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D 출판, 자가출판 시대를 열다
"교재를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수량이 적어 출판사에 의뢰하기도 그렇고....."
"형님. 그거 교보문고에 의뢰하면 공짜로 만들어줘요."
정년퇴직 후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큰 형님은 전에도 교재 이야기를 했었다. 교재가 필요하기는 한데, 일단 집필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지만 기껏해야 수강생이 20~30명이니 책을 내기도 애매하다고 고민했었다. 그런데 교보가 이런 분들을 위한 출판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니 솔직히 내심 놀랐다. 명색이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몰랐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 그 자리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말이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일단 책을 공짜로 만들어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인쇄기로 책을 찍으려면 최소 500부 이상은 찍어야 단가를 겨우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인쇄가 아닌 고해상도 프린터로 출력(인디고 출력)하는 형태일 것이라 짐작이 갔다. 프린터 출력 방식은 1부도 제작 가능하다. 출판사에서도 책을 본격적으로 인쇄하기 전에 인디고 출력을 해서 책과 똑같은 형태로 한두 권 만들어본다. 하지만 권당 단가가 인쇄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2천 부를 인쇄했을 때 권당 단가가 5천 원이라면 프린터로 한 권 인쇄하면 최소 1만 원이 넘는다.
온갖 의심을 하며 교보 POD 서비스를 살펴보았는데, 정말 내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사실이었다. 원고를 PDF로 만들어 보내기만 하면 교보에서 ISBN도 달아주고, 그럴듯하게 책을 만들어준다. 어디 그뿐인가. 판매된 부수만큼 정가의 20%를 인세로 준다.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하지만 POD 출판이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POD 출판(Print On Demand Publishing)은 책을 먼저 만든 다음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들어오면 만드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출판사를 늘 고민하게 만드는 재고의 부담이 없다. 한 권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한 권을 만들어 고객에게 발송하면 되니까. 다만 주문 제작 방식이다 보니 고객이 책을 주문하고 받으려면 약 5일에서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
책의 질도 떨어지는 편이다. 물론 프린터기의 성능이 대폭 좋아지면서 POD 출판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질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프린터의 문제보다는 디자인이 문제다. POD 출판은 디자인 편집까지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교보문고에서 편하게 만들 수 있는 탬플릿을 제공하지만 워드나 아래야한글이 기본이어서 예쁘게 편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출판사에서 만든 책처럼 예쁘게 디자인하고 싶으면 표지나 내지 디자인을 전문가에게 맡길 수도 있는데, 그러면 디자인비는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이 디자인비는 디자이너의 수준과 작업의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참고로 출판사에서 표지와 본문을 디자인하려면 보통 몇 백만 원이 든다.
POD 방식으로 출판된 책이 실제로 얼마나 팔리는 지도 몹시 궁금하다. 정가의 20%를 인세로 준다고 하지만 정가 1만 원인 책이 100권 팔리면 1만 원*20%*100=20만 원이다.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이 정도 인세를 받는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00권 팔리기 정말 쉽지 않다. 내 콘텐츠가 정말 경쟁력이 있지 않다면 한 권 나가기 힘들 수도 있다. 실제로 POD 출판을 했을 때 구매자들은 나를 아는 지인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POD 출판으로 4천 부를 판 사람도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말 소량 판매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확실히 POD 출판은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부합하는 좋은 출판 방식이다. 아직까지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에는 미미해도 그 방향이 맞다면 계속 발전한다. 출판인으로서 POD 출판의 미래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