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정상 아닐까요? 열심히 하는 아이가 특별한 거죠.
작성자: 뽀로로엄마 작성일: 2025.04.02
초등 고학년들 공부 열심히 하지요? 주변을 보면 다들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저희 아이는 참 다르네요. (이 다르다는 말을 좋은 의미로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거부해서 공부 습관이라도 잡아보려고 초2부터 집에서 수학 4장(연산 2, 교과 2), 국어문제집 2장씩만 꾸준히 풀리려고 하는데요. 겨우 영어하나 다니는데 그 숙제도 제가 챙겨야 겨우 합니다. 숙제든 집공부든 스스로 먼저 하면 죽는 줄 아는지 정말 단 하루도 스스로 시작하는 날이 없습니다. 또 하라고 해서 책상에 앉으면 세상 뭉그적거리며 몸을 배배 꼬고요. 제가 안 보면 반즘 엎드려 문제집이나 교재가 아닌 허공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채색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집중해서 하면 30분도 안 걸려 끝내기도 해요. 마음잡고 하면 30분이면 할 것을 매일 2~3시간씩 앉아서 시간 끌며 씨름만 하고 있으니 정말 환장하겠어요.
저도 빨리 끝내고 숙제보초 공부보초 그만 서고 싶은데 당근도 채찍도 안 먹히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를 바꾸고 싶으시겠지만 사실, '지극히 정상입니다.'
초등 고학년인데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아니 사실 그런 아이들이 특이하고 특별한 거 아닐까요? 초등생이 사실 무슨 동기로 공부를 열심히 할까요? 세상에 태어나 10년 남짓되는 아이들이 먼 미래의 생계나 사회적 위치를 걱정하거나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깨달아서 공부를 한다면 외려 그 편이 더 위험한 거 아닐까요? 아마 공부를 스스로 열심히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말 공부에 재능이 있거나, 다른 동기라면 부모님께 칭찬받고 싶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닐까요? 그 외의 많은 아이들은 칭찬과 인정이 좋지만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싫거나, 더 힘드니 그만큼 못해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부를 하기 싫은 그런 마음 아실까요?
제 남동생이 뽀로로엄마님의 아이처럼 공부하려고 하면 몸이 꽈배기가 되는 아이였는데요. 이 녀석은 정말 책상에 앉기까지 많은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고 앉고 나서도 다른 무언가가 떠올라 책 속으로 들어가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어찌 보면 하기 싫은 무의식과 해야 한다는 의식의 힘겨루기에서 무의식이 압승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어느 날 가족들이 모인 식사시간에 동생이 고백을 하더군요.
"누나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었는데 별로 한 게 없는 게 다 이유가 있어. 아침에 가면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지! 싶어서 차가운 캔커피를 하나 마셔. 그리고 책을 펴면 배가 살살 아프거든. 화장실을 다녀와서 다시 공부를 하려 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 속이 공복이 된 거지. 배가 고프면 공부가 안되니깐 매점에 가서 밥을 먹어. 다시 자리로 와서 자세를 잡으면 밥을 먹어서 졸려. 졸리면 공부가 안되니깐 30분만 자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해야지 하고 엎드려서 좀 잤는데 눈떠보니 2시간 반이 지나가있어. 다시 정신 차려야지 싶어서 캔커피를 뽑아서 자리로 돌아와. 그래서 오늘 하기로 한 걸 남은 시간 동안 다 못할 거 같아서 다시 계획을 수정하고 한 시간쯤 하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라 집에 오는 거야. 그래서 9시에 가서 6시에 와도 한두 시간도 못하게 돼."
어느 날은 이런 고백도 했습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거야. 나도 공부를 그냥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라고 하기에 온 가족이 정말 황당해 되물었어요.
"아무도 너 공부 못하게 말린 사람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정말 열심히 하고 싶거든. 근데 몸이 말을 안 들어. 그래서 더 괴로워. 하고 싶은데 하기 싫으니깐."
모두들 그 녀석의 앞뒤 안 맞는 말에 웃었죠. 궤변으로 들렸거든요. 당시엔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너 점수는 잘 받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은 거네. 그건 도둑놈 심보야. 잘하고 싶음 열심히 해야지."
동생의 궁색한 변명을 그럴듯한 논리로 눌러 제가 이겼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그런데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깨닫게 되더라고요. 동생의 그 말을 마흔이 넘어서야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맨몸스쿼트하나가 버거울 만큼 근력이 떨어져 걷는 것조차 내 몸을 질질 끌고 다니는 느낌일 정도로 체력이 바닥났을 때 '운동해야 하는데'란 생각은 정말 하루 종일 드는데 운동을 하기가 왜 이리 힘들까요? 그저 제 건강을 위해서, 제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하는데라고 머리는 생각하는데 몸은 안 움직이게 되고 자꾸 핑계를 찾다가, 하루를 미루니 한 달이 미뤄지고요. 많은 친구들에게 학창 시절의 공부도 그랬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마음만 먹기를 몇 달. 결국 PT를 시작하고 더 절실히 깨달았어요. 내 돈 내고 하는 건데도 어쩜 그리 매번 가기 싫고, 어쩌다 선생님에게 사정 생겨서 못하면 너무 좋다 못해 횡재한 듯 행복하고요. 다이어트하고 싶은데 식단이나 운동이 하기 싫은 마음에 비유하면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확실히 이해가 되더라고요. 근력과 활기는 가지고 싶은데 운동은 하기 싫은 저의 도둑놈 심보를 확인하고 나서야 말이죠.
공부하기 싫은 우리 아이들 좀 넓게 봐주면 어떨까요. 살은 빼고픈데 맛난 것 먹고 싶고 운동은 하기 싫은 저는 아이들 마음을 확실히 이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