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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라도봄 Mar 20. 2024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3월앓이와 가족의 온기

지난 금요일,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탓인지 사람들 옷차림의 각양각색이다. 아직 두툼한 롱패딩부터 가벼운 봄쟈켓 하나 걸친 사람까지, 비슷한 온도에도 누군가에겐 아직 겨울이고 누군가는 벌써 봄을 맞은 듯한 그날. 우리 집에도 서늘한 겨울바람과 따뜻한 봄바람이 차례로 지나갔다.

 

지지난 금요일 학급임원선거에서 학급회장이 된 별이는 전교임원선거 부회장후보가 되었다.(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별이네 학교는 5학년 각반 남녀회장 중 한 명씩을 전교부회장으로 선출한다.) 학급임원이든 전교임원이든 돼도 안돼도 다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는 절실했다. 공약을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고민하고, 연설문을 쓴다고 며칠을 머리를 쥐어뜯었다. 공약도 연설문도 4-6학년 전교생 상대로는 처음이라 너무 힘들어했지만 아이가 겪어낼 경험이라 생각했기에 그저 지켜보고 물어보는 것에 조언만 주었다. 연설문도 맞춤법과 비문 정도만 손봐주었다. 5학년이 쓴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스스로 완성했다는 성취감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연설문에 머리에 쥐가 날듯하다는 별이는 오빠의 2년 전 임원선거 연설문이 남아있는지 궁금해했다. '미안 보관해두지 않았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영상이 남아있다. 큰 아이도 6학년 1학기 회장으로 전교회장선거에 출마했다. 하필 그때 강도가 살짝 약해진 코로나가 전국에 번지고 있을 즘이었다. 차로 출퇴근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는데, 어디서 걸렸는지도 알 수 없는 채 확진이 된 나를 시작으로 남편과 큰아이가 3,4일 간격으로 확진판정을 받았고, 아이는 격리기간 중에 전교임원 선거에 나가게 되어서 집에서 찍은 동영상으로 참여했다. 지금 봐도 고열로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가 안쓰럽다. 코로나로 벌게진 얼굴 탓만은 아니겠지만 강이는 당선되지 않았고 (6명 중 1명이 당선되는 거였으니 어쩌면 확률적으로도 당연하다.) 기록해두지 않은 내 기억으로 큰 아이는 덤덤하게 넘겼다.



둘째가 전교임원선거에 나가려 하자 큰 아이가 많은 기운을 모아준다. 학급임원선거 연설문에도 귀여운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전교임원도 도와주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 누구누구가 후보인지를 묻더니 네가 꼭 될 거라는 응원도 해주는 걸 보며 아이들의 우애만으로도 나는 배가 불러졌다. 나중에 들으니 강이도 전교임원이 되지 못한 것이 꽤 아쉬웠고 동생은 그런 아쉬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단다.


전교임원선거는 학교 일과 중에 치르지만 결과는 오후4시즘 알리미 어플을 통해 알려준다. 하교 후에도 결과를 모르는 아이는 영어학원으로 가면서 나에게 이알리미의 알림에 집중하길 주문했다. 수학학원을 가는 큰 아이도 결과가 나오면 바로 문자를 달라는 부탁을 하고 갔다. 둘 다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결과가 오면 화면을 캡처해서 문자로 보내겠노라 약속을 했다. 오후 3시 59분. 엄마의 간절함이 부족해서였을까? 아이는 낙선했고 낙심했다.


유치원 때부터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옆반의 친구가 회장이 되었다. 그래도 친한 친구가 되었으니 다행이지 않냐는 나의 말에 아이는 모르겠다는 짧은 답변만 문자로 남겼다. 아이가 눈앞에 없는데도 그 실망과 속상함이 느껴진다. 전교임원이든 아니든 너는 엄마의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떨어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는 나의 위로에 아이는 답이 없었다. 당선이나 낙선은 내게 별의미가 없었지만 아이가 낙심하니 따뜻해진 날씨가 무색하도록 가슴에 찬바람이 스몄다.


큰 아이 강이에게도 결과를 전하자 바로 묻는다. '별이 많이 슬퍼해?'  조금 그런 거 같다는 나의 답에 잠시 후 '엄마 내가 별이한테 위로편지를 문자로 보냈는데 이게 별이한테 힘이 되면 좋겠어.' 라며 '내 경험에서 나온 위로 편지'라고 했다. 강이도 2년 전 큰 내색은 안 했지만 속상했던 모양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별이는 마음을 상당히 추스른 듯 보였다. 방금 전에 당선된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어 축하를 전했단다. 그 친구도 너랑 딱 1 표차이었을 거라며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 예쁜이들!!! 어른들보다 금방 회복하고 내 생각보다 둘 다 많이 자라 있었다. 아이마음이 다독여지니 내 마음도 가벼워진다. 대범한 엄마가 되고팠는데 아이의 기분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어쩔 수 없는 약한 엄마인지도 모른다.


강이가 별이에게 보냈다는 문자 편지가 궁금한데 강이가 엄마에게는 보여주지 말란다. 별이가 나중에 몰래 보여줘서 살며시 보게 되었는데 사춘기 허세 한두 스푼이 들어가 있기는 해도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에 다시 봄바람이 분다.

"너의 마음이 어떨지 얼마나 실망했을지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런데 너를 모르는 아이들이 사진과 연설하는 모습만 잠깐 보고 한 판단이니 그 판단이 너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다수가 선택했다고 그게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니, 사람들의 생각에 휘말리지 말고 잊어버려. 앞으로의 너의 일을 열심히 하면 돼."


꼭 손잡고 다니던 7,8년전. 이젠 그럴수없는 사춘기들.


오락가락하는 날씨 같은 3월앓이. 조금 아팠겠지만 그만큼 자랐을 거고 가족의 온기를 느꼈으니 봄이다.

내 필명을 따온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이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구가 떠올랐다.



봄의 연가 / 이해인

우리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겨울에도 봄
여름에도 봄
가을에도 봄

어디에나 봄이 있네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플수록
봄이 그리워서 봄이 좋아서

나는 너를 봄이라고 불렀고
너는 내게 와서 봄이 되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제라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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