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참으로 담담하지만 사무치는 날
한 동안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변명을 하자면 글을 쓰며 감정을 쏟아내는 나를 마주하기가 겁났다. 애써 매일매일 슬픈 감정들을 대체할만한 것 이를테면 직장, 핸드폰, 자극적인 다큐멘터리나 드라마 등을 보며 지난 세 달을 보냈다.
난소암으로 투병하던 엄마가 지난 1월 돌아가셨고, 키우는 강아지는 노견이 되어 심장 비대증에 걸렸다. 설상가상 TV에서나 보던 집안싸움, 돈 싸움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고, 뭐가 진실인지 마주하고 싶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글을 쓰다가, 엄마 이야기를 한 없이 쓰다 보면 슬퍼질 것 같았다. 슬픔은 깊은 독 속에 들어간 것처럼 좁고 깊었다. 어둠 속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쓰다 보면 나아질까. 정확히 엄마는 1월 14일 밤 10시경에 심 정지가 와서 돌아가셨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2차 항암을 너무 빨리 한건 아닌가 싶기도 하는데, 의료사고 같기도 한단다. 아니 의료 사고 같은 게 아니라 의료사고가 맞다. 전날까지도 나와 문자를 했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한데 말이다. 이건 꿈이다. 그럴 리 없지. 엄마가 무슨. 아직도 엄마가 병원에서 웃으면서 돌아올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는데.
회사에서 퇴근한 나를 붙잡고 아빠는 엄마가 숨 넘어가기 직전이라며 병원으로 갔다. 중환자실에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로나 때문에 중환자실도 맘대로 못 들어가게 해서 아빠는 아무 방법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코로나라는 녀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미웠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종이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편지를 써 엄마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을까. 그 편지 속에 들어있는 글자에는 얼마나 많은 마음들이 뜀박질하며 달려 나가고 있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볼 수가 있어서. 엄마한테 말할 수 있어서.
아빠가 엉엉 울었다. 처음 보았다. 아빠가 소리 내어 우는 것을,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담담했다. 누구의 눈에는 씩씩해 보였고, 또 다른 이의 눈에는 의젓해 보였고, 힘든 아빠를 보필해야 하는 딸로 보였지만 그 누구보다 슬픔으로 가득 찬 사람은 사실 나였다. 나는 목 놓아 우는 아빠의 목소리 앞에서 애써 담담한 척 마음을 추슬렀다. 엄마의 온몸에는 주삿바늘과 심폐소생에 쓰였던 것들이 놓여 있었다. 점점 파래져 가는 엄마의 몸을 오감으로 기억한다. 축 늘어진 손과 마지막까지 감은 눈을 보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가 하고 싶은 여행 마음껏 해 미안해. 다음엔 내 딸로 태어나줘 꼭. 하고 싶은 거 다 시켜줄게.”
뒤이어 친척들이 왔다. 이모들은 엄청 크게 엉엉 목 놓아 울었다. 나는 그 모습들이 다 가식 같아서 쳐다보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만 숙인 채 엄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제대로 울 시간도 없었다. 바로 장례를 시작해야 했으므로. 모든 걸 처음 겪어보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서 상주가 되는 일도, 그에 따라서 손님을 맞이하고 사람들에게 상을 당했다고 전하는 일도 오롯이 내 몫이었다. 사실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고마웠다. 몇 년이 지난 회사 동료들도, 함께 글을 쓰던 지인들도 너 나할 것 없이 와주어 엄마의 안녕을 함께 해줬기 때문에. 왜 말을 안했냐며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어온 고교 동창생들부터 하나같이 내가 안 좋은 생각을 할까 봐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꽤 의젓하게 상주 노릇을 잘하는 것 같다며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주었다.
마지막까지 엉엉 울지 않았다. 슬픔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듯이. 장례식장에 아무 말 없이 하루 종일 있어준 남자 친구는 말없이 애도를 표했다. 새로운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남아있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삶을 잘 살아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글 쓰는 게 한동안 무서웠다. 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몇 시간 동안 엉엉 울 것만 같았으니까.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어도 타인을 신경 쓰는 나는 내 글이 꽤 괜찮은 글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쓴 적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 신경 안 쓰고 써보려고 한다. 진짜 내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