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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이 Sep 18. 2021

쿠키, 크림이를 만나다

또 하나의 가족

쿠키는 동생이 필요해!


 우리 가족은 가끔씩 쿠키 동생을 입양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아이들이 바빠지면서 덩달아 나도 집을 비우니 쿠키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신이 나서 유기견 센터의 사이트를 들어가 이 강아지가 이쁘다 저 강아지가 쿠키동생으론 더 낫다며 입양하자고 했지만 결국 모든 양육의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전 30년 동안 친정에서 십 수마리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길렀지만 나는 걔네들과 같이 놀고 자랐을 뿐 아무 책임이 없었다는 걸 쿠키 뒷바라지를 하며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산책하고  소변 패드 갈아주고  병원 다니고 미용실 다니는

 이 모든 일이 거의 내 몫이었다. 

진짜 애기  하나  더 키우는 것 같았지만 쿠키는

귀여운 외모와 영리함 그리고 충성심으로 몇 배의 보람과 기쁨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몇 년의 고민 끝에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 크림이가 쿠키의 여동생으로 온 건 정말 우연이었다.

갱년기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남편이 뒤늦게

고양이에 빠져 랜선 집사가 되고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또 한 마리의 강아지를

 쿠키처럼 키워내는 일에 주저하게 된 나 역시  

고양이는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였다.

하지만 이 역시 쿠키를 중심에 두고 보면

옳은 선택 같지 않았다.

종도 다른 데다가 호기심 많고 친구 좋아하는 쿠키가 킁킁거리며 고양이에게 치댈게 뻔한데

고양이가 확 발톱을 내밀어 쿠키 눈이라도 생채기를 내면 어쩌나...

또 혹시 쿠키가 고양이를 물면 또 어쩌나...

둘이 어울리지 못할 텐데 하며

걱정이 끊이지 않아 또 그만뒀다.


그런데 남편 후배가 남편에게 SOS를 보냈다.

키우던 고양이가 있는데 털알러지가 생겨 도저히 못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문에 우리 집 사람들이 동물을 워낙 좋아하고 잘 기르고 또 남편이 랜선 집사라는 소문을 들었다며

부탁을 하더란다.  


애기 고양이면 착한 쿠키와 잘 놀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예스했을 테지만 후배가 보낸

사진 속의 하얀 고양이는 벌써 6개월이나 됐다고 했다.

쿠키가 있었기에 그다음 녀석은 무조건 이름이

 크림이라 지어놨는데

몸집은 커도 온통 흰색 털인 것이 지어놓은 이름과 딱이라 맘이 갔다. 그래도 어쩔까 한번 데려왔다 돌려줄 수는 없을 텐데  우물쭈물 망설이는데

남편 후배가 또 하나의 제안을 해왔다.

그러면 일주일만 데리고 있으면서 우리 쿠키와의 관계를 보고 결정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었다.

 오케이를 하고 그렇게 크림이와 만나게 됐다.


 고양이는 짐이 많고 자기 공간이 필요한 동물이다. 크림이의 이사는 요란했다.

책과 약간의 잡동사니만 있어서  나만의 공간으로 꾸미면 어떨까 호시탐탐 노리던 두 평 채 안되는 

작은방이 고양이 짐으로 순식간에 꽉 찼다.

엄청 큰 모래 화장실, 고양이 전용 침대와

고양이 소파 스크래처 장난감들 등등.

맘에 안 든다 해도 일주일 만에 돌려줄 수 있는 짐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그냥 오늘부로 고양이 집사가 되겠네 직감했다.

먼저 짐을 들여놓고 케이지 안의 크림이를 꺼내 주었다. 하얀 암사자 미니어처.

크림이의 첫인상이었다.



가족들이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옮길 때부터 냄새를 맡고 흥분하기 시작한

쿠키는 난리가 났다.

안간힘을 써서 크림이방에 들어 오려고 방문을 긁고 짖고 낑낑거렸다.  친정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은 좀 사나웠던 편이어서  크림이도 불안한 맘에 하악질을 하거나 할퀴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매우 순하고 착한 고양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6개월이나 살던 집에서 영문도 모르고 파양 당한 크림이...

나는 크림이가 너무 가여워졌다.

손을 내밀어 코에 갖다 댔더니 냄새를 맡고 방안을 탐색했다.

갑자기 어느 날 케이지에 담겨서 차를 타고...모르는 아저씨한테 건네져, 낯선 차에 태워져서...

덜컹거리는 케이지 속에서 얼마나 불안했을까.

어딘가 와보니 내 물건은  다 있는데 낯설고...

방문 너머로는 우렁찬 멍멍 소리가 들리고...

슬프고 혼란스러울 것 같았다.


사료를 주고 물을 주고 크림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온 가족이 번갈아 드나들며  크림이 방에 머물다 갔다. 방이 좁아 한 사람씩 들어가서 앉거나 누워서 크림이를 바라보고 쓰다듬어주고 간식을 주었다.


 쿠키는 체념하고 크림이 방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엎드렸다 하며 보초병처럼 딱 붙어있었다. 밤새 거기 있을 참이니?

물었더니 그러겠다는 것 같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남편은 긴장했는지

새벽마다 일어나 보초서는 쿠키를 내 옆에

갖다 두고 방문을 닫고  크림이를 마루에 풀어줘

놀게 했다.

고양이가  야행성이라 새벽에 놀아야 한다며.  

크림이는 넓은 마루를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탐색하고  중간중간 츄르도 먹었다.

 나나 딸이 막 쓰다듬고 뽀뽀하고 안아줘도 발톱을 내밀지 않았다.

발톱이  있기는 한건지  궁금해서

 작고 앙증맞은 을 꼭 잡아보면

 발 속에 뾰족한  발톱이 만져졌다.

며칠 내로  크림이는 기분이 좋으면 집사들을

감동시키는 골골 소리를 내고

드물게 배를 까뒤집고 애교도 떨었다.

움직이는 장난감에 특유의 반응 ㅡ엄청 집중하면서 눈이 까매지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노리다가 와락 덮치는 ㅡ을

하며 놀기도 잘 놀았다. 환경은 바뀌었지만 자기물건도 그대로고 의식주가 잘 해결돼 불편한 것이

딱히 없으니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쿠키에게도 큰 적대감은 없어보였다.

단지 집착하는  게 짜증나는 정도?


쿨한 크림이에게  온가족의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외동이 왕자님으로 자라던 쿠키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마루에서  하얀 동물이 뛰어놀고 자기는 갇힌

신세라니...삐졌는지  오라고 해도 오질 않고

방문 앞에서만 끙끙거렸다.


온 가족이 쿠키앤크림을 친하게 하기 위해 유튜브를 보고 전문가의 조언대실천하기로 했다.

두 녀석을 철저히 분리해 매일 크림이 방에 쿠키를 넣어 냥이 체취를 맡게 하고 쿠키 흔적이 있는 쿠키 침대나 방 안 곳곳을 크림이에게 오픈했다.


두 녀석은 서로의 냄새를 탐색했다.

그렇게 며칠 후~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창살  너머로 두녀석이 마주했다.크림이는 천연덕스럽고 쿠키는 반가움과 신기함에 콧물까지 흘리며  내내 창살에 매달려 낑낑댄다.


처음엔 쇠창살을 설치해 마주 보게 하고 조심스레 만나게 해주었다.

쿠키도 크림이도 너무 순하고 착해서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단 평소 산책길에 고양이만 보면 호기심에 달려들던 쿠키는 이렇게 가까이 고양이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지그시 보다가 꼬리를 치며 크림이에게 별안간 달려드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 날쌘 크림이는 바람처럼 몸을 날려 높은 곳으로 오르거나 도망을 간다.

얼굴 튼 지 일주일 후 과연 쿠키크림이는 어떻게 지내게 됐을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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