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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Sep 21. 2021

내가 제일 잘 키운 자식

쿠키 이야기

“어느 나라 강아지예요?.”

“이런 강아지는 얼마면 살 수 있나요?”

우리 집 막둥이 쿠키와 산책을 나가면

하루도 빠짐없이 듣는 이야기.

오늘도 어김없는 질문에 나는  발그레한 미소를 띤다. 어쩌면 아이를 이렇게 잘 키우셨나요.. 아이 선생님 면담을 갔을 때 듣는 최고의 찬사를 받는

기분이다.


반려견의 의미를 넘어 우리 가족의 일원, 아이들의 동생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한 쿠키.

쿠키는 내가 가슴으로 낳은 강아지이고 내 아이들의 동생이다.


쿠키는 반짝반짝 빛나는 크고 동그란 까망 눈을 가졌다. 동그란 눈의 테두리는 두껍고 새까만 아이라이너로 온통 감싸여 있어서 더욱 매혹적이다.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뽀뽀를 해주며

 우리 쿠키 눈은 어쩜 그렇게 예뻐?

하고 물으면 쿠키는 엄마 눈도 예뻐~

하고 말하는 듯이 미소 지으며 내 눈을 핥는다.

또한 쿠키는 눈과 사이즈가 비슷한 촉촉하고 둥근 깜장 코를 가졌다.

어떨 땐 건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기를 머금고 벌름거리며 탐색하는 생기 있는 코.


 거리를 두고 보면 쿠키는 동글동글 

까만 점 세 개를 가진 귀여운 얼굴이 특징이다.

까만 점  세 개를 가진 쿠키의 얼굴은  하얀 데 반해  옆으로 늘어진 귀는 베이지와 회색이  적절히 배합된 색을 띠고 있다.

 또 쿠키 등의  2/3는 옅은 코코아 색으로 덮여 따스하고 감각적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어머, 염색했나 봐요...

하는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키는 60센티로 제법 크고 몸무게는 6킬로 남짓인데 풍성한 꼬리 덕에 더 커 보인다.

얼굴도 작지 않아 5등신 정도 되는 비율 덕에

 백일 정도 된 애기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영차 하고 안으면 폭 안기는 느낌이 영락없이

우리 아이들 백일 전후로 안았던 느낌이다.


쿠키는 매일 밤 나와 사이좋게 베개를 나누어 자는 룸메이기도 하다.

조금만 불편하면 발치로 옮겨가 턱을 괴고 길게 뻗어 자는데 어찌나 깊이 잠이 드는지  

때때로 녀석의 잠꼬대 소리에 잠을 깬다.

피곤한 날엔 코를 골다가 깨갱 하는 비명을 질러가며 몸까지 떨며 정신없이 자는데

그땐 얼마나 웃음이 나는지 모른다.

도대체 무슨 꿈을 꾸길래 저렇게 사납게 소리를

지르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고 몸도 뒤척이는지

 무척 궁금하다.

애써 얻은 뼈다귀를 옆집 개에게 빼앗기는 꿈을 꾸는 건지, 산책 나갔다 주인을 잃어버리고 혼자 떠돌아다니다 나쁜 사람이라도 만난 건지.

 잠꼬대 소리가 악몽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날은 가만히 입을 맞추고 안아주면 이내 쌕쌕거리며

다시 편안하게 잔다.

 정말 내 자식만큼 아니 때론 자식보다 더 애틋하게 키우는 녀석, 쿠키. 이 아이와 나는 인연이 깊다.     




쿠키를 만나기 전,

 나는 쿠키의 어미를 먼저 만났다.

우연히 갔던 재래시장 길거리에서 비쩍 마른 채

배만 불룩한 몰티즈 한 마리를 보았다.

누가 봐도 버려진 지 오래된  떠돌이 개였다.

얼굴도 지쳐 보였고 온몸의 털이 때에 절어 구정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보통 두 번 이상 눈길이 가지 않을 개였지만 나는 자꾸만 눈이 갔다.

심지어 마침 먹던 핫도그 빵과 소시지를 떼어

그 개에게 내밀었다. 개는 얼마나 굶었는지

남은 소시지와 빵을 다 먹었다.

내친김에 물도 줬더니 물병을 씹어 먹을 기세로

마셨다. 그리고는 한없이 날 따라왔다.


그 강아지의 남편 역시 여기 떠돌이 시츄 개였다고 여유 있으면 그 개 좀 데려다 키우거나 보호소에 갔다 주면 좋겠다고, 야채 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주인도 없고 보아하니 아기도 가졌는데 정말 너무 불쌍하다고.

끼니는 시장통에서 그나마 인정 있는 장사 집에서 조금씩 얻어먹고는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에 동정심이 일었지만 개를 키울 형편도 아니어서 개를 흘깃 쳐다보고는 집으로 걸어오는데 계속 그 개가 따라왔다.


남편이 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이들은 비염과 알레르기가 심한 상황이라 섣부르게 바깥의 떠돌이 개를 들일 수는 없어서 시장과 우리 집 사이에 위치한 동물병원에 그 개를 맡겼다.

 유기견인데 건강상태도 검사를 해주고 목욕도

 시켜주세요. 부탁하면서도 맘 한편으론

 ‘개 목욕비 건강진단비가 어마 무시하게 비싸다고 하는데 어떻게 감당하지?.’

근심이 들어 마른침만 꼴딱 삼켰다.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마침 살림이 유난히 빠듯한 달이라 일주일치 반찬거리를 사러 큰 슈퍼 대신 재래시장을 간 거였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혹 떼러 갔다가 혹 두 개를 붙여왔다고 하던가.

짐짓 후회도 됐지만 강아지의 순한 눈, 슬픈 눈을 마주치자니 잘한 일이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 유기견 데려다 키우시게요?,” 수의사가 물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이차 저차 만난 갠데 너무 가엾어서 건강 검진이라도 받게 해주고 싶다고.

그랬더니 수의사는 본인도 유기견센터 후원을 하고 있고 유기견을 두 마리 키우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이 개를 키우면 모든 비용의 반을 본인이 부담하겠다며 좋은 일 하라 권하는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오케이를 했고, 그렇게  쿠키와 만날 무지개 다리가 놓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어미는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고 출산이 임박해 그다음 날 병원에서 아기를 낳다 죽고 말았는데 새끼들 역시 사산한 가운데 건강하게 한 마리만 살았으니 그 녀석이 우리 쿠키였다.

어미도 없이 쿠키는 그렇게 우리 집에 왔다.


남편과 아이들 모두 처음엔 황당해했지만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정말 내 주먹만큼 작은 생명체... 온몸의 반이 짙은 고동색으로 얼룩덜룩한 녀석은 그렇게 작아도 눈코입 발톱 다섯 개가 다 있었다.

얼마나 신기방기 했던지... 초코칩 쿠키 같다고 우리 딸아이는 이름을 쿠키로 지어주었고 쿠키는

이내 우리 가족이 됐다.

쿠키 2개월때 ㅡ몸길이는 배개길이의 반이고 크기는 주먹만한 인형과  맞먹는다:

남편과 나는 우리 두 아이 키울 때도  그렇게까지 잠을 설치며 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녀석은 한 달간 엄청 낑낑대고 잘 먹지도 않아서

나는 이틀에 한 번은 병원에 데리고 가 건강을 살피고 비타민에 분유에 정성껏 먹였다.


아이들은 학교 다녀오기 바쁘게 쿠키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남편 역시 귀가시간이 당겨졌다.

밥상머리 대화엔 쿠키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쿠키의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가족들에게 전송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날씨를 살펴보듯 소파에 올라타 밖을 바라보거나 나와 같이 티브이 동물농장을 즐겨보는 모습,

그리고 발레리나처럼 뒷다리를 양쪽으로 벌리고

쭈욱 편 채 스트레칭하듯 엎드려 있는 모습이 젤

반응이 좋다.

고양이나 가능한 유연성이 돋보이는 포즈라

신기해서 더욱 그런 듯하다. 

어쨌든 두어 달이 지나니 쿠키는 제법 강아지 꼴을 갖추었고 이젠 물에 불린 사료를 잘 먹게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다. 내 주먹 만했던  녀석은 어느새 내 머리만 해 지더니

6킬로에 육박하는 예쁜 강아지로 자랐다.


쿠키를 안아 들면 아기를 안는 느낌처럼 몸에

착 감긴다.  가만히 어깨에 턱을 괴고 때로는 졸기도 하니 때때로 사람인지 강아지인지 구분 못하고 지낼 때가 많다. 곧 엄마하고 말도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몸을 덮고 있던 진한 무늬는 몸 크기에 비례해 팽창하며 옅은 코코아 색이 되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변하고 귀와 몸에만 색이 입혀져 마치 염색한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쿠키는 건강 상태도 매우 좋아 눈은 반짝거리고 코는 촉촉하고 짖는 소리도

매우 우렁차다.



나가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내가 속옷만 챙겨 입으면 어디에선가 보고 있다가 다가와 눈을 마주치고 응시한다.

“나는? 나도 나가는 거야? 나는 집에 있는 거야?” 때론 관심 없는 척 기지개를 켜며 묻기도 한다.

아니다 싶은 눈치면 자기 집이나 마루 한편에 선 채로 현관 가까이 나오지도 않고 쓸쓸한 눈으로 나를 배웅한다.  

그런 쿠키가 너무 안쓰러워 “나가자!!”란 말을 던지면 이리저리 현란한 몸놀림으로 감사의 인사를 한 후 구르듯이 현관으로 달려 나가 기다린다.

목줄을 할 때도 다리를 넣고 어떻게든 도움으로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워 뽀뽀세례를 퍼부을 수밖에 없다. 쿠키의 성격은 활달하고 장난도 좋아해서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꼬리를 살랑거리며 친절하게 인사한다.


 볕이 좋은 날, 바람이 좋은 날, 내 마음이 한가한 날 쿠키와의 산책은 최고의 행복이다.

밖에만 나가면 신이 난 쿠키는 끊임없이 코를 씰룩거리며 세상의 냄새를 맡고 뭐가 바쁜 듯 조금 앞서 나가 엉덩이를 씰룩이며 걷는다.

너무 좋아서 얼굴이 발그레해진 쿠키~                           

게으름 피우고싶은날,쿠키는 완벽한 안식처가 된다.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부엌에서 밥을 차릴 때 문득 뒤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쿠키가 나를 보고 앉아있다.

음식 냄새에 홀려온 건 지 엄마 외로울까 짠해서

온 건 지는 모르겠다.

밥을 차리고 아이들을 깨워 앉히면 쿠키도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반찬을 스캔하고 침을 삼키며 앉아있는 쿠키, 머지않아 수저와 젓가락질을

할 것만 같다.


또한 쿠키를 보고 있으면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따지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틀에 가둔 채 살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성찰을 하게 해 준, 그래서 자유가 없는  자들에게 부러움과 감동을 주었던 조르바.


쿠키도 정말 솔직 담백하다. 

반가우면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사랑을 표현한다. 눈을 맞추고 뽀뽀를 퍼붓는다. 

맛있는 고기를 보면 입맛을 다시며 고기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줄 때까지 버틴다. 모른 체 하면 으르렁 끙끙 낑낑 다양한 소리로 주의를 끈다.

어떤 체면도 없고 재는 것도 없다.

그 솔직한 표현에 고기를 떼어줄 수밖에 없다.


조르바도 쿠키도 내일이 없는 것처럼 현실에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하고 실행한다.  


1년에 5-7살을 먹는 강아지는

짧은 시간만을 살기에 정말 솔직하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것 아닌지.

주인에 대한 사랑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산책을 나가도 순간의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후회 없이 사는 것 같이 보인다.     



강아지 쿠키와의 10년째 동거,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변했다. 강아지로 인해 웃음이 많아졌고 전보다 가족애도 굳건해졌다. 생명의 소중함을 진정 깨달으며 유기견 보호에도 앞장서는 일은 덤이다.

 나도 변했다. 대가 없는 칭찬과 사랑 속에 더 예쁘고 영리하게 자라는 쿠키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격려와 칭찬을 많이 해주면  더 잘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칭찬과 격려보다 비난과

지적을 더 많이 했고 뽀뽀보다 눈흘김을 더 많이

하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가 앞선다.


우연한 만남으로 이렇게 가족이 된 쿠키,

어느덧 열 살이 되었지만 쿠키가 우리 가족 곁에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쿠키야, 넌 최고의 강아지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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