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똥강아지는 싫거든.
아파도 할 말 다 하는 강아지
어릴 적 내가 아플 때면 엄마가 내 등을 쓸어주시면서 이런 말씀들을 하셨다.
"차라리 엄마가 아픈 게 낫지. 왜 우리 강아지가 아플까."
"아이고 이 녀석아, 똥강아지처럼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왜 아프고 그래?"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열이 나고 기침하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이 말들이 나는 참 좋았다. 특히, 똥강아지처럼 자라야지라는 말은 남보기에 좋게 자라는 거보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게 좋다는 엄마의 큰 사랑이 느껴졌다. 똥강아지여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라는, 다른 바람도 욕심도 없이 내 존재를 마냥 소중히 여겨주는 말이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유명한 광고카피의 우리 집 버전이랄까. 엄마는 실제로 내가 많이 자랐을 때에도 예쁘거나 공부 잘하는 나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나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셨다. 안타깝고 죄송하게도 더 예쁘지도 더 똑똑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건강하지도 못하지만 이 정도면 외모도 건강도 평범에는 들어가니 엄마도 나도 긍정회로 돌려 감사하며 지내왔다.
시간이 흘러 잦은 잔병치레로 엄마 속을 태웠던 딸도 자식을 둘 낳아 키우게 된다. 아들하나 딸하나를 낳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주며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픈 날이면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들었던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집 막내 별이는 어릴 적부터 말을 매우 잘하는 아이여서 유치원생 일 때 이미 엄마에게 물려받은 나의 사랑의 말을 논리로 눌러주었다.
"에휴, 차라리 엄마가 대신 아프면 좋겠어. 엄마가 아프지 왜 네가 아프니?"라고 하면
"엄마, 그건 어리석은 말이야. 남 대신 아플 수는 없어. 아무도 안 아파야지 왜 대신 아파?"라고 했다.
또 이런 대화도 있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똥강아지처럼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왜 아프고 그래."
"엄마, 난 그래도 똥강아지는 싫어."
"뭐가 싫어, 안 아프고 건강하게 쑥쑥 크는 게 좋은 거지!"
"근데 똥강아지는 크면 똥개 되잖아. 똥강아지는 그래도 좀 귀여운데 똥개가 되긴 싫단 말이야."
고열이 나서 잠도 못 들고 입으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저렇게 할 말 다하는 내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어디 가서도 말로는 안 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