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는 왜 생겼을까?

라테라는 말이 없어지기를 바라며...

by 정대표

최근 정치 관련 기사와 유튜브를 보다 보니 유래 없는 참패를 당한 야당이 과연 참패를 예측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관련해서 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에서 올린 여론 조사 보고가 제대로 당 지도부에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여의도 연구소에서 여론 조사 결과를 가져가면 당 지도부에서는 본인들이 느낀 민심은 다르다면서 본인 경험과는 전혀 다른 여론 조사 결과를 믿지 않았더랬다. 뭔가 익숙한 장면인데, 객관적인 숫자를 믿지 못해, 내가 맞고 너네들은 틀리다는 진한 라테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회사에서도 이런 일은 흔하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획안을 들고 상사에게 보고를 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해서 까이는 경험을 다들 한 번쯤 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마케팅과 기획을 하던 시절, 일주일이 멀다 하고 H 상무님과 이런 문제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어떤 마케팅 기획안을 가져가도 빠꾸 먹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H 상무님은 정말 이게 시장에 먹힐 거냐 말씀하면서, 나 때는, 즉 요즘 말로 라테는, 이런 수준 낮은 기획안은 올리지도 못했다고, 왜 열심히 생각하지 않느냐고 꾸짖으시기도 했다. 그때 난, 옛날하고 지금은 시장 상황이 다른데, 왜 상무님 생각만 고집하시는지 대체 알 수가 없었다.


10년 전만 해도 상사한테 이런 일로 까이면, 그런가 보다, 꼬우면 내가 상사돼야 지란 생각을 하면서 넘어갔는데, 최근엔 라테란 말이 유행하면서 상사를 희화화하는 게 대세가 된 모양이다. 나도 경력이 어느새 20년 가까이 돼가고 라테 위치에 가까이 가다 보니 라테 입장에서도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에게 일을 하나 맡겼다고 가정하자. 부하직원이 아무리 한심한 기획안을, 아무리 한심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상사로서 끝까지 들어줘야 하는가? 아니면 부하직원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라테 향기를 풍기지 않으면서 조심스레 알려줘야 할까? 따지고 보면 같은 월급쟁이일 뿐인데, 월급 조금 더 받는다는 이유로 상사가 부하직원을 배려해야 하는가? 부하직원을 가르치는 것이 내 일은 아니니, 라테 노릇 할 것도 없이 그냥 내버려 둬야 할까?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면 그냥 그 일을 내가 떠맡아해 버리는 게 맞는가?



아랫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라테라는 말은 권위를 부당하게 행사하는 상사 혹은 윗사람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단지 나이가 많다고, 경력이 많다고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아랫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무시하는 건 부당하기 때문이다. 반말 문화도 수많은 라테를 양성한다. 가족과 친구가 아닌 다음에야 회사에서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짧은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회사를 떠나면 남남이다. 따라서 내가 나이가 많다고 혹은 직급이 높다고 대접받을 이유도 없고, 그 반대라고 해서 하대당할 이유도 없다. 이렇게 서로 말부터 조심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라테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줄어들 텐데 아쉽다.



또 한 가지, 우리나라가 최근 수십 년간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너무 빨리 변했다는 점도 라테를 양산하는 이유다. 10년 전과 현재가 그리 다르지 않다면 10년 전 라테가 성공했던 경험이 현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한다면 라테가 되는 게 아니라 유능한 선배 혹은 윗사람이 된다. 하지만 10년 전 우리나라와 현재 우리나라는 꽤 많이 다르다. 따라서 라테들이 과거에 경험한 성공 방식이 현재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보면 요즘은 윗사람 노릇하기도 아랫사람 노릇하기도 어려운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사에서 상사로서 경험한 것을 너무 강조하면 라테가 되고, 부하직원이 상사의 조언을 무턱대고 라테라고 치부해 버리면 일을 배울 수가 없다. 또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라테가 싫다고 창업을 하기도, 취업이 어려운데 회사를 골라서 갈 상황도 아니다. 라테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아울러 서로 나이나 경력을 떠나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바탕이 된다면 라테라는 말도 곧 옛날 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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