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라일락 Apr 11. 2022

편지는 기다림을 타고 간다

펜을 꾹꾹 눌러 감정을 담는 법

  '아빠 오늘 OOO 다녀옵니다. 문단속 잘하고 있으세요' 

   나는 아침잠이 많아 몸을 이불에 묻으며 잠투정을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가끔 메모로 외출을 알린다. 나도 아빠와 똑같이 나갈 때마다 종이에 메시지를 써 티브이 옆 선반에 놔둔다. 주 내용은 강아지 약은 먹였다. 약은 주지 않아도 된다, 혹은 사료는 아직이니 사료를 먹여주세요라는 내용 정도다. 말보다는 종이 위에 펜으로 적는 것이 우리 부녀한테는 좀 더 자연스럽다. 

  문득 며칠 전 이삿짐 꾸러미를 정리하다 찾은 엽서며 편지들 생각이 났다. 편지는 기다림과 설렘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어릴 적 초등학생 때에는 오색 펜을 일주일 안에 다 쓸 만큼 글을 많이도 썼다. 글이라 하면 편지며, 교환일기 같은 것이다. 묵은 이삿짐 속 고이 간직해두었던 편지봉투들이 마치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 같다. 이렇게 편지가 생각난 이유는 얼마 전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후부터다.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스텝퍼를 밟을 때 시선은 앞으로 가 있고 발은 쉼 없이 움직인다. 이대로 삼십 분가량 견디려면 뭐든 틀어서 봐야 했다. 순간 한 채널에서 리모컨을 멈췄다. 영화 이름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강하늘 씨와 천우희 씨가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의 대사도 듣지 않고 시선을 고정한 이유는, 책방, 편지, 우체통, 천천히 돌아가는 LP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배우들의 표정이 일상적이고 담담해서였다. 사실 내용은 이렇다 하게 자극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주인공 영호와 소연은 편지를 통해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또 그 안에서(편지 속)에서 약속을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순수하고 수수해서 맑다 라는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였다. 편지라는 소재를 보다 보니 내 기억의 한 모퉁이 속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사촌동생 집에 가곤 했었다. 형제가 없어 심심한 이유도 있었고, 사촌동생이 세명이라 함께 놀 때면 정말 즐거웠으니까. 일주일, 칠일이라는 시간이 기다리기 힘들어 편지지와 펜을 들고 책상 앞에 앉곤 했었다. 'OO아 다음엔 뭐하고 놀자'라는 계획과 포부를 한껏 적어서. 답장이 없는 일방적인 편지여도 내 이야기와 감적을 적는 것이 그저 좋았었다. 

  지금은 줄 공책에 아침마다 브런치를 쓴다. 한번 더 데스크톱을 통해 옮겨야 하지만 글로 직접 쓸 때 올라오는 감정들이 진짜 나 같아서 '수기로 글 쓰는 것'을 고집한다. 지금 이 브런치에 수신인이 없지만 글을 쓸 때면 불특정 다수인 어떤 공간에 내 글을 툭 날려 보낸다고 생각한다. 이 글들이 모여 여러 페이지가 되고 한 권의 이야기가 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가끔 아주 가끔 내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는 위안을 받기도 공감과 격려를 얻는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괜히 한 게 아니구나 하고 힘이 나니까.

  브런치도 일종의 편지라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머릿속에 지나간 이야기를 펜으로 옮긴다. 수신인 없는 이 글을 한 명이라도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전글 느리게 달리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