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흑과 백,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등으로 구분해서 바라보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그것이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성경을 살펴보면 태초의 인간이 뱀의 유혹으로 신이 먹지 말라고 말한 선악과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 뱀은 태초의 인간에게 ‘너희가 선악과를 먹게 된다면, 눈이 밝아져서 신처럼 될 거야. 신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말한 것은 너희를 자신처럼 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야’라고 인간을 유혹했다. 인간은 뱀의 말에 설득되어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고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자신이 벌거벗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고 신을 피해 숨었다.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만족하던 인간이 신과 자신을 비교하며 좋고 나쁨을 구분하기 시작했다’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다시 말해서, ‘스스로에게 만족하던 인간이 신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로 이해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열등감이란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사람도 벌거벗은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내가 무엇은 낫고 무엇은 부족한지를 인식하는 순간 만족에서 멀어지게 된다. 설령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준을 자신이 아닌 남에게 두고 내가 남들에 비해 무엇을 더 많이 가졌고 무엇을 덜 갖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순간 나보다 덜 가진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다른 누군가에게서 찾는다면 나는 매 순간 나를 누구와 비교하는가? 에 따라서 나를 사랑하게도 나를 사랑하지 않게도 될 것이다. 즉 나는 내가 무시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만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내가 남들에 비해서 무엇을 더 많이 갖고 있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즉 내가 자존감이 낮은 것은 내가 남들에 비해 부족해 보이는 조건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내가 가진 남보다 나은 조건에 주목한다면 자존감이 높아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쉽게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너보다 조건이 나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라며 나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나의 자존감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자존감을 높이고자 하는 이들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낮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 쉽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반드시 나보다 나은 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런 이유로 내가 신과 같아져서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완벽한 존재가 되기 전에는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이 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가난해서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보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 내가 쟤보단 낫지’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늘 다른 누군가의 열등한 부분을 주목해야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걸 과연 자존감이 높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 주변에 항상 다른 사람의 단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며, 남들이 나보다 얼마나 못났는지를 발견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가령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늘 내게서 단점을 찾으며 나를 함부로 대하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자 한다면, 나를 낮춤으로써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 반대로 자존감이 낮다고 여기지 않을까?
가난한 나라로 놀러 가서 내가 얼마나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사람들이 나보다 얼마나 못났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왔을 때 반드시 자신의 열등함을 보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자존감을 높이고자 한다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다른 누군가에게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다른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아닌 내게 있다면 누구와 있어도 항상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령 명품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명품의 종류와 가치들을 말하면서 명품을 사서 입으면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남들을 네 앞에서 열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좋고 나쁨의 기준을 알려주게 된다면 명품 없이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을 명품이 없이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명품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명품을 갖고 있는가? 에 따라서 남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도 못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떤 조건을 바탕으로 남과 비교하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 내가 비교하는 기준으로 인해서 내가 불행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특정 조건이 나를 행복하게 혹은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 조건을 바탕으로 남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에 나보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며 내가 나를 좋은 것을 갖지 못해서, 적게 가져서 불행하다고 믿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남보다 우월함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사서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다면 나보다 비싼 것,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보더라도 크게 영향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보다 나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간다면, 그래서 남과의 비교가 아닌 과거의 자신과 비교를 통해서 지금의 자신에 만족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사람을 보던 지금의 자신에 만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남보다 내가 무엇을 더 가졌는지, 무엇이 더 나은지를 통해서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 또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통해서 자존감을 높이고자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누군가에게 내 자존감의 높고 낮음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할 때 항상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