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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Nov 07. 2024

그래도 똥강아지는 싫거든.

아파도 할 말 다 하는 강아지

어릴 적 내가 아플 때면 엄마가 내 등을 쓸어주시면서 이런 말씀들을 하셨다.

"차라리 엄마가 아픈 게 낫지. 왜 우리 강아지가 아플까."

"아이고 이 녀석아, 똥강아지처럼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왜 아프고 그래?"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열이 나고 기침하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말들이 나는 좋았다. 특히, 똥강아지처럼 자라야지라는 말은 남보기에 좋게 자라는 거보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좋다는 엄마의 사랑이 느껴졌다. 똥강아지여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라는, 다른 바람도 욕심도 없이 존재를 마냥 소중히 여겨주는 말이었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유명한 광고카피의 우리 집 버전이랄까. 엄마는 실제로 내가 많이 자랐을 때에도 예쁘거나 공부 잘하는 나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나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셨다. 안타깝고 죄송하게도 더 예쁘지도 더 똑똑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히 건강하지도 못하지만 이 정도면 외모도 건강도 평범에는 들어가니 엄마도 나도 긍정회로 돌려 감사하며 지내왔다.


시간이 흘러 잦은 잔병치레로 엄마 속을 태웠던 딸도 자식을 둘 낳아 키우게 된다. 아들하나 딸하나를 낳아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주며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아픈 날이면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들었던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집 막내 별이는 어릴 적부터 말을 매우 잘하는 아이여서 유치원생 일 때 이미 엄마에게 물려받은 나의 사랑의 말을 논리로 눌러주었다.

"에휴, 차라리 엄마가 대신 아프면 좋겠어. 엄마가 아프지 왜 네가 아프니?"라고 하면

"엄마, 그건 어리석은 말이야. 남 대신 아플 수는 없어. 아무도 안 아파야지 왜 대신 아파?"라고 했다.


또 이런 대화도 있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똥강아지처럼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아프고 그래."

"엄마, 난 그래도 똥강아지는 싫어."

"뭐가 싫어, 안 아프고 건강하게 쑥쑥 크는 게 좋은 거지!"

"근데 똥강아지는 크면 똥개 되잖아. 똥강아지는 그래도 좀 귀여운데 똥개가 되긴 싫단 말이야."


고열이 나서 잠도 못 들고 입으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저렇게 할 말 다하는 내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어디 가서도 말로는 안 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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