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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롥호롞 Feb 14. 2020

이상형이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다.

이상형이라는 것이 뭘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는 것처럼 이상형이 대체 뭔지, 나는 왜 특정한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상형이 무엇인지, 그리고 난 왜 내가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특정한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본다면 내가 정말 만나고 싶어 하는 이상형에게서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즉 내가 만나고 싶어 하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이상형이라는 것이 실은 내가 되고 싶어 하는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상형에 대해서 ‘나는 왜 이런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연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나는 왜 이런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답을 찾고자 한다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또한 발견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가령 내 이상형이 섬세한 사람이라면 ‘나는 섬세하지 못하기 때문에, 섬세한 사람이 이상형이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안에 섬세함이 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섬세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우리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닮아 있는 사람을 이상형이라면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내 이상형과 진짜 나의 모습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그저 이상형인 사람이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와 반대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스스로를 봤을 때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상형의 모습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자가 염소와 사랑에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때로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사랑하는 사자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자는 사자를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자를 사랑하는 내가 사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어떤 특정한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여기고 있다면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그 이상형과 닮아 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내게 없는 것을 갖고 있고 나와 성향이 반대인 사람과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보다 사랑하지 않는 관계가 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상대방이 싫어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상대방이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자와 염소가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이유를 사자가 좋아하는 것은 염소가 싫어하고 염소가 좋아하는 것은 사자가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즉 사자가 사냥을 해서 다른 동물의 살을 먹는 것이 염소에게는 사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며, 염소가 사냥을 하지 않고 풀을 뜯는 것이 사자에게는 염소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만들 거라는 것이다.    


사자는 사냥을 해야 살 수 있고 또 만족을 느끼지만, 반대로 염소는 사냥을 당하지 않고 풀을 뜯어야 살 수 있고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자와 염소처럼 서로의 성향이 반대라면 사자 같은 사람이 사자처럼 사는 것은 염소 같은 사람을 불만족하게 만들 것이며, 염소 같은 사람이 염소처럼 사는 것은 사자 같은 사람을 불만족하게 만들게 될 것이다. 서로 반대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이 상대방을 불만족하게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섬세하지 않고 섬세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섬세한 사람이 이상형이라면, 섬세한 사람을 만나서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사랑하게 되기보다는 다르기 때문에 불만족하는 관계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섬세한 사람은 섬세하지 않은 사람이 섬세하지 않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섬세하지 않은 사람은 상대방이 섬세하기 때문에 힘들어 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서로 다름에도 잘 만나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라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성향을 가졌음에도 잘 만나고 있는 경우를 가만히 살펴보면 실제로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극단적으로 섬세하고, 섬세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섬세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는 섬세함이 있고, 섬세한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는 둔함이 있어서 섬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섬세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관계, 곧 서로 반대 성향의 사람이 만나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라는 것은 실제로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내게 없는 것을 상대방이 대신 채워주는 관계가 아니라, 내가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진짜 나의 모습을 상대방을 통해서 채우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퍼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한 사람은 오른쪽 퍼즐만 완성해 놓았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 퍼즐만 완성된 상태에서 사랑에 빠지게 되어 상대방의 완성된 퍼즐을 보면서 내가 가진 퍼즐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채워 나가는 것이 서로 반대인 두 사람이 사랑하는 이상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너무 다르면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라고 느끼게 된다. 우리가 가진 이상형은 필연적으로 내게 없는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직 인식하지 못한 나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에게 끌리는지, 어떤 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상형인지를 파악한 뒤에 나를 돌아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상형을 왜 좋아하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이상형에게 있는 조건들이 내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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