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기요."
"어? 왜?"
과외수업을 시작하려는데, A가 나를 불렀다.
"........저.."
A는 한참을 뜸을 들였다. 숙제를 안 했다거나, 수행평가를 망쳤다는 종류의 얘기는 아닌 듯했다. 그런 얘기라면 이렇게까지 망설이지 않는다.
"무슨 일인데 그래? 뭔 일 있었어? 얘기해봐."
"저기....저... 돈..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
"돈?"
선생님에게 맛있는 걸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는 있어도, 저런 심각한 얼굴로 돈을 빌려달라는 아이는 없다. 느낌이 안 좋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돈이 왜 필요한데?"
"................"
말을 못 한다.
"돈이 얼마나 필요한 건데?"
"저. 그게..... 십...만원...이요."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열일곱인 아이인데 십만 원이라니. 뭔가 큰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이의 입을 여는 게 급선무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혹시 엄마도 아시는 일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엄마가 아시는 일이라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일도 없을 것이다.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얘길 해야 도와주든 말든 하지."
A는 한참을 망설이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임...신..."
A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
"............."
말문이 막혔다. 고1 아이가 임신이라니.
원조 교재를 했단다. 인터넷으로 만난 처음 만난 아저씨랑. 돈 5만 원을 받고.
2003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는 원조 교재가 막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돈이 필요했던 A는 원조 교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임신이 되었다고 한다. 낙태수술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식은땀이 났다. 이 일은 아이와 내가 해결할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A의 부모에게 알려야 했다.
"A야. 내 생각에는 이 일은 엄마에게 알려서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A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엄마한테 얘기하기 힘들면, 선생님이 대신 얘기해줄까?"
한참을 대답 없이 울기만 하던 A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을 나서자마자 A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얘기 꺼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A의 엄마는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A는 외로운 아이였다.
나는 A를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처음 만났다. 맏딸인 A에게는 초등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있었다. 직업이 은행원인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는 교육열이 높았다. 아이들에게 늘 공부를 강조하고, 수준 높은 대학을 가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A는 부모의 기대치에 한참 모자랐다. 성적은 늘 반에서 5등에서 10등 사이였다.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반에선 1등, 전교에선 10위권내에 들어야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전교는커녕 반에서조차 5등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던 A는 결국 일반고에 진학했다. 조바심치면서 A의 공부를 독려하던 엄마는 딸의 성적을 못마땅해했고, 일반고 진학을 수치스러워했다. A는 엄마 아빠의 눈치를 봐야 했고, 노력해도 향상되지 않는 성적으로 인해 패배감에 휩싸였다.
결국 엄마의 기대와 관심은 막내인 남동생에게로 향했고, 남동생의 학원 셔틀을 해주느라 늘 분주했다. 2년이 넘는 시간을 과외를 하면서 그 집에서 엄마를 본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가끔 교재가 필요하다거나 진도 상의 이유로 통화를 할 때면 늘 아이에 대한 비난의 말부터 먼저 나오는 엄마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대, 연고대는 커녕 서울에 있는 대학교도 못 갈판이라고, 그럼 창피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냐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뒷바라지 다해주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화장품이나, 날티나는 옷만 사모은다고, 한심하다고 했다.
"선생님. 저는 이제 반 정도는 걔 포기했어요. 나니까 이 정도지. 애들 아빠는 이제 걔랑 얘기도 안 해요. 우리 막내 6학년 겨울 방학되면, 전 막내 데리고 강남에 방 얻어서 나갈 거예요. 막내 강남에서 교육시키려고요. 아무래도 강남이 수준이 높잖아요. 애들 아빠는 직장이 여기라서 못 움직여요. A랑 아빠는 이 집에 계속 있을 거예요. "
그랬다. A의 엄마에겐 사춘기에 접어들어 한창 예민한 시기인 딸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늘 딸을 탐탁치 않아했고, A는 부모의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나와 수업하는 중간중간, 속상함을 토로하며 많이 울던 A였다.
수업하는 날이 되어 A를 다시 만났다. 엄마와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수술을 했단다. 엄마가 아빠에게는 차마 얘기하지도 못하겠다고, 몸살 났다고 얘기할 테니 이불 뒤집어쓰고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단다. 당장 경찰서 가서 원조 교재 한 사람들 다 잡아들이고 싶지만, 동네 소문날까 봐 안 한다고 했단다. 며칠간 많이 초췌해진 A의 얼굴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날 수업이 A와 나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A의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A수업 이제 그만하려고요. 저... 소문 안 나게... 아시죠? 부탁드릴게요. 소문나면 우리 얼굴 못 들고 다녀요."
A의 엄마는 끝까지, 소문날까 두려운 본인 걱정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A의 일은 그 엄마에게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영원히 묻어버리고 싶은 비밀. 그 비밀을 깊숙이 알고 있는 과외선생이 그 엄마 입장에선 꽤 껄끄러웠을 게다.
그 이후로 A의 얼굴을 본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대략 15년에서 16년 정도 전의 일이었으니 A도 이제는 서른 살이 넘었겠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A의 그 창백했던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청소년들의 탈선의 원인이 무엇인지 전문가적 시각에서 분석은 못하겠다. 하지만 부모의 과도한 교육열과 성적을 우선순위로 두는 가치관이 A의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았나 싶다. A의 탈선이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집안에서 A는 한없이 외로웠다는 것. 그 아이의 부모가 성적을 떠나 A를 한 명의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보듬어줬다면, A가 덜 힘들지 않았을까.
늘 외로운 아이었다. A는.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A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하루를, 외롭지 않게 살고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