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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May 29. 2024

중간고사, 엄마의 수행

대인배 엄마의 결심과 이해심

대인배 엄마가 되고 싶었다.

불안해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아이를 닦달하지 않는 엄마. 한자도 갖다 붙여보았다. 대인배의 원래 한자는 大人輩지만 엄마가 대인배가 되려면 기다릴 待, 참을 까지 써야 한다고 待忍輩엄마가 되어보겠노라 말이다.


전 세계 교육열로 1등을 자랑하는 두 민족인 유태인과 한국인.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인은 엄마 혹은 부모가 앞에서 아이를 끌고 가고, 유태인은 부모가 뒤에서 아이를 따라간다는 것이라 했다. 주변에서 열심히 끌고 가다가 아이가 어느 순간 부모 손을 놓고 다시는 잡지 않으려 하는 것을 흔히 봤기에 유태인 부모처럼 중심을 잡고 관심만 두려 했다. 아이가 달리고 싶을 때 같이 달려 주마하고 아이를 기다려왔다. 그렇게 기다린다고 모두가 공부를 결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바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대인배엄마라도 한국에서만 자라고,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는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걸 정말 못한 거지 공부가 특출했던 건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다행히 중학생이 되고 나서 공부에 관심이 생긴 , 아니 정확히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아들은 처음으로 수학학원도 다녀보겠다 하며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말로 날 설레게 하였다. 아들~ 이제 엄마도 같이 달리면 되는 거야?


아들은 첫 시험이 떨린다면서도 올 A라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별 의미가 없는 듯하면서도 의미가 없지만은 않은 목표를 선언했다. 아들의 학교는 작년에 자유학년제를 택해서 중2의 1학기 중간고사가 인생 첫 시험이었다. 그런데 첫 시험으로 보는 과목이 꼴랑 4과목이다. 잉? 중간고사를 국어, 영어, 수학, 과학만 본다고? 이건 라떼의 중간기말이 없는 달에 보는 월례고사, 실력고사 같은 거 아닌가? 게다가 하루에 2과목을 본단다. 깨달았다. 중등 우등생들이 고등 가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를. 많은 과목의 많은 범위의 무게를 감당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하긴 초등부터 전 과목 중간기말을 봤던 우리는 중등 전 과목 시험이 점진적인 증량이었겠지만 고작 단원평가가 유일한 경험인 아이들에게 전 과목 평가는 과부하일수도 있겠다.


들어가지도 않은 고등학교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긴장도 하고 목표도 세운 녀석인데 이 녀석이 공부를 안 한다. 강성태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러분은 공부를 안 해요. 안 한다고요." 그건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긴장감도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일 줄 알았지 올 A를 받고 싶다며 떨던 아이에겐 해당이 없을 줄 알았다.

출처. 공신닷컴


시험 2주 전, 3주 전까진 그래 시험이 처음이라 그런 거지. 저러다 막판에 힘들 텐데 하며 지켜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걸 지켜보면서도 나 같은 대인배 엄마니 잔소리 안 한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러나 대략 일주일 전부터는 고난도의 퀘스트가 되어갔다. 잔소리를 하면 공부를 하는 척은 할 수 있지만 기분이 나빠 더 공부가 안될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결심했었다. 나에게 귀는 있지만 입은 없다고.


4월 30일 화요일부터 이틀간이 시험인데 4월 27,28일 주말에도 바뀐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듯한 얼굴만 달라졌을 뿐 그의 행동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주말 아침 일어난 지 5시간이 되었는데 4시간은 티브이보고 밥 먹고 뒹굴거리며 웜업시간을 가지고 1시간을 공부했는데 벌써 머리에 열이 난다면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리모컨을 누르기에 서둘러 점심을 먹였다. 이제 배를 꺼트린다고 게임 30분을 하더니 다시 방에 들어갔다. 또 한 시간 후에 머리를 식힌다며 츄리닝(트레이닝복이라고도 말해주기 싫다.)으로 주섬 갈아입더니 나가서 2시간을 뛰고 티셔츠에 염전을 만들어 들어왔다. 일요일도 패턴은 비슷했다. 1시간 공부하고 몸이 찌뿌드드하다며 아빠에게 목욕탕을 가자는 제안도 한다. 그러고는 시간이 너무 없단다.


기가 막혔지만, '나'름대로 말고 '너'름대로 너를 이해하기로 했으니 지켜보다가 내가 나가기로 했다. 눈과 귀가 있는데 입이 없는 건 예상 보다 고역이었다. 아이 시험기간 동안 2.5km 산책로를 매일 한두 번은 돈 거 같다. 주말에는 아이 친구들 엄마들도 몇 명 만났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나왔다고 한다.  '안 보고 말지!'  


하루 종일 걸을 수는 없어서 글이나 쓸까 하고 노트북을 안고 집 앞 스타벅스로 다시 나왔다. 왜 엄마들이 공부 안 하는 아이들도 학원을 보내는지 이해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눈앞에서 티브이를 보고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를 안 봐도 되는 마음의 평화를 사교육비로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돈이 전기요금으로 쓰일 걸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스타벅스에 와서 컴퓨터를 키니 글을 읽고 쓰기보다 쇼핑몰을 먼저 들어가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웜업 하는 아들이랑 뭐가 다르니.


커피 한잔을 마시며 조용히 나의 학창 시절 시험기간을 떠올려봤다. 고2였나 서울대 필독도서에 있어 호기롭게 샀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렇게도 안읽히던 그 책 시험 며칠 앞두고  펼치니 술술 읽히며 심지어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는 힘들고 편히 쉬기는 마음 불편한 시험 직전엔 분명 잘  읽혔다. 괜히 고전이 아니고 괜히 명작이 아니었구나! 시험이 끝나면 이 책부터 읽어야지 결심했지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시험 전 읽은 몇 장이 전부가 되고 말았다.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지 않을까? 시험 때가 되면 안보던 9시 뉴스도 내 방 벽지 패턴도 재미있었던 기억말이다.


사람이 '욕심'을 내고 '결심'을 했다고 해서 '열심'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이의 시험을 통해 깨달았다. 도 닦는 심정으로 견딘 고행에 가까운 수행기간을 통해서 말이다. 다음 기말고사 기간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나의 수행기간을 채워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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