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계시나요? 왜 무엇을 그릴지 고민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싶은 것과 내가 그리고 싶지 않은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그림은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려야 할까요?
훌륭한 작가는 언제나 자신의 주변을 그렸다고 합니다. 매일 생각하고 매일 보는 것들이 나이고 그 안에서 영감이 얻습니다. 흔히 보이는 무수한 순간들에서 찾아진 영감은 곧 내가 되고 내가 대상이 됩니다.
고흐는 낡은 구두를 보고도 인간의 삶에 깊은 고뇌를 담았습니다. 외로운 생을 살았지만, 사람들의 진정성을 보려 했고 그림으로 담아냈습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별이 되어주길 바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희망의 빛으로 전했습니다. 왜 고흐의 아름다움에는 사람들의 깊은 영혼을 담고 있을까요?
박수근의 작품에서는 서민적인 향수가 느껴집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을 그립니다, 박수근은자신이 그런 평범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삶에서 흔히 드러나는 일상을 박수근의 인간적인 모습 그대로를 그렸습니다. 왜 박수근의 대표 작품들은 빨강도 노랑도 그 흔한 하늘빛도 없이 황톳빛과 잿빛으로 물들어 있을까요? 이것이 박수근의 평범함 속에서 가장 박수근다운 모습이고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고흐의 작품에는 고흐의 삶이 담겨 있고 박수근에 작품에는 박수근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대가들 역시 작가의 가까운 곳에 드리워진 대상을 표현합니다. 고흐가 아이 업은 아낙들의 모습을 잿빛으로 그리는 상상을 해보실래요? 박수근이 아를의 카페테라스를 그린다고 노랑과 파랑으로 그리는 상상이 가능해지시나요? 어떻게든 작가의 표현 언어로 재해석하여 그려지는 것이 그림입니다. 그 언어는 작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작은 습관에서 비롯된 삶의 전체입니다. 작가의 몸짓 마음 짓이 모여 마음체가 되고 그림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떠한 대상을 그려도 자기만의 언어로 해석되면 의미를 품습니다. 대상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닌 나의 시선만으로 내가 바라보고 싶은 생명이 됩니다. 사물에도 본연의 기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매일 혹은 자주, 함께 하면서 비롯됩니다. 작가가 담은 마음이 그림에 배어납니다. 대상의 본질이 나의 본질과 맞닿아 붓질 한 잎 한 잎을 그려주니 그림에서 작가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저는 나무를 보고 인간의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의 삶을 그리며 사람이 치유의 감정을 느끼길 바랬습니다. 그것은 제 모습이었습니다. 자연을 통해 여자의 애환과 기도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의 시작은 또한 주변의 작은 풀들과 나무였습니다. 그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엄마로서의 삶에 감사를 느꼈고 사람들에게 그 사랑과 엄마다움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자 함입니다. 제 그림 빛이 따뜻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 그림으로 표현하는 순간 나다움의 시작입니다. 작가가 나다움을 찾고 그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고흐 그림은 고흐스럽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박수근스럽습니다. 무엇을 그리든 여러분의 생각과 흔적을 담은 나다움의 표현입니다.
아직도 무엇을 그릴지 고민이 되시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다 멋진 그림을 그리겠다는 소망이 저의 초등학교 4학년 문집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모나리자의 그림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전혀 모른 채 작가를 꿈꾸던 꼬마 아가씨의 야심이라고 하면 귀엽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꿈에 뛰어듭니다.
10대에 나는 그림이 재미있어서 그렸습니다. 잘 그릴 수 있다고 믿었고 잘하는 것을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루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대에 그려야 하는 것을 그려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여전히 모나리자의 높은 이상만을 그리려 했습니다. 대단한 것을 그리려 했고 나다움과 상관없이 그림이 그려지는 줄만 알았습니다. 어쩌면 주입식 교육에서 보고 배운 습관의 잔재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무얼 그려야 하는지 고민했고, 고민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20대가 저물어져 갈 무렵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무얼 그려도 가슴이 뛰지 않았습니다.
작가와 작품, 대상은 한 몸입니다. 처음부터 마음만 홀로 천상을 날아다니면 허상을 그리고자 한다면 외롭게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길고 혹독할 것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늘 내가 바라보고 정성을 들이는 것을 그려보세요. 책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작은 무언가가 당신을 보고 미소짓고 있지 않나요? 밝은 목소리로 인사해 주세요. 안녕! 손으로 보듬고 느낌을 말해주세요. ‘너 참 부드럽다’, ‘너를 보니 내 마음이 은은해 진다’,‘내가 친구가 필요한데 널 그려 보고 싶은데 그려도 괜찮겠니?
당신의 마음에서 공감하는 것을 내어주세요. 어디부터 그려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단 작가가 매일 보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곳에서 그리기를 시작하세요. 기분 좋아지는 것들을 반복해서 그리세요.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이 무엇이고 내 마음 어느 곳에 닿는지 느껴보세요.
혹시 책상위에 물건들이 이야기하시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내 마음을 들여다 봐줘서 고마워‘ 나도 네 덕에 기분이 좋아졌어’, ‘날 웃는 미소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줄 수 있겠니?라고요. 천천히 시도해 보세요. 내 주변의 사물들의 대화를 말입니다.
사진이나 그림을 습관적으로 따라 그리기보다 대상을 놓고 눈으로 마음으로 교감하면서 그리세요. 풍경을 그려야 한다면 가급적 내가 찍은 사진을 그려주세요. 내가 찍지 않은 사진은 내 마음이 깃들지 않아서입니다. 사진을 보고 그리더라도 사진 속 이미지와 호흡하며 그리세요. 풍경이라면 내가 그곳을 걷고 있는 상상을 하고 걷는 동안의 사색을 읊조려 보세요. 저는 당진의 들판을 그리며 엄마의 휴식을 떠올립니다. 그리는 내내 마음의 안식을 느끼며 위로받고 눈물 흘립니다. 감동의 눈물 치유의 눈물입니다.
가까이 있어야 그리게 됩니다. 자주 그려야 그리고 싶습니다. 그려야 나다움이 보입니다. 나다움으로 표현해야 재미있습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림 속 대상과 호흡하며 함께 고민하고 함께 웃어 보세요. 그런 나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우주를 얻은 듯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알고 있다면 무엇을 그릴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주변의 것이 바뀌고 그림은 자연스레 자신의 삶과 함께 변화할 것입니다. 내 삶을 사랑한다면 변화하는 자신의 모두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