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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o Mar 21. 2023

누가 엄마들을 쓰레기로 만드는가

'학부모 총회' 관련 기사를 읽고

산호세에 온 지 한 달 만에 아이가 학교에 첫 지각을 했다. 아니지 내가 늦잠을 자서 아이를 지각시켰다는 게 맞겠다. 주말에도 이른 기상 시간을 몸에 배이게 하려고 6시에 알람을 켜 두었는데 지난 주말 처음 알람을 꺼 두고 한 시간씩 늦게 일어난 것이 월요일 지각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긴장이 풀렸단 말인데 학교 오피스에 ‘늦잠’이라 사유를 적으니 미시즈 린다 여사가 나도 어제 늦잠 잤다고 웃으며 출입증을 발급해 주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교실 앞에서 힘껏 껴안아 준 후 선생님께 Sorry, I overslept.이라 말하라 알려주고 아이를 교실에 들여보내고 차에 타 룸 미러로 내 모습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질끈 묶은 머리에 세수만 하고 나와 기미와 주근깨가 고스란히 드러난 맨 얼굴, 급히 나오느라 양말을 신을 겨를 도 없어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모습이 시험기간 고3 수험생 모습만도 못했다. 그런데 사실 지각을 하지 않은 날과의 차이는 머리를 감고 묶지 않았다는 점과 양말에 운동화를 신었다 뿐 큰 차이는 없다. 이곳 실리콘밸리 엄마들의 등굣길 모습도 나와 별 반 차이가 없기에 이런 간편한 스타일에 익숙해졌다. 학교에 도착해 아이를 차에서 내리게 하는 게 아니라 꺼낸다는 표현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에 거추장스럽게 핸드백 따위를 들 손도 없어 다들 차키와 스마트폰만 손에 쥔 채 아이를 한 손에 걸고 나오기 바쁘다. 바로 회사로 출근하는 엄마와 아빠들의 모습도 별 반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이곳 이민자인 친구에게 실리콘밸리는 아직도 재택근무를 하는 것인지 물어보니 친구는 크게 웃으며 이곳 사람들은 평소엔 다 그렇단다. 등교 후,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학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한국 뉴스를 보고 있는데 여러 언론사에서 앞다투어 나온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저 엄마가 든 가방 좀 봐”…‘학부모 총회’가 뭐기에(KBS)

엄마들 명품백 총출동한다는 ‘학부모 총회 패션’ 뭐길래(매일경제)


내용인 즉 새 학기가 시작되고 전국 학교에서는 ‘학총’이라 불리는 '학부모 총회'가 열리고 있는데 학교의 운영 계획을 설명하는 것이 주요 골자인 학총이 4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되면서 학부모들이 일 년 동안 함께 할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 엄마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첫인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고민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 였다.


‘실제 명품 가방이 없다는 한 학부모는 학총에 가야 하는데 샤넬 하나 없고 비싼 가방 살 형편도 안 돼서 고민이다'(SBS)


언론사들은 극히 일부 학부모의 인터뷰를 다수의 의견인양 누가 보아도 한심 해 보이게 기사를 다루니 기사마다 불특정 다수의 엄마들을 향한 수백 개의 악플이 달리고 있었다.


지인의 결혼식에 평소보다 차려입고 가는 건 그 자리를 빛내주고 오랜만에 지인들도 만날 수 있으니 거울 한번 더 보고 나가듯 누구나 처음 만나는 자리에 신경 쓰기 마련인데 하물며 아이의 엄마로서 나가야 하는 자리라면 그날만큼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을까?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왕이면 깔끔한 인상을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일부의 의견 혹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일상적인 푸념을 대한민국 엄마들이 명품백이 없어 학부모 총회가 고민인 것인 양 쓰인 기삿글에 몹시 화가 났다.


'TPO'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자리에 맞는 스타일링을 하는 것은 허영도 잘못도 아니다.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된 나와 달리 빠른 친구들은 대학입시까지 끝난 이들도 있지만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언급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모두 명품백이 발에 차일 만큼 팔자가 좋아서가 아니다.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거나 들고나갈 가방이 없다는 말이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친구와 일상 수다를 떨거나 옷장 앞에서 남편에게 하는 말이지 그게 지상파 방송사와 4대 일간지가 앞다투어 헤드라인에 걸어 둘 내용이냔 말이다.


학부모 총회 관련해서 들었던 복장 이야기는 초등 1학년의 엄마이자 중등 교사이기도 한 친구가 아이 옆자리에 배정된 아이의 엄마가 학부모 총회에 모자에 큐빅이 촘촘히 박힌 화려한 골프복 복장으로 온 것을 이야기한 적은 있었다. 처음 입학하고 만난 짝지의 엄마이니 한번 더 보았을 것이고 상황에 다소 맞지 않아 눈에 띄었노라 커피 타임에 가벼이 지나가며 한 말이다. 쌍둥이 엄마이자 KLPGA 골퍼로 유명한 안선주 선수도 학부모 총회에 골프복을 입고 가진 않을 것이지 않은가.


산호세에서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지내며 실리콘밸리의 엄마들은 이렇더라라고 규정짓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원래 해외살이에 대해 30년 이민자보다 한 달 살기로 다녀온 이들이 책을 출간하듯 아는 척을 조금 해 보자면 그동안 이곳의 엄마들과 다름없이 등하굣길과 스포츠 레슨을 위해 센터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을 보면 수수하게 다니는 것은 맞다. 다만 그네들도 신경 안 쓴 듯 나름의 꾸안꾸 룩의 룰이 있고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다. 무심히 걸친 겉옷은 회사 대표의 환경 운동으로 유명한 '파타고니아'(Patagonia)를 좋아하고 학교 주차장에는 한국에서 선호하는 유럽산 차는 손에 꼽고 '테슬라'(Tesla)가 정말 많이 보인다. 전기차를 타는 것이 파타고니아를 입는 라이프 스타일과 같은 맥락이랄까. 신발은 대부분 운동화를 신었고 초등학생과 어린 10대 들은 교복 위에 후디를, 고등학교 정도 가면 내 눈엔 평범한 후디로 보이지만 미국 인플루언서가 론칭한 신상 브랜드 '매드해피'(MADHAPPY)같이 한국에서 온 아줌마에겐 다소 생소한 브랜드를 입는 것이 (생소하나 가슴팍에 크게 브랜드가 쓰여 있다) 눈에 띄었다.


산호세를 벗어나면 조금 다른 분위기인데 40분 거리에 있는 미국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해안가 부촌인 소살리토(Sausalito), 티뷰론(TIBURON) 지역으로 브런치를 가면 요즘 캘리포니아 이상 기온 탓에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서 그런지 얇은 몽클레어(Moncler) 패딩에 룰루레몬(lululemon) 레깅스를 입고 유모차를 미는 엄마를 한 번은 마주치게 되니 실리콘밸리와는 결이 살짝 달라 보였다. 선호하는 브랜드는 달라도 실용성을 우선시하는 캘리포니아 엄마들도 이날만큼은 좀 더 포멀 하게 혹은 한껏 멋을 내고 나오는데 다름이 아니라 교회를 가거나 학교와 회사에서 열리는 파티 모임이 그렇다.


오늘 같은 학교 학부형이자 이곳 이민자인 친구와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곧 있을 봄 방학(Spring Break) 전 날 부활절(Easter) 파티에 무엇을 입어야 하는지 전화로 한 참 수다를 떨었다. 파티 행사는 사전에 달걀 모양 케이스 12개에 캔디와 같은 작은 선물을 넣어 미리 준비하는 것과 함께 파티 당일 아이와 부모가 같이 사진도 찍기에 나는 이왕이면 단정하고 화사하게 입어 추억이 될 사진에 잘 나오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내 마음과 학총에 참여하는 엄마들 마음이 같은 것 아닐까. 저출산 대책을 운운하며 아이 엄마들의 실수는 모두 맘충으로 치부하고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입을 옷이 없고 들고나갈 가방 없다는 말도 눈치 보게 하는 곳이었던가. 학부모총회 관련 기사 쓰신 기자 중 학부모가 있다면 어떤 옷차림으로 입고 갈지, 가방은 무엇을 들지 본인은 단 1분도 고민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San Jose,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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