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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09. 2021

엄마의 스마트폰을 해지한 날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엄마의 계절은 지금 어떨까를 생각하며

엄마의 스마트폰을 해지한 날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벚꽃이 빨리 진 어느 2021년 봄 비가 한 차례 오더니 벚꽃이 다 떨어졌다. 아름다운 것은 반짝, 금방 지나간다더니 제대로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다 져 버렸다. 엄마의 삶도 그러했을까를 생각한다. 겨우 숨좀 돌리고 살라했건만. 4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이제 여행도 다니고 TV도 보면서 쉬려고 했는데 진짜 먼 여행을 떠나버렸다. 나는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말이다. 


엄마가 쓰던 공짜 스마트폰 알뜰폰을 해지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평생 써온 번호를 지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문을 지우는 것과 같아서, 그냥 놔두고 싶었다. 할머니가 곱게 죽고 싶다고 입에 닳도록 엄마한테 말했을 때 엄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흙이 돼 그건 조물주가 택해. 나도 흙으로 돌아가.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 라고 말하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런데 그 선택이 왜 엄마여야 했을까. 괜히 먼 허공을 보면서 신을 원망해본다. 

엄마의 스마트폰을 내 손으로 직접 정리하기로 했다. 알뜰폰이라 일반 매장에서는 불가능하고 따로 전화를 해야 한단다. 이럴 거면 조금 돈을 내더라도 좋은 걸로 바꿔 줄걸 괜히 후회가 된다. 그렇게 밀린 요금을 내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히 엄마의 스마트폰은 정지가 되었다. 그러나 카톡은 살아 있었다. 잠깐 휴대폰을 켰을 때 엄마와 같은 병동을 썼던 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랑 분명히 만나기로 했는데, 병원에는 엄마가 없고, 이상해서 연락을 해봤는데 전화는 받지 않는다고. 같은 암 환자여서 그랬던가 엄마의 소식을 말하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회사에서 급작스럽게 받은 전화라 당황했는데, 아줌마는 나보다 더 놀란 목소리로 어떻게 하냐며 어쩌다 그러셨냐며 그간 근황을 내게 말했다. 또 다른 아주머니 한분은 매일같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엄마의 카톡으로 성경 구절을 보내왔다. 도대체 정체가 뭔지 궁금했던 나는 아주머니께 ‘누구세요?’라고 보냈다. 엄마의 사망 소식을 전혀 모르던 김영아라는 아줌마는 엄마 전 회사 직장동료였고, 가끔씩 사당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말했다. 나는 카톡으로 ‘저는 엄마 딸입니다. 엄마는 1월 14일 10시에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와 모임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내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할 자신이 없었다. 전화를 하면 왠지 울음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엄마의 핸드폰을 켰을 때도 눈물이 났으니. 아주머니는 엄마와의 추억이 많은 동생이라며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아 아빠가 대신 전화를 하기로 한다. 아빠가 대신 울고 있었다.


엄마의 문자내역과 카카오톡 내역을 쭈욱 살펴봤다. 보험 GA였던 엄마는 급한 업무로 사람들, 거래처들과 이야기한 내용, 몸에 좋은 글, 긍정적인 글들을 본인이 아닌 남들에게 보내며 하루하루 희망으로 살고 있었다. 항상 병원 사람들은 엄마를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 여기 오니까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라는 말을 입에 닳도록 말했던 엄마. 메모장에는 간호조무사님 이름부터 간호사 의사 선생님 병실 식구들 이름이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그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해준 사람들의 목록이었다. 몸이 아픈 와중에 이모를 시켜 병실에 떡을 돌렸다고 한다. 엄마는 병실에서 선생님처럼 조곤조곤 잘 설명해 ‘선생님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자랑했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 엄마를 볼 수 없다. 스마트폰 해지를 하고 나서 알림 말을 변경했다. 하늘의 별이 된 엄마라고. 더 이상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없는 난 카카오톡으로 엄마를 만난다. 보고 싶을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 핸드폰을 켜본다. 아직도 가끔 보험 관련된 문의가 카톡으로 올 때가 있다. 그것들에 하나하나 대답하다 보면 또 한 번 가슴이 시큰해지기도 하고 아리기도 해서 쭉 살피다가 금방 끈다. 

핸드폰을 해지시켰지만 엄마가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핸드폰 속에 스며들어 있는 엄마의 손길, 카톡, 전화번호, 사진 모든 순간들을 만날 수 있으므로. 고로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헛헛한 감정은 무엇일까. 엄마가 보고 싶은 날 오랫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애써 잊지 않기로 한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데로, 그리우면 그리운 만큼 최선을 다해 슬퍼하고 추억할 것이다. 번호를 지운다고 해서 그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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