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은 개의치 않고 펑펑 울겠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앨리스에서 배우 주원이 주인공역 박진겸으로 나왔다. 시간을 지배할 수 있는 자, 시간여행자의 아들로 태어난 진겸은 웜홀에 대한 부작용으로 드라마에 무감정증으로 나온다. 그러나 괴한에 의해 엄마를 잃고 지키려고 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진정한 감정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나는 극 초반 너무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 댓글을 찾아보는 편인데 실시간 댓글에 재밌는 게 달려 있었었다. '진겸이 이 정도면 감정 탈부착 가능한 거 아니냐' ' 이쯤이면 무감정증 아니다 ㅋㅋ'
드라마 앨리스에 나오는 시간을 다스리는 사람 진겸은 정말 감정 탈부착이 가능했을까. 정말 감정 탈부착제가 있었으면 당장 사서 머리에 꼽는 피스처럼 떼었다 붙였다 할 텐데.
내게 아침과 밤은 꽤 곤혹스러웠다. 타이밍도 그랬다. 하필 새 회사에 온 지 얼마 안돼서 아니, 당일날 알게 된 엄마의 상태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옛날이었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텐데 어떻게 보면 감정조절을 잘하는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감정을 숨기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감정을 숨겼으니까. 내가 가족 때문에 일을 못하는 사람이 돼 있기는 싫었다. 그리고 괜히 회사 사람들에게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알려 동정받기도 싫었고, 나 때문에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원치 않았다.
새로 만난 부장님, 과장님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사실 나는 내 사람들이라고 확신하면 마음을 확 열고 다가가는 편인데, 도저히 못 말할 것 같았다. 새로운 부장님은 실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그래서 일에 대해서 크게 닦달하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일을 할 때 기다려 주실 줄 알고, 제품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면 함께 해 나가자고 하시는 분이었다. 아직 2주밖에 안됐지만. 그럼에도 첫회사 트라우마 때문인지 나는 내 안에 있는 감정을 꽁꽁 숨겼다. 그 숨긴 감정들이 여드름처럼 올라올 때면 내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마치 곧 터질 것 같은 홍시처럼 말이다. 그래도 용케 잘 참았다. 그리고 밤이면 억눌렸던 감정들을 쏟아냈다. 글을 쓰면서도, 노래를 들으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 감정은 뭘까 싶을 정도로 울고 또 울어서 눈두덩이가 정말 눈알을 덮을 만큼 퉁퉁 불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많이 울고도 들키기 싫어서 머리카락으로 일부러 눈을 덮거나, 뿔테 안경을 써 할머니, 아빠가 보지 못하도록 감췄다.
업무가 끝나면 엄마가 이상하리만치 보고 싶은 저녁이 찾아왔고, 곧 어두컴컴한 밤이 됐다. 그러나 내게는 눈물도 사치였다. 나는 눈물을 빨리 털어내고 일어나야 했다.
남아있는 것들, 내가 지켜야 될 사람들
나는 남아있는 할머니를 돌봐야 했다. 압박골절 때문에 할머니가 화장실에 갈 때면 손을 앞으로 짚게 하고 엉덩이 들어 올리는 걸 도와줘서 넘어지지 않게 도와줘야 했다. 내겐 울 시간이 없었다. 아니 그 사람들한테도 내 감정을 들키면 안 됐다. 엄마가 난소종양이라는 걸 알면 나보다 할머니가 더 슬퍼할 테니까. 발에 힘을 주고 이를 꽉 깨물었다. 버틸 수 있다고, 지금 이 순간 제일 힘든 건 엄마겠지라고 계속 되뇌었다. 나는 엄마가 내게 부탁한 말을 계속 되뇌었다. 할머니를 부탁한다는 말, 아빠랑 싸우지 말라는 말, 그리고 집안 정리 잘하고 있으라는 말. 회사에 다녀와서 할머니의 내복을 새 내복으로 갈아입혔다. 며칠 동안 입었던 할머니 내복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화장실을 갈 때면 소변인지 대변인지 물어봤고, 손을 씻는 걸 도와줘야 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변 본 엉덩이를 휴지로 닦아드렸다. 할머니는 어릴 때 내 똥기저귀를 몇 번이고 갈았다고 했으니까. 나는 엉덩이가 조금만 축축해져도 울어대는 턱에 한시도 손이 안 가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여전히 입원을 하고 있으면서도 할머니를 걱정했다.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엄마의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했다. 할머니의 변을 휴지로 닦아주니 할머니가 '내가 키운 보람이 있네, 고맙습니다'라고 존댓말로 인사를 했다. 할머니를 보니 엄마가 생각나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슬픈 감정에 대해 당연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 몇 명에게 물어봤다. 이 감정이 맞는지. 내가 이렇게 울어도 되는 게 당연한 게 맞는 건지. 아마 이전에 길들여진 사회생활 때문일 것 같았다. 첫 직장생활과 스무 살에 사귄 친구들 사이에 감정적인 나를 보며, 분위기를 적당히 맞출 줄 알아야 된다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렇게 우는 감정이 맞는 건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내 감정은 내 거지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
감정 탈부착제는 없지만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며 잘하고 있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괜찮냐고 하기보다 오늘도 잘하고 있다고, 조금 더 참고 해 보라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시간을 다스리는 자는 결국 나다. 지나온 시간은 손으로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도 충실해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