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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Jun 05. 2024

철인, 아니 한강 3종에 도전한 중학생이라니!

제1회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에 참가한 중2 이야기

엄마, 나 민우랑 철인 3종 경기 나갈라고!

뭐? 철인3종? 강아, 너 그게 뭔지 아니?

알지 알지 원래 되게 힘든 건데 이건 그런 거 아니래.

그게 아니긴, 철인 3종에 왜 철인이란 말이 들어갔겠어. 게다가 넌 수영도 어린이 수영장에서 해본 게 전부잖아. 수영은 얼마나 하는 건데?

1km라 그랬나?

1km면 한강을 건너는 거야.

한강은 중간에 발도 안 닿아서 서서 쉬지도 못하고 가야 할 텐데 1km를 수영으로 갈 수 있겠어? 수영장에서 100m도 가본 적 없잖아.

민우가 한다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구명조끼도 입어도 된데.

아이고 아들, 지금 집에 너에게 맞는 구명조끼는 없고 (초등 4학년때인가 5학년에 산 게 있는데 그때보다 20cm 이상이 자랐으니 맞을 리가 없다.) 오리발도 없잖아. 수영장 수영도 100m 쉬지 않고 하려면 연습이 필요해. 게다가 한강물은 수영장이랑 달라. 흐르는 물이라고!

아 그러네. 뚝섬에서 출발해서 동작대교 아래로 도착할 수도 있겠구나.

(하하 너 아직 귀엽고 순수하구나. 주최 측이 네가 동작대교까지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주겠지만, 만의 하나를 모르니 한강물에서 네가 헤엄치는 건 상상하기 싫단다. )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강물은 좀 그렇지 않냐면서 죽은 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눈다. 죽은 쥐가 강물보다 무서울 일인가. 운영방식을 자세히 읽어보더니 한강수영은 유경험자만 가능하다고 하고 (수영유경험자를 말하는 듯 하지만 난 이걸 강수영 유경험자라 우겼다.) 전신슈트를 권장한다는 말까지 있다. 전신슈트도 없고 오리발도 없어서 다행이다. 세상 쫄보인 엄마는 너를 도저히 한강물에는 못 넣겠다고!


사실, 처음엔 철인3종이란 말에 거부감이 너무 커서 한강은커녕 수영장이라고 해도 안 하길 바랐다. 나랑 이야기하다 말고 친구랑 통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던 아이를 설득하려는데 아이가 일침을 가한다.

"엄마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긍정적인 사람이 되라며. 나쁜 일도 아니잖아. 이거하고 나면 살도 좀 빠질 거라고! 엄마 그리고 잘 봐봐, 여기 '쉬엄쉬엄'이라고 쓰여있잖아. 이건 진짜 철인 경기가 아니야."


사실, 중2 남자아이가 밤새 게임을 하는 도전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마라탕 최고 매운맛에 도전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10km 타고, 달리기 5km, 수영 200m를 축제처럼 하는 곳에서 체험해 보겠다는데 이 얼마나 건강하고 건전한 도전인가. 이건 두 팔 벌려 응원할 일이고 물심양면 지원해줘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대화 시작부터 계속 마음 바닥엔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커다란 소심이를 쫓아낼 수가 없다. 그러다 혹시 다치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내 안의 소심이를 자극해서 걱정이 앞서던 중 아이가 입에 올린 '긍정적'이란 말에 마음이 훅 기울었다.


물론 완전히 뒤로 물러서지 않은 소심이 덕에, 혹여나 일요일에 참가했다가 너무 피곤해 몸살이라도 앓게 되면 월요일 학교 수업에 지장이 갈까 토요일에 가면 좋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 다 맞춰준 민우에게 정말 고맙고, 건강한 민우를 낳고 키워주신 민우군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다.


아이를 보내면서도 소심이의 활약은 계속된다. 아직 노파도 아닌데 계속 올라오는 노파심에 '강아, 중간에 못하겠어서 포기를 하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 오히려 그게 더 용기 있는 거야. 하다가 힘들면 그냥 와도 돼. ' 몇 번이나 강조를 한다. 아직 매운맛을 못 본 아이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흘려들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부모동의서 싸인을 하러 남편이 함께 출발했다. 축제 장소가 워낙 넓어서 아이를 따라다닐 수 없던 남편은 바로 집으로 돌아왔고 3시간쯤 지나니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오히려 수영은 할만했다고 한다. 가서 직접 강을 보고는 강에는 안 들어가길 잘했다고 했다. 자전거 10km는 세 종목 중 제일 쉬웠지만 자전거 안장이 복병이었단다. 자전거를 들고 가기가 너무 번거로워 무료대여해 주는 따릉이를 탔는데 안장이 너무 딱딱해서 턱을 넘거나 할 때마다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고 한다. 의외로 5km 달리기가 힘들었단다. 그러고 보니 어떤 물에서 수영을 시킬까만 고민했지 5km 달리기는 마라톤 대회의 입문 코스인데 달리기 연습도 전혀 없이 수영하고 자전거와 함께 5km를 어떻게 뛰었는지 궁금했다.


체력장이 있던 시절 우리도 이런 땡볕에 1킬로 남짓 뛰면 꽤나 힘들었는데 연습도 안 해본, 그것도 과체중인 아이가 어찌 뛰었을까 다 뛰고 나서야 생각이 들었다.

"어머 정말 달리기가 힘들었겠네. 말이 5km 지 석촌 호수 2바퀴를 뛰어야 하잖아. 죽을 거 같진 않았어?"

"엄마, 행사 이름이 '쉬엄쉬엄'이잖아. 행사 취지에 어긋나면 안되지. 중간에 여러 번 조금씩 걸었어! 근데 첫날 첫 타임이라 그랬는지 오세훈 시장님이랑 자전거 탈 때도 마주치고, 달리기도 가까이서 달렸거든. 처음엔 그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기자도 많아서 좀 짜증 났는데 생각해 보니 시장님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깐 우리가 쓰러져도 빨리 구해주겠지 싶었어."


친구와 잊지못할 추억. 시장님과도 한 컷!


전화 속 아이의 목소리에는 뿌듯하면서도 피로가 녹아있었다. 대회 참가한다고 하는 날 '네가 한번 해보면 다신 안 한다 할걸?' 했던 내 마음은 어디로 도망가고 작은 성취를 이뤄낸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한강라면을 끓이며 전화를 한 아이가 라면을 '간식으로' 먹고 민우랑 또 점심을 먹으러 간다기에 그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라면이 간식이라던 아이는 라면을 먹고 다리가 풀리고 눈이 풀려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씩 완주할 때마다 받은 메달들은 가방 속에 무심히 쑤셔 넣어 젖은 수영복을 넣은 비닐봉지와 젖은 수건, 빈 물통 사이사이에서 유물 발굴하듯 꺼냈다. 메달은 DIY였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린 아이는 목걸이 걸고 사진 하나 찍을까?라는 나의 제안에 내일 하자고 너무 피곤하단다. 참가를 반대했던 나만 메달을 보고 신이 났다.


DIY 메달. 작은 메달이 앞인가 뒤인가...이래도 저래도 예뻐서 요리조리 찍어보며 나혼자 신났다.


메달은 정말 예뻤고 그 메달을 보니 새삼 아이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초등 내내 신나게 밖에서 뛰어놀게 한 보람도 있었다.(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아, 내년에도 이거 하면 또 나갈래?"

"글쎄 안 나갈 같은데..."

"왜, 나가봐 쉬엄쉬엄해도 된다며."

"엄마가 해봐요. 그게 쉬엄쉬엄 되나... 아니 쉬엄쉬엄해도 겁나 힘들어."  

참가신청을 할 때와 엄마와 아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틀 지나 월요일에 학교에 다녀오더니 말이 또 달라진다. 글을 쓰려고 이것저것 다시 물으니 학교에서 만난 민우랑 내년에는 300m 한강수영을 해보겠단다. 뇌가 어리면 망각도 빠른가 보다.


그래도 강아, 너의 도전은 멋있었고 행사 취지인 '쉬엄쉬엄'에 순응은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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