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회계를 차가운 숫자의 나열이라고 말한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들이 격자무늬 엑셀 칸 안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모습, 혹은 두꺼운 법령집 속에 갇힌 딱딱한 규정들. 하지만 24년 넘게 이 숫자들의 숲을 헤쳐온 내게 회계는 한 번도 차가운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뜨거운 숨결이 머물다 간 ‘사건 현장’에 가까웠다.
기업이라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누군가와 손을 잡고, 때로는 격렬하게 다투며 남긴 모든 흔적. 그것이 바로 회계다. 범죄 현장에 남겨진 지문이 범인의 정체를 말해주듯, 기업이 세상에 남긴 영수증 한 장, 전표 한 줄에는 그 기업의 '지문'이 묻어 있다.
나는 나를 '회계 프로파일러'라 부르기로 했다.
흩어진 숫자의 파편들을 모아 기업의 진짜 얼굴을 그려내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종이 뭉치일 뿐인 증빙 서류 속에서 나는 기업의 성격과 욕망,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내일을 읽어낸다. 이것은 단순한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치열한 '수사'다.
이름 없는 숫자들에게 '그릇'을 찾아주는 일
회계의 핵심은 '배치'에 있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제 이름이 있듯, 기업이 쓴 돈에도 각자 이름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계정과목'이라 부른다.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이름 없이 흩어진 숫자들과 이름들이다. 이 숫자들이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기업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돈은 '비용'이라는 작은 종지에 담겨 금방 사라져 버리기도 하고, 어떤 돈은 '자산'이라는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기업과 함께 흐르기도 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신수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