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수없이 죽였다

엄마가 보고 싶은 밤이면

by 최물결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 산문 등을 썼고, 문학특기자로 대학을 갔다. 그때는 우스개 소리로 누가누가 제일 불쌍한가 슬픈가, 가족에 대해 처절하게 쓰는가에 대한 느낌이 오 갈 정도로 엄마에 대한 주제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공모전을 낼 때에도 학생들이 느끼는 것들 중 연민을 자극시키기 좋은 소재로 쓰기 딱 좋은 것이 엄마였다. 백일장에 참여하기 전 나는 수년 전 사람들이 쓴 산문들을 한 번씩 찾아보곤 했다. 다른 이들이 쓴 소설 속 내용 중 제일 많이 등장하는 것이 엄마였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 살아남은 소녀가장의 이야기, 병마로 싸운 엄마, 아픈 아빠를 간호하는 엄마. 그 어느 곳에서도 엄마는 희생되어야만 하는 존재였을까. 학원에서도 그랬다. 진부했지만 엄마라는 소재는 잘 먹히는 소재라고 그래서 대회가 있을 때 나는 가상의 엄마를 만들었고, 내 이야기 속의 엄마는 늘 병 하나쯤은 달고 있었다. 그때는 상을 받기 위해서 심사위원 마음을 건드리기 위해서 늘 엄마를 아프고 또 아픈 사람으로 등장시켰던 것 같다. ‘백일장은 누가누가 불쌍한지 알아보는 대회 기도해 ‘ 우스갯소리로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때는 그랬다. 나는 여러 번 글로 내가 만든 엄마를 가장 아프게 만들어서 죽였었다. 글을 쓰는 작가도 나였으니 내가 글 속에서 죽인 셈이나 다름없겠지. 그럴듯하게 가공된 엄마의 모습이 가장 불쌍하게 죽어갔고, 그 글들 중 진짜처럼 보이는 글들은 심사위원의 마음에 들어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글들이 생각할 때면 송곳으로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아니 아리다.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가상의 글 속에서 엄마를 수없이 죽였는데, 어떻게 아프게 해야 진정성 있게 보이게 할까를 고민했으면서 정작 왜 진짜 엄마가 아팠을 때는 몰랐을까.


vinyl-records-945396_1920.jpg

엄마는 첫날 복수 2리터를 빼냈다. 복수 2리터를 배에 단채로 할머니 병간호를 했다. 아직도 수술하기 전까지는 매일 복수 주머니를 달고 복수를 빼낼 것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어제보다는 적게 나왔다며 밝다. 밝은 것인지 괜찮은 척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난소낭종이야 밥 잘 먹고, 엄마 걱정하느라 회사일 못하지 말고, 적 만들지 말고, 사람들한테 항상 잘하고”

엄마는 꽤 담담하게 말했다. 난소 좌우에 삼 센티미터의 낭종이 있는데 의사들은 모양 느낌만 봐도 괜찮을 것인지 아닐 것인지 대략 안다고 들었었다. 그런데 엄마는 가볍게 체념한 듯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수술하면 바로 항암에 들어갈 수도 있어”

나는 항암이라는 단어에 질색하며 화를 냈다. 아직 열어보지도 않았고, 수술도 안 했는데 왜 넘겨짚는 것인지. 그런데 들었단다. 엄마도 엄마의 상태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그런 상태인지 몰랐다. 수술만 하면 다 나을 줄 알았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 중 신장이식을 했던 친구가 엄마가 복수를 빼냈다는 사실을 듣고 자세히 알아보라며 엄청 많이 걱정해줬다.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나보다 엄마에 대한 그런데 엄마가 난소암병동에 입원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머리를 방망이로 세게 맞은 것만 같았다.

“병원비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보험도 다 들어놨어”

보험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간 내가 했던 행동들이 생각이 났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 하나도 와 닿지 않았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엄마에 관한 수많은 가슴 아픈 책들을 읽어도 와 닿은 적이 없었다. 그냥 나 자신이 미웠다. 나는 나쁜 딸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감정에만 솔직했던 딸이었다. 엄마가 여행 간다고 할 때 카메라 빌려달라고 할 때좀 빌려줄걸, 내 거라고 바락바락 우겼었다. 엄마가 병원 검사를 하러 갈 때 옷이 없어 내 옷을 입는 순간에도 나는 그거 내 옷이지?라고 엄마에게 물었었다. 그거 한번 빌려준다고 온 우주가 떠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11월 4일 엄마의 난소 낭종을 떼어내는 날이다. 이미 복강, 복막 쪽에도 염증이 있고 심장판막에도 전이가 있어서 동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들었다. 이 모든 게 소설이었다면 첫 페이지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웃기고 재밌는 일로 가득하게 쓰고 싶다. 지금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오로지 엄마에 관한 단상을 적고 싶어서, 그 추억들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남을 의식하는 글이 아닌 엄마를 위한 글을 쓰고 싶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부탁이란 걸 해봤다. 자존심은 더럽게 센 내가.

“정말 잘해주시는 거 알지만 더 잘 부탁드려요.”



bethesda-naval-medical-center-80380_1920.jpg

엄마는 웃으면서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냐며 웃는다. 그렇지만 난 안다. 엄마는 괜찮은 척하고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 그런데 눈물은 참으려 할수록 왜 더 세게 흐르는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갈 때, 퇴근을 할 때 에어팟 사이로 들리는 이별 얘기가 모두 엄마를 향한 것 같아서 가슴이 아리다. ‘거짓말이라도 해서 널 보고 싶어’라는 노래를 수없이 듣다가 다른 발라드를 틀었는데 그 발라드의 주인공도 엄마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결국 나는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이제 다시 쓰려고 한다. 엄마를 위한 글을. 한 글자라도 더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어보려고 브런치에 진심을 담는다. 엄마, 만들어진 엄마가 아니라 진짜 우리 엄마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엄마가 생각나는 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 출근 하는 날 엄마가 입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