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분류 이후.
“MBTI가 어떻게 되세요? “
나는 ENFP이다. 다소 외향적이면서도 공상을 좋아하고, 감정적이며 유동적이라는 ENFP에 대한 설명을 들어 보면, 분명히 내가 맞다. 덜렁대다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평소 내 모습을 알고 있는 가족들이나, 일주일 여행계획을 보통 다섯 줄 내외로 요약해 오는 내 모습에 익숙한 친구들은, 내가 ENFP라는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해본 테스트는 정식의 MBTI테스트도 아니고, 내가 무슨 심리학 전공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내 경험에 비춰 보아도, 요즘 유행하는 MBTI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분석함에 있어, 꽤 신뢰할만한 결과를 제시해 주는 듯이 느껴졌다. 특히, ENFP인 나의 강점이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분석을 예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내 생활을 그 잣대로 한 번 평가해 보니 꽤 수긍할만했다.
물론, MBTI 분석을 맹종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나 같은 ENFP라고 해서, 회사일을 처리할 때에도 친구들과의 여행계획 짜듯이 유동적으로 처리하지는 않으며, I 형 친구들이라고 해서 나를 만나는 게 곤욕이기만 한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혹시 이것이 내 ENFP 특유의 낙천적인 오해라면, 지인들이여, 꼭 알려 주시기 바란다.)
더 나아가 MBTI로 사람의 성격을 유형화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혈액형처럼 특별한 과학적인 근거 없는 분류도 한 때 유행했었고, 그때 특정 혈액형 사람들은 꽤나 불이익을 입기도 했으니, MBTI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MBTI 유행에서도 어느 정도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미덕이란,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서 서로 수용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나는 E의 성향이라 주말이면 나가서 놀고 싶어 하지만, 그런 내 부름에 잘 응하지 않는 I 성향의 친구들이, 나를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다. (다시 한번, 이것이 눈치 없는 ENFP의 오해라면, 지인들이여 다시 한번 알려주시기 바란다.)
혹은, 내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눈치 없이 해결책들만 잔뜩 늘어놓는 T성향 가족들이지만, 그들이 나를 아끼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는 다소 게으르다고 여겨질 P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도 알겠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도 알겠다.
나, 혹은 다른 누군가의 성격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려 16가지로 분류되는 여러 동등한 특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성격에 대해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도 있는 것이다.
“저 ENFP 치들은 방만하고 놀기만 좋아하니 사회에서 몰아냅시다. “ 라거나 ”저 ESTJ 놈들은 로봇 같으니 격리합니다. “와 같은 가치판단만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저 이해할 수 없는 P의 다섯 줄짜리 여행계획도, 나름 열심히 고민한 계획인가 보군’하고 이해하자는 말이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J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그들의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던 내 여행계획에 대해 유감의 말씀을 전한다.)
사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본성이란 다른 사람들을 이리저리 분류하고 나서,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는 한다는 점이 항상 위험하기는 하다. 그렇기 때문에 MBTI 현상에서도, 결국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분류 그 자체가 아니라, 분류 이후의 이해와 관용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