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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14. 2021

회사 동료 엄마가 싸준 김밥을 5분 만에 먹었다.

최선을 다해 만든 음식에 감사를 표하며

‘엄마가 오늘 김밥 싸 줬는데 드실 분은 카톡 방에 말씀해주세요’

회사 대리가 오랜만에 본가에 갔는데 엄마가 김밥을 여러 줄 싸줬다며 내일 아침으로 김밥 먹을 사람 일명 ‘김밥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은 우리 회사 팀들은 나를 필두로 해서 전원다 손을 들었다. 나와 친한 대리는 언니껀 알아서 제가 챙길게요라고 넌지시 따로 카톡을 줬다.

엄마 밥을 먹어 본 지 얼마나 됐지? 사실 까마득하다. 나는 엄마를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항상 이른 아침 바쁘게 나갈 때마다 똑같은 음식을 하곤 했는데, 거의 일주일치는 먹을 수 있는 국이었다. 한 번은 미역국, 된장국, 두부가 없는 날에는 그냥 심심한 시래깃국 정도. 엄마 맛있는 거 없어?라고 말하면 네가 엄마를 해서 줘야 될 나이 아니니?라고 되묻곤 했었다. 하지만 서투른 음식에는 시간에 쫓겨서 빨리 할 수밖에 없는 음식을 해야 된다는 이유가 있었고, 늘 같은 국과 반찬이었던 나는 투정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끔씩 사 오는 특식은 엄마가 회사 카드로 산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엄마는 나중에 구토와 동시에 소화가 안된다며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 거리며 살이 40kg대 까지 빠졌는데 그건 입맛이 없는 탓이라며, 회사 돈으로 본인이 먹을 것을 날 위해 사다주신 분이다. 그래도 엄마가 서툴게 끓여줬던 김치볶음밥, 김치찌개는 맛있었는데...... 엄마 방식대로 끓이는 찌개에 엄마만의 맛이 담겨 있었으니까 말이다.


출근을 하자 옆자리에 앉은 대리가 김밥 한 줄을 내게 건넸다. 쿠킹포일로 꾸깃 꾸깃하게 싼 김밥 한 줄, 김밥 안에는 내가 싫어하는 오이도 없다. 나는 옆 자리 대리에게 물었다. ‘오이는 왜 안 넣은 거야?’ ‘엄마는 제가 싫어하는 야채는 다 빼주거든요. 저한테 맞춰서 만들어준 김밥이에요’ 나는 그 김밥이 꼭 나를 위해 싸준 것만 같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본인을 위해 음식을 싸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나는 빠르게 포일 지를 벗겨 김밥 꼬다리를 들어 먹었다. 간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엄마 맛이 났다. 김밥천국에서 파는 김밥과 다르게 옆 자리 대리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재료 하나하나에 담겨서 목구멍을 지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나는 우걱우걱 빠르게 단숨에 김밥을 먹었다. 먹고 또 먹었다. 이 맛은 도대체 어떤 맛이지. 김밥을 넘기면서 그녀를 생각하는 그녀의 엄마의 손맛이 느껴져 청승맞게 눈물이 날뻔했다. 그래서 손에 쥔 김밥을 계속 먹었다.

왜 파는 거랑 다른 거지?라고 생각하며 또 하나를 먹었다. 간이 유난히 센 건가? 특별한 재료가 들었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야채김밥이었다 게다가 전날 만들었기에 밥도 약간 차가웠다. 그럼에도 김밥 맛에 물음표를 던지며 정말 오분만에 김밥을 후루룩 다 넘겨버렸다. 김밥을 다 먹은 나를 보며 옆 자리 대리는 벌써 다 먹었냐며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나는 너무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 맛, 그 맛이 그리웠던 걸까. 이게 어떤 맛인지 알 듯 모를 듯 생각하며 먹게 되는 오묘한 맛은 엄마를 생각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아침은 든든하게 김밥으로 채웠으니 왠지 그날 하루는 힘이 날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엄마가 해준 밥이 어떤 밥인지를. 술에 빠져있었고, 인스턴트에 길들여져 있어서 자연스러운 맛이 뭔지를 몰랐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나는 옆자리 동료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어머니에게 꼭 고맙다고, 내가 잘 먹었다고 전해달라고 했다고, 음식 너무 잘하신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평범한 김밥이 특별할 수 있는 건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든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란 걸, 그날 온몸으로 느꼈다. 나는 매일 햇반에 통조림이나 인스턴트를 먹곤 한다. 간편하기도 하고 손이 덜 가기도 하고. 그런데 이제는 나도 엄마의 마음을 담아, 서툴지만 조금씩 해보기로 한다. 엄마가 내게 그러했듯이, 서툰 그 맛도 닮아가겠지만 금방 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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