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험감독을 해보니
기말고사 학부모 명예감독 체험
어제는 큰 아이 강이의 기말고사 마지막날이었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3일간의 기말고사가 어제 끝났다. 3월 학부모 총회에 참석한 이유로 어쩌다 시험감독 봉사를 신청했고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날인 어제가 내 차례였다. 반차를 미리 내두었고 회사대신 아이 학교로 출근을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그런 건지 시험이라는 무게감 때문인지 내가 시험을 보는 게 아닌데도 살짝 긴장이 되었다. 혹시라도 소리가 안 나도록 바스락거리지 않는 바지와 티를 입고 밑창 도톰한 운동화를 신고 갔다. 시험시작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한 학부모 36명. 이름을 확인하고 오늘 배정된 반을 확인한다. 1교시는 2학년 11반, 2교시는 2학년 5반으로 들어간다. 강이가 4반이니깐 2교시전후로는 창문 넘어라도, 복도에서라도 강이를 볼 수 있으려나 상상해 본다.
입실 전 여러 가지 부정행위의 유형을 알려주신다. 내가 들어가는 반에서 부디 그런 일 없이 지나가길 빌어본다.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 말씀으로 다른 부정행위는 거의 없는데 영어나 수학처럼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시험에서는 한 문제라도 더 풀고 마킹하려다가 종료종이 울렸는데도 계속 마킹을 하는 경우가 제일 흔하다고 하셨다. 그런 경우 감독자가 '그만!'하고 제지를 해서 바로 멈추면 부정행위가 아니고, 한 번의 경고에도 계속하면 부정행위가 된다고 한다.
중학교 때 나도 시간이 모자라 종료종이 울리는 순간까지 마지막 답을 마킹하며 손을 떨었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제발 오늘 아이들에게 모질게 '그만'이라고 말할 일이 없기를 한번 더 빌었다.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설명해 주시는 선생님은 오늘은 국어와 도덕이니 시간이 그리 모자라지 않을 거라고 하신다.
시험을 보는 아이들만큼이나 긴장한 채 해당반으로 향했다. 한 반에 30명 남짓의 과밀인 편인 아이학교 교실에 서른 명을 4줄로 앉히고 나니 앞뒤공간에는 별 여유가 없었다. 내 자리는 2열과 3열 사이 맨 뒷자리에 의자였다. 휴대폰 전원도 끄고 앉아서 최대한 안 움직이면서 눈만 왔다 갔다 했다. 내 양옆에 앉은 친구들이 신경 쓰일까 숨소리도 조심스러웠다.
원래 아팠는지 긴장해서 그랬는지 한 여학생이 시험시작후 10분도 안되어 속이 안 좋아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다고 해서 동행하고 왔다. 시험스트레스로 보여 짠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가 불편치 않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하는 것뿐인 것도 안타까웠다. 엄마들은 그런 거 같다. 내 아이와 또래를 보면 왠지 더 마음이 가고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 그런 마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친구가 꼭 건강부터 회복하길 바라본다.
1교시를 치르고 OMR카드를 걷자마자 고요했던 절간이 아이들의 답 맞추기로 난리법석이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문제씩 친구와 비교하기 시작하자 쾌재 혹은 통탄이 섞인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찍어서 맞았어.' '고쳐서 틀렸어.' '그게 왜 2번이냐고!' 알지 알지 중학교 졸업한 지 30년 넘은 아줌마도 정말 이해한단다. 찍어서 맞는 기쁨과 고쳐서 틀리는 비통함을 말이지.
2교시준비를 위해 교실을 이동한다. 5반 뒷문은 4반 앞문과 붙어있어서 강이네 반 쉬는 시간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강이는 친구들과 답을 맞히며 기분이 좋았는지 어깨와 팔을 들썩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혹여나 학교에서 만난 엄마에게 차가우면 어쩌나 했는데 웃으며 나와서 "엄마 안녕!"하고 인사를 하고 옆에 선 친구를 데리고 나와 '얘가 **이야.' 하고 소개도 해준다. 친구도 넙죽 명랑하게 인사를 한다. 2교시시험도 잘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예비종이 울려 5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험 시작 전부터 한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앞머리를 길게 내려 이마와 눈은 안 보이고 검은 마스크로 눈밑 얼굴전체를 가리고 있는 것 만으로 그 아이가 지금 사춘기 열병의 절정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OMR카드를 받아 학번과 이름을 기재하고, 시험지를 뒷자리에 전달한 후 이 친구는 바로 엎드린다. 시험감독 선생님이 두 차례나 깨워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답도 하나도 표시하지 않고 엎드렸지만, 다리를 계속 움직이는 걸로 봐서 잠이 든 건 아닌 듯했다. 사춘기의 반항이겠지 싶은데 한심하거나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학교에 오기 싫을까, 학교에 와서 시험을 보는 자체도 얼마나 고역일까, 어떤 생각을 하며 이 긴 45분씩을 버틸까 하고 말이다.
답안지를 낼 때 이름을 보니 어릴 적 동네에서 강이와 가끔 놀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어머니도 친하진 않지만 인사도 나누고 알고 지내왔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가기 전 그 집이 옆단지로 이사를 해서 최근엔 자주 못 봤지만 어머님이 인상이 아주 좋고 성격도 좋으신 분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특히 중학교에 진학한 후부터는 학교 교칙을 많이 어겨 벌점이 많이 쌓이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도 '문제아'로 낙인찍혀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강이에게, 또 동네 엄마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직접 겪은 것이 아니니 그 아이를 돌보는 부모나 가르치는 학교선생님들이 고충은 다 모르지만, 그 아이의 뒷모습에 어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닌 척해도 어쩌면 지금 제일 힘든 건 그 아이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이제 겨우 한 번의 경험이지만, 중등이상 학부모님들이시라면 시험감독 봉사를 추천하고 싶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느낌이 스쳐갔다. 천방지축 아이들과 애쓰시는 선생님들께도 새삼 감사하게 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고 끝까지 고민하고 노력하며 시험을 보는 것을 보며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노력하는 아이들이 기특해지고, 지독한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아이조차 측은해지며 내 이해심도 한 뼘 자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