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도 않은 소소한 일상의 단상
5월 5일 어린이날은 내게 쉬는 날이다. 어차피 다음날인 금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기에 잠깐 스쳐 지나가듯 쉬는 요일이랄까. 어린이날은 공휴일, 휴무일이라는 여러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내게는 제일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바로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니까. 그런데 이제는 의미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엄마도 없는데 뭐, 아무 말도, 어떤 의미도 두지 않은 채 올해는 그냥 조용히 넘어갔던 날,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5월 7일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친구들은 어버이날이랍시고 부모님과 함께 갈 한정식집을 예약해놓거나 카페를 찾아두거나 혹은 엄마 가방을 사준다며 백화점에 직접 갈 거라고 효도 플렉스를 한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나에겐 뭐라 특별할 것도 없는 날이었다. 무심코 길가를 걷는데 그동안 문 닫혀 있던 꽃집들이 거리에 카네이션을 펼쳐 놓았다. 나는 '사랑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붉게 핀 카네이션 들에 시선을 내주었다. 아직 잎이 피기 전 꾹 다문 봉우리가 꽤 많은 화분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 거주세요'라고 말했다. 효도는 셀프라고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처럼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카네이션은 어버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겠다.
그날 아빠는 새벽 4시에 고향 여주로 떠났다. '강아지 밥, 약 안 줬으니 꼭 줘'라는 쪽지와 함께. 작은 아버지의 아들, 아빠에겐 사촌인 동생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빠의 친척분인 사촌은 엄마 부고 때도 와준 분이었다. 아빠는 집안 경조사인데 안 갈 수 없다 가봐야 한다며 양복을 말끔하게 갈아입은 후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부리나케 나갔다. 고향인 장지로 가 마지막 길을 보내주고 온 아빠. 왜 하필 어버이날 돌아가셨을까. 가는 데는 순서 없고, 날짜 없다지만. 아빠와 나의 어버이날은 웬일인지 뭔가 일이 생기고 할 것도 딱히 없어서 더 서먹했다.
장지에 들렀다 온 아빠에게 내가 먼저 엄마를 보러 가자고 했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니까. 그제야 아빠는 아 오늘이 어버이날이었구나 라며 달력을 보며 오늘 날짜를 가늠한다. 아빠는 담백한 말투로 '그래 가자'라는 대답을 한 후 나와 집을 나섰다. 엄마가 모셔진 곳에 들려 조용히 바라보다가 나와 아빠와 나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옆에 사찰이 있어서 불경 읊는 소리와 바람에 날리는 연등에 시선이 갔다.
날씨가 맑지만 좋지도 않은 그런 날이었다.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를 한가득 품고 있는 것 같은 구름 떼들이 보였다. 나는 사람들이 밝혀 놓은 초 앞에 서서 잠깐 묵념하며 기도했다.
"아빠와 나, 우리 가족이 잘 살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집에 와 보니 붉은 카네이션이 더 깊은 색을 띠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어버이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