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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없는 경력직, 경력직 같은 신입

겉은 경력직, 속은 신입보다 못한 사람들

by 서이담


"저 사람은 학력, 이력이 화려해"

"그런 사람이 왜 우리 회사에 들어왔대?"

새로운 직원이 온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웅성댄다. 한참 경력이 많은 과장님 무리가 궁금한 듯이 말했다.

명문대 출신 제2 외국어 가능,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전 직장. 그는 경력직이라 불렸고, 회사는 그 이름값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는 함께 일하면 알 수 있다. 그의 경력은 오래된 자기소개서 속에서만 빛났다. 회의에서 말은 많이 했지만 일의 본질은 놓쳤다.


클라이언트에 납품해야 할 작업물의 문제가 발생하면 당장 해결해야 하는데 책임의 경계를 먼저 따졌다. 업무 범위나 잘잘못도 중요한데 그건 후 순위고 제일 중요한 게 뭔지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건 제 업무 범위가 아닙니다”

말 한마디로 빠져나가면 팀의 흐름은 늘 끊겼다. 네 일과 내 일의 경계선이 분명한 사람. 자신의 업무가 아니어도 다 같이 물건을 나르거나 힘쓰는 일이 있으면 도와줄 만 한데 그렇지 못했다. 어찌 보면 유연성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경력은 화려한 전 직장, 연차의 총합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을 움직이는 감각의 총합이다. 겉으로는 ’ 경력직‘이라는 화려한 껍질로 포장돼 있지만 껍질 안은 오래된 관습으로 굳어 있다. 마치 한번 설정된 매뉴얼만 반복하며 재생되는 운영체제 같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깔리면 충돌을 일으키고, 업데이트를 요구하면 불편해한다. 업무를 완수하기보다는 회피의 기술로 사용한다. 시간은 쌓였지만 시선은 그대로인 사람들의 모습이다.


회사에서 일을 즐겁고 재밌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경력은 많지만 일의 감각은 없는 사람들. 그들도 한때는 빛나는 꿈을 품고 두 눈을 반짝이며 뭔가에 몰두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와 반대로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이 있었다. 아직 어색하고 경력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상할 만큼 일을 '살아 있는 것처럼'다뤘다. 익숙하지 않아도 두렵지 않았다. 배우는 속도보다 이해하는 깊이가 빨랐다. 상대를 이해하고 알아서 센스 있게 행동했다.

가르치지 않아도 일을 감각적으로 한다. 일을 잘하니 신입일지언정 좋은 평판을 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위에서는 다른 일거리를 그에게 맡겼다. 그러니까 요즘 회사가 찾는 진짜 사람은, 경력이 아니라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감각이 뭐냐고? 눈치가 빠르기도 하지만 상황의 공기를 읽고 적절한 거리를 조절할 줄 안다.


회의에서 말이 없어도 필요한 타이밍에는 정확히 한마디로 중심을 잡는다. 일 처리가 번쩍이지는 않지만 맡은 일에는 결과를 보여준다. 가벼운 자신감이 아니라 이해하고 해 보려는 진심이 담겨있다.


경력이란 결국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선의 깊이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사람을 증명한다. 회사에서는 오래 일한 사람도 많고, 단기간 많은 일을 해낸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시간이 아니라 시선의 방향으로 구분된다. 나 역시 연차보다 태도를 본다. 경력은 직함이 아니라 자기 일에 대한 태도로 드러난다.


일을 오래 한 사람보다 일을 깊이 본 사람은 가파르게 성장한다. 어쩌면 우리는 일의 깊이를 알기 위해 실무에 뛰어들며 일의 감각을 몸소 배운다. 그리고 깊이를 잃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성장 중인 신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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