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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12. 2021

최선을 다해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 시간, 돈 다 쏟을 각오를 다지며

‘아끼면 똥 돼. 다 쓰면 또 사면되고, 안 쓰고 쟁여두지 마 아끼다가 그거 정말 못 쓸 수 있어’ 매일 내가 아빠에게 하는 말이다. 억척스럽게 아꼈던 엄마. 물건 하나도 허투루 사지 않았던 엄마. 남들에게는 퍼주면서 정작 자신의 것은 최대한 싼 것을 고집했던 엄마. 그럼에도 싼 걸 입어도 명품처럼 빛나서, 항상 주변 아주머니들, 고모들이 이 코트, 가방은 어디 거냐고 물어봤던 게 우리 엄마다. 엄마의 사망 이후 곳곳에서 쟁여두었던 물건들을 발견하게 됐다. 보통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들이거나, 비닐 압축팩에 따로 엄마가 두었던 것들이 대다수였다. 종류도 내용물도 가지각색. 부엌에는 먹을 것들이 비축돼 있는가 하면, 화장대 근처에는 사용하지 않은 샘플들이 수두룩했다. 이거 하나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쌓아만 두고...

 물건들을 정리하며 나는 괜한 아쉬움에 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나 엄마가 마지막에 내게 주었던 물건은 바셀린이 었는데 병원 아주머니가 소분해 나눠준 것이라며 피부가 건조하거나 텄을 때 바르라고 했었다. 유통기한은 소분 일로부터 1개월. 1개월이 지났지만 쓰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고, 엄마의 글씨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며 아빠가 상여금으로 받았던 금강제화 상품권을 찾았다. 어디 보물 찾기라도 하듯이 정말 오래돼 빛바랜, 연식이 오래된 상품권이다. 아마 아껴두느라 조심스럽게 숨겨놨을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구두 상품권이 있는데 내게 구두를 맞춰준다고 한 적이 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는 구두가 딱히 필요가 없고, 금강제화는 이름이 촌스러워서 ‘무슨 그런 데서 구두를 맞추냐며 손사래를 쳤는데 …. 그 나날들이 괜스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세일을 할 때마다 옷을 샀다. 원래는 이거 10만 원 20만 원이 넘는 거야.라고 하면서 건진 옷들 중에는 소위 말해 촌스러운 옷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엄마는 왜 이렇게 촌스러운 옷만 고르냐며 비아냥 거렸는데 그게 사실은 제일 합리적인 옷을 고르기 위한 알뜰한 엄마의 소비전략이었다는 걸 수년이 지난 후에서야 알게 됐다.


최선을 다해서 아끼지 않기로 했다. 옷도, 음식도, 오늘 하루의 삶도, 지나치게 아끼지 않으면서 살 거다. 남은 아빠에게 내가 한 말이다. 아빠 본인에게 스트레스받으며 살지 말라고, 맛있는 거 먹으며 좋은 거 보며 그렇게 즐겁게 남은 인생을 살라고. 그렇게 살자고 우리. 노랗게 빛바랜 금강제화 상품권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왜 상품권 조차 쓰지 않은 채 모아놨을까.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았을까.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는 엄마 앞에서 오늘만 털어내고 그만울거라고 말한 뒤에 엄마 앞에서 시원하게 운 일, (엄마가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울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또 하나는 사랑한다고 말한 일이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그게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고 말했다. 후회하기 싫어서 말했는데. 그게 잘했다면 내가 한 일중에 제일 잘했던 일이라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감정도, 돈도, 먹는 것도, 노는 것도. 하나 남은 아빠를 위해 함께 하는 반려견을 위해. 아끼지 않고 사용하려고 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더 나은 날을 위해 오늘을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 아빠와 주말을 보낸다. 그리고 약속을 지킨다.

‘라라야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 보러 가자’

‘응 그러자’

‘오면서 맛있는 것도 한 번씩 먹고’

기꺼이 아빠를 위한 시간을 아끼지 않으련다. 앞으로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까. 누렇게 된 유효기간 지난 상품권처럼 아끼다가 못쓰게 되기는 싫으니까. 마음껏 쓸 거다. 아빠 그리고 나를 위해서. 철저히 아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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