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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창업 - 정착의 닻, 성장의 중력

by 정대표

싱가포르 영주권을 받고 나서 생활의 기본값이 달라졌다. 입국은 짧고, 주말 일정은 가볍다. 주요 박물관이 영주권자부터 무료인 곳이 많아 가족과 잠깐 들러 머리를 식힐 수 있다. 이런 편의가 루틴을 만든다. 월요일은 회의, 화요일은 이동, 수·목·금은 고객 미팅과 한국/대만 팀 미팅이다. 일정이 반복될수록 마음은 안정된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개인으로서 정착의 닻은 싱가포르, 창업가로서 성장의 중력은 한국이다. 시장의 크기와 네트워크의 밀도, 의사결정의 속도를 놓고 보면 지금 우리 사업에는 한국이 맞다. 그래서 본사는 한국에 두었다. 개인의 삶은 싱가포르에, 제품 개발·세일즈·파트너 협력 확장은 한국과 대만에 둔다.



대만은 고객이 있는 현장이다. 공급망과 PoC가 그쪽으로 뻗어 있다. 일정표는 싱가포르–서울 왕복 월 1~2회, 싱가포르–대만 월 2회로 채워진다. 피곤하지만 명확하다. 싱가포르는 베이스캠프, 한국은 전장, 대만은 전진기지. 역할을 나누니 의사결정이 빨라진다.



PR의 장점은 생활과 이동에서 분명하다. 회사 기준으로 싱가포르에는 지금 나 혼자 있다. 투자는 한국에서 받았고, 사업의 속도도 한국이 만든다. 싱가포르는 가족이 있는 곳이자, 향후 동남아 전진기지다. 공항과 항로가 가깝고 주변국 출입국이 단순해 출장이 편하다. 돌아올 베이스가 있다는 사실이 긴 주간을 버티게 해 주는 심리적 버퍼다. 물론 단점도 있다. 서울까지 약 6시간이라 가볍게 움직이기 어렵고, 한국 본사와의 세무·법무·행정 이원화는 손이 많이 간다.



회사는 흔들리고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모든 변수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신뢰할 사람을 믿고 목표와 비전을 놓지 않는 일이다. 팀이 차선책을 만들고, 나는 방향을 지킨다. 베이스캠프와 전장, 전진기지를 오가며 한 걸음씩 전진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달력을 넘겨 본다. 다음 달에도 창이 공항–인천 공항–타오위안 공항을 오가는 일정이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도 그 안에서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계속 본다. 그 장면이 이 길을 계속 걷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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