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지원 역시 필요하다
싱가포르 이주 후 당분간은 남편인 내가 아이들을 전업으로 보기로 했다. 자체적인 육아휴직을 갖는 셈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일부 지인들은 ‘아이 보겠다고 싱가포르로 따라간다고?’ 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남성이 아이를 본다고 하면 혹은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오직 주변 사람 시선 때문에 남성이 육아휴직을 쉽게 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단 남성이 육아 휴직하기 어려운 건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출산휴가는 정부와 기업에서 보조해 주는 유급휴가이기 때문에 가계 수입 손실이 없지만, 육아휴직은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최대 월 75만 원을 매달 지급받고, 복직한 후 일시금으로 최대 월 25만 원씩 육아휴직 기간만큼 추가로 받는다. 즉 월 100만 원이 전부다. 남성이 여성보다 소득이 평균적으로 높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게다가 경력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대개의 경우 육아휴직 기간은 퇴직금 산정 기간에는 들어가지만, 승진 연한에는 빠진다. 아직 우리 사회는 기수 혹은 서열 문화가 강하다. 따라서 육아 휴직 때문에 승진이 늦어져 동기 혹은 후배 밑에서 일하게 되면 매우 불편해진다. 물론 최근 많은 기업들이 기수나 서열을 파괴한 인사를 많이 하기도 하고, 내가 재직 중인 회사는 매니저보다 그 밑에 직원이 15살이 많은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기수대로 서열대로 승진하는 게 일반적인 한국 직장의 모습이다. 아직까지도 문화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경력 손실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점을 생각해보면 남성이 육아휴직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육아 휴직 간 직원을 회사에서 대체하거나 그 업무를 하지 않아도 회사 운영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육아휴직은 규모가 있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정부 기관에서는 시행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는 제도는 있어도 시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의 경우를 보면 인사를 맡고 있는 와이프는 직장에서 대체 인력을 뽑아주어 육아 휴직에 들어갈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 게다가 한국 주재 직원도 300명이 넘어 내부 유휴인력으로도 대체할 가능성도 있었다. 반면 영업을 맡고 있는 나는 회사에서 대체를 하고 싶어도 고객 과의 관계 유지가 핵심인 업무 특성상 대체가 어렵다. 더더군다나 한국 주재 직원이 10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조직이라 유휴 인력도 없다. 따라서 내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나서면 회사와 상당한 마찰을 겪을 각오를 해야 했다. 이렇듯 많은 여성이 종사하는 사무직 직무는 적어도 외국계 회사에서는 비교적 대체 인력을 구하기 용이한 인사나 재무, 공급망 관리다. 반면 남성은 대체 인력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직무인 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남성이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라테 파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성 육아 휴직이 흔한 북유럽 국가와 달리 싱가포르는 육아 휴직 제도가 미미하다. 여성의 출산 휴가로 16주가 보장이 될 뿐 우리나라 육아휴직에 해당하는 육아 휴가(Childcare leave)로 1년에 6일 준다. 6일 모두 유급이긴 하나 최대 2년까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이렇다 보니 남성의 육아휴직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싱가포르 출산율이 1명 초반대를 기록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육아를 도울 헬퍼를 저렴한 비용에 구할 수 있고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는 등 육아를 위한 기본 제도는 잘 되어 있다. 앞으로 싱가포르로 이주하게 되면 그곳의 육아 여건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볼 시간이 있을 거 같다.
물론 남성 육아 휴직을 허락해 줄 회사가 많지 않다. 게다가 남성 육아 휴직 장려책이 사회적 이슈인 저출산 해결의 근본 처방은 되지 못한다. 사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는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 이전에 결혼을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을 보면 2018년 5.0건으로 2000년 7.0건 대비 29% 줄었다. 또 결혼 연령을 보면 2000년 남성 29.3세, 여성 26.5세였던 것이 2018년 남성 33.2세, 여성 30.4세로 4년이나 늦어졌다. 예전보다 결혼을 안 하고 늦게 하니 예전보다 더 많이 나을 수 없게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결혼을 결정하면서 경제적 효용을 엄밀히 따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저출산/인구 고령화의 원인에 관한 연구 (2010.12 이상호/이상헌)에 따르면 따르면 청년층의 고용불안과 높은 실업률이 결혼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고 한다. 즉 경제적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고용 불안정성은 결혼 건수를 감소시키고, 초혼 연령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특히 남성의 고용 불안정성 증대에 따른 초혼 연령 상승은 여성의 초혼 연령 상승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주택마련비 상승은 결혼 비용을 증가시킴에 따라 남성들의 결혼 시장 참여를 어렵게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마지막으로 실업의 증가는 결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업률을 낮추고 주택마련비를 낮추는 일을 하루아침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 처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부에게 혜택을 더 준다면 지금보다 더 출산율이 낮아지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육아 휴직 급여, 월 최대 100만 원은 너무 적다. 평균적으로 소득대체율이 30%대에 불과해 맞벌이를 하는 가정은 가계 수입이 30-40% 이상 하락하기 때문에 1~2년씩 육아 휴직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육아휴직자의 소득대체율이 유럽 국가의 경우 상당수가 60% 이상인 걸 감안하면 우리나라 남성은 돈 때문에 휴직하지 못한다는 말이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지 않고 1~2년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집에서 돌볼 수 있다면 조금 더 많은 가정이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