작가님의 신부전  투병 중인 냥이얘기에 눈물을 쏟은 적도 있었지만 보통 7살 이후의 노령묘에 해당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제 막 수의대를 졸업한 듯 앳되보이는  의사의 말을 믿고 집 밖에만 나와도 예민해지는 가엾은 크림이를 이 차가운 병원에 혼자  순 없었다. 피검사도 내가 우겨서 한 거라 솔직히 신뢰도 가지 않았다. 내 단골 병원의 선생님이라면 무조건 큰일이라고 하실 것 같지 않아서 나는 결과지만 받고 병원을 나왔다.


크림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뿌옇게 흐려졌다.  하필이면 번 망가지면 나을 수 없는 비가역적인 신부전걸리다니!

살면 살수록 마음 아픈 일만 있을 고양이를 왜 데리고 왔을까 눈물만 뚝뚝 흘렀다. 너무 예쁘고 순한 내 새끼라 그 아픔과 원망이 몇 배로 커졌다. 무슨 종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파양한 고양이를 델고와  자기가 키운다고 큰소리치곤 잘 보살피지도 않는 남편에게도 원망의 화살이 날아갔다.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 마음만 이용당한 것 같았다.

집에 와서 맘 놓고 울기 시작했다. 쿠키가 다가와 눈물을 닦아준다.

희망을 갖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잿빛이야기뿐이었다.  '신부전고양이'라고만 쳐도 사료, 약, 영양제, 관리법이 수만 가지 나오는데 다 때려치우고 고양이만 보살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남편에게 알리자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의 원망에  '그래도 크림이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냐'말을 위로차 던진 그에게  "아직 확정도 아닌데  왜 애기를  죽을 애 취급하냐"라고  화를 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말도 저 말도 다 듣기 싫었다.


호사다마라더니...

삶이 지나치게? 평탄할 때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슬픔이나 불행이 어디선가 꾸물거리며 떠오를 채비를 차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작년 말, 아들 딸과 미국에 가서 아들 학교를 옮기고 기숙사를 잘 세팅해 주고 무사히 돌아왔다. 딸아이는 일찌감치 기숙사에 입소했고  내게도 좋은 일이 있었다. 대학원 입학 전 장학금 안내가 있어 신청사유를 구구절절 적어냈더니  진짜  장학금을  준다는 마법 같은 편지를 받았다. 내가 장학금을 타다니!  정말 신이 났다.  재미로 본 사주에서 올해는 내 인생이 그린라이트라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다 꿈에 부풀었는데 크림이의 신부전 진단으로 갑자기 버블이 확 꺼져버렸다.


밥도 잘 먹지 않고 마른 몸으로 앉아있는 해맑은 크림이를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빠질 게 뻔한 싸움을 몇 년을 하면서 내가 지쳐가는 걱정보다 점점 야위고 힘들게 서서히 죽어갈 크림이를 어떻게 볼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의연해지세요.  동물은 안 아프게 잘 지내면 그게 최고인 겁니다.


밤새 신부전 고양이의 투병생활을 인터넷으로 보면서 엉엉 울었더니 다음날, 내 얼굴은 괴물같이 부어 있었다.   우리 언니는 이미 울고불고하는 내 십 수통의 전화와 크림이에 대한 동정심으로 지쳐 있었지만 크림이 병원에 동행해 주었다. 쿠키와 크림이까지 조카처럼 품어주는 언니가 없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다.

전날 크림이에 대한 검사결과를 메시지로 받으신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시며, 간밤에 크림이가 큰일이 났나 생각했다며 나무라신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이런 경우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의연해져야 돼요. 크림이 상태는 피검사수치상  신장이 망가진 상태는 맞지만 급성 만성 따질 이유도 없고 아직 어리고 젊으니 관리 잘해주면 오래 살 수 있어요. 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라고 하잖아요. 30년 수의사생활을 하면서 죽을 것 같다 하는 고양이가 오래오래  사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다행인 건 bun수치가 두 배가 아니란 거예요. 다른 혈액검사도 다 수치가 좋으니 너무 절망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스코티시폴드는 여기저기가 선천적으로 약한 고양이임을 받아들이라고 덧붙이셨다.

타고나길  안 좋다 생각하고 관리하면서 키우면 괜찮을 거고 또 동물은 사는 동안 아프지 않게 스트레스받지 않게 잘 돌봐주는 것이 최선일뿐이라고 당부하셨다.

또한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영역 동물이라 멀쩡한 아이도 입원시키면 곡기 끊고 큰일 날 수 있으니 입원은 응급이 아니면  되도록 시키지 말고  반나절 수액 맞고 집으로 데려가라 하셨다.

선생님은 크림이의 혈액검사를 더 추가할 것도  없고 수액치료와 약,  그리고 신장처방사료를 먹이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겨우 눈물을 거두었다.


4 시간 넘는 수액주입동안 엉거주춤 서있던 내 새끼.. 입원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인터넷은 보지 마시고
내 고양이만 보세요~^^


 

"인터넷 보지 마세요. 과잉치료는 특히 고양이에게 좋을 게 없어요. 집 밖으로 나와 병원에 오는 순간 그 스트레스는 약한 곳으로 가는데 인터넷엔 수의사들이 쓰는 글도 아주 많고 선전성 글이 대부분이에요. 신부전에 대한 동물치료는 아직 한정적이고 대증요법이 에요.  "

지금은 crea수치가 높지만 자꾸 피검사해서 조금 내려간들 큰 의미가 없으니 불필요하다고 하신다.

나는 혹시 조금 떨어졌나 보고 싶은데  선생님은 잘 먹고 잘 싸고 잘 지내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신장약은  매일 평생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생각의 전환을 시도했다.

약한 아이지만 그래도 크림이가 나에게 와서 다행이다, 내가 보살펴줄 수 있으니 다행이고 좋은 수의사선생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그래, 슬플 땐 크림이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다른 곳으로 갔으면 또 버려질 수도 있는데 내가  잘 보살펴줄 거니까.



동물도 미인박명이 있을까


어느덧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났다.

수의사 선생님의 당부는 한 가지였다. 신장약과 신장사료 먹기, 안 먹으면 쿠키밥이라도 먹기. 일단은 뭐든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셨다. 그간 크림이는 안 먹어서 힘이 없거나 구토를 해서 그때마다 엉엉 울며  병원에 데리고 가 영양제 등을 맞고 왔다.   수의사 선생님은 자주 온다고 별나다고 혼내셨지만 어쨌든 내 맘이 불안해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크림이의 병은 내 일상습관을 바꾸어놓았다.

2월 내내 어디 나가지도 않고 운동하는 시간 외엔 집에만 있었다. 정말 내 인생 처음으로 두문불출했던 것 같다. 크림이만 쳐다보고 손으로 밥을 쥐고 크림이만 따라다녔다.

몇 알이라도 먹으면 할렐루야가 나왔다. 하도 사료를 들고 따라다니니 마지못해 먹어주는 때도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신장약은 츄르에 섞어 매우 잘 먹고 밥도 내 손에서 잘 먹는 편이다. 내가 버릇을 잘못 들여놓는 바람에 언니가 봐줄 때도 손으로 사료를 대령해야 먹긴 하지만 어쨌든 하루 두어 줌은 먹고 있으니 한숨 돌렸다.


크림이는 나쁘지 않은 컨디션을 유지 중이다. 조마조마하지만 3월부턴 학교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나도 내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단 아침에 나가 저녁에 오는 일은 없다. 학교 가는 날은 학교만 가고 골프 치는 날은 뒤풀이 일절 없이 골프만 치고 잽싸게 집에 온다. 집에 오면 바로 크림이 사료를 손에 한 줌 쥐고 크림이에게 밥을 먹자 꼬시는데 고맙게도 잘 먹어준다.


가끔씩 크림이를 보고 있으면 동물도 사람처럼 미묘 박명이 있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한 생각이 들곤 한다.

듣는 사람마다 파안대소한다.

그럴 리가 없어. 동물은 하나같이 다~ 예쁜데 걔네 다 5년도 못살고 죽는단 얘기야?  

그러네. 오래 사는  예쁜  동물이 한둘이 아닌데  내가 어리석었다.


크림아, 부디 지금 같은 컨디션만 유지하며 큰 고생 없이 10년만 더 살아줘.  엄마와 아빠 언니 오빠

 그리고  외할머니와 이모, 사촌오빠까지 모두 너의 집사들이잖니~부디 이 많은 집사들과 오래 함께 하자.


왕관이 잘 어울리는 공주님 오래 살자!
너희둘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는데 ㅠㅠ, 부디 더 나빠지지만 않길!


ps   크림이의 투병으로 근 두달간 브런치를 쓰기는 커녕 제대로 들여다 보지도 못했습니다.

       아직은 너무 어린 크림이의 투병을 응원해주세    요.ㅠㅠ  내일은 크림이의 피검사가 있는 날인데

많이 나아졌길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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