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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롥호롞 Mar 11. 2020

서운함을 제때에 표현하지 못하면 소홀하게 여겨지기 쉽다

한비자는 신하들이 왕을 함부로 여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신하의 잘잘못을 따져 잘한 만큼 상을 주고 못한 만큼 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통 남녀관계에서 상대방을 소홀하게 여기는 것의 시작은 잘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고, 잘해줬는데 그만큼 기분 좋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내게 잘해주지 않았는데 서운하게 여기지 않으면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느껴 함부로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만들고, 잘해주는 것에 대해서 그만큼 좋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면 굳이 잘해주려고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잘해주지 않아도 싫어하지 않고, 잘해줘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말이다. 


보통 착한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소홀하게 여겨지기 쉬운 이유는 착한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서운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착한 이들은 기분 나쁨에 대한 허들이 높아서 상대방이 크게 잘못하지 않으면 별로 서운해하지도 기분 나빠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기에서부터 소홀함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작고 사소하게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소홀함이나 함부로 여겨지는 것이 시작되는데, 작고 사소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말이다. 


이에 반해서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존중받기 쉬운 이유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의 경우는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상대방이 내게 소홀하게 대했을 때, 적절하게 서운함과 기분 나쁨을 표현함으로써 소홀함이나 함부로 여겨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존중받는 이들과 쉽게 소홀하게 여겨지는 이들을 살펴보면, 쉽게 존중받는 이들은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존중받지 못했을 때 쉽게 서운함과 기분 나쁨을 표현하고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존중을 받았을 때는 쉽게 좋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서 쉽게 소홀하게 여겨지는 이들을 살펴보면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존중받지 못했을 때, 사소하게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작고 사소하게 상대방이 잘해줬을 때 사소하게 여겨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큰 결과의 시작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흔히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작고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겨 존중받게 되지만 착한 이들은 작고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나를 존중하지 않았을 때, 서운함을 제때에 표현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나를 소홀하게 여기는 것이 작고 사소한 부분에 국한되지만 차츰 작고 사소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나를 존중하지 않게 되어 전반적으로 무시받는 것이 당연한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나를 존중하지 않았을 때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큰 일도 시작은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나를 소홀하게 대하기 시작했다면 갑자기 상대방의 마음이 변해서 내게 소홀해진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그와 같은 태도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작고 사소한 부분에서 나에 대한 상대방의 존중이 느껴지지 않을 때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소홀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어서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고 느껴 존중받기를 원해도 '왜 그래? 너 원래 안 그랬잖아?'라는 반응이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별거 아닌 것 같은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처음부터 적절하게 서운함이나 기분 좋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작고 사소한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를 나타낼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즉 내 기분과 상관없이 무엇이 나를 존중하는 말이나 행동이며, 무엇이 나를 소홀하게 여기는 말이나 행동인지를 알고 있어야 상대방의 작고 사소한 행동에 대해서 좋고 나쁨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말하기를 사사로운 감정이 아닌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한 확실한 기준에 따라서 상대방을 대하면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여길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를 존중하는 것이고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고 있다. 다만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좋고 나쁨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할 뿐이다. 


잘못인 것을 알지만 별거 아닌 걸로 상대방을 서운하게 만들까 봐 넘어가고, 잘해줬지만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서 넘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소홀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부분에서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거나 존중하는 것을 느꼈을 때,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면 안 되는 지를 신경 쓰지 않게 되고 그만큼 내게 소홀해지게 된다.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상대방이 내게 어떻게 해줘야 하고, 또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며, 그와 같은 기준을 바탕으로 좋고 싫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내가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했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도 서운함을 표현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줬을 때는 크게 만족하지 않아도 고마움이나 기쁨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표현은 내가 상대방에게 '나를 사랑하려면 이렇게 해줘야 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갑자기 넣게 되면 개구리는 놀라서 튀어나오게 되지만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뜨겁게 만든다면 개구리는 자신이 죽게 되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즉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내게 소홀하고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미리 알아보고 피할 수 있지만, 처음에는 잘해주다가 나중에 소홀해지게 되면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는 상태라 쉽게 대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잘해줬던 사람이 시간이 흐르고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내게 소홀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내가 기분이 나쁘지 않아도, 불쾌하지 않아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 말이나 행동에는 서운함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상대방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것을 인식시켜서 항상 존중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참조

<한비자 –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글항아리, p57,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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