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통해 보는 인문학
요즘의 가스트로 노미(Gastronomy) 즉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써 끌어올리려는 파인 다이닝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리법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처음 시작된 노르딕 퀴진(Nordic cuisine)의 붐과 함께 피클, 발효 등으로 대변되는 보존 저장 음식에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보게 된다. 가장 큰 이유로써 내추럴 와인이나 사워도우 또는 비건 문화가 하나의 서브 컬처에서 대중문화로써 자리 잡게 한 맥락과 같은 평행선에 있다고 보이는 ‘지속가능의 가치( Sustainability )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보존 음식이 지속가능의 가치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아주 단순하게 이 부분을 접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부분의 우리가 마트나 식료품들 점에서 구입하는 이미 조리가 되었거나 조리가 되지 않은 재료들 또는 식품에는 유통 기한이라는 게 존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단순히 발효를 봤을 때 발효와 부패에는 사전적으로 한 가지 차이만 존재하게 된다. 썩었으나 인간이 먹을 수 있으면 발효, 먹지 못하게 산패가 되면 이것은 부패에 해당이 된다. 그렇다는 건 발효를 비롯한 보존 음식은 묵을수록 맛도 좋아질뿐더러 ‘zero waste’의 가치에도 부합이 된다.
게다가 식당에서 일을 하며 재료를 다듬다 보면 여러 가지 많은 부산물들이 나오는데 이것들을 재활용하기에도 매우 적합하다. 원래는 버리는 재료이나 생선을 다듬고 남은 내장들을 발효시켜서 중국의 X.O. 소스를 만든다거나 남은 빵부스러기들을 모아 콩 대신 빵 속에 포함된 단백질을 이용하여 된장을 담글 수도 있고 말이다.
사실 지금 21세기에 들어 먹을거리가 풍부해졌고 기술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나 못 구하는 재료가 드문 이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먹을거리를 어떻게 오래 보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은 냉장고나 다른 전자 제품들의 등장과 함께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겨울철 먹을 야채가 없어 시작된 우리나라의 김치 문화가 이제는 김치 냉장고를 통해 단순히 야채의 보존을 넘어서 맛과 숙성까지 통제가 가능한 시대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들은 발효나 숙성된 음식을 즐긴다. 이 조리법들은 많은 나라들의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기도 하고 심지어 인류의 가장 이른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마늘을 꿀에 발효시켜서 먹었다는 흔적이 남아있고 가장 중요하게도 이러한 보존 방식을 통해 사람들의 가장 큰 탐닉 중 하나인 미식의 영역에서 매우 훌륭하며 많은 맛적인 요소들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전기로 차가 돌아가는 시대가 도래했고 지구를 넘어 화성의 테라포밍을 언급하는 시대에 먹을거리에 대한 진보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를 지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함을 이 부분을 통해서도 많이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저장 음식에 관한 역사는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문화이자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위에서 언급했듯 냉장고는 인류의 엄청난 고민을 해결해준 발명품 중 하나이다. 그 전의 인류에게 음식의 보존이란 엄청나게 큰 난제이자 고민이었고 그 해결책을 지금의 코로나 19와 같은 인류의 재앙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산균으로 대변되는 유익균들 즉 미생물과 박테리아들로 그 해결책을 찾았다. 치즈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유래가 된 이유 또한 우유를 어떻게 보존할 수 있느냐에 대한 문제를 미생물을 통해 찾았듯 말이다.
대부분의 겨울이 길고 추운 나라들에서 더욱이 이러한 식문화들을 더욱 왕성하게 볼 수가 있다. 사시사철이 따뜻한 기후들과 대비하여 겨울이 길수록 가장 대면하게 되는 문제는 먹을거리들이 드물다는 점이다. 농사도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밖에 사냥을 나가는 일 조차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렇기에 위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라 언급한 이유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 사이들에도 공통적인 면모를 띈 음식들을 발견하기가 참 쉽다. 나의 고향 부산의 고유한 봄 풍경 중 하나로써 멸치를 잡은 어부들이 멸치 그물에서 멸치는 노동요를 부르며 털어내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렇게나 많이 잡힌 멸치들을 소금을 넣고 발효를 시켜 몇 년을 묵히면 멸치 액젓이 된다. 그러나 부산과 저 지구 반대편에 떨어진 로마에서 또한 비슷한 문화를 볼 수 있는데 바로 가룸(Garum)이다. 로마시대 때의 무역의 중심이자 중심이 되는 바다를 통해 서양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데 그 당시에는 누가 뭐라 해도 지중해가 중심이었고 지중해에서 나는 많은 생선들을 지중해식 허브들과 소금을 넣어 발효를 시켜 소스를 만들어낸 게 바로 가룸이다.
북유럽에 잠시 머물던 당시 겨울이 춥고 긴 기후의 특징 상 심지어 꽃까지도 피클을 담가 먹는 덴마크 사람들을 보며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역으로 우리나라의 장아찌 또한 같은 문맥에 있다고 보인다. 피클과 장아찌에는 큰 공통점이 있다. 보통의 김치를 비롯한 젖산 발효 음식들이 유산균에 의해 발효가 된다면 피클과 장아찌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식초는 PH지수가 산성으로 떨어지며 발효를 시키지는 않지만 그 야채 고유의 효모들을 활성화시켜 재료들을 더욱 맛이 베여들고 묵게 만든다.
그렇다면 보존 음식에는 정확하게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사실 우리가 재료로써 보는 야채나 유제품 만이 아닌 모든 육해공의 재료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증류를 시켜 만드는 방식도 있지만 와인과 막걸리를 비롯한 술들은 과일이나 곡물에 포함된 효모들이 발효를 통해 알코올로 치환되는 과정을 거쳐 술이 되는 방식이고 스페인의 돼지 염장 식품인 하몽, 또는 우리의 게장들 또한 소금이 돼지와 게의 살들에 침투하여 효모를 만들어낸 방식이다. 뉴욕의 산도르 카츠가 펴낸 ‘Art of fermentation’이라는 책에 보면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뿐 일상에서 먹는 음식의 무려 1/3 가량이 발효 또는 보존 음식이라는 구절이 있다. 피자를 먹을 때 곁들여먹는 오이 피클, 그라놀라에 타 먹는 요구르트,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마시는 맥주 즉 보존 음식은 우리가 떼어 놓은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요리사가 된 이후 외갓집의 저녁 반찬 메뉴에 매우 신기하여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이유인즉슨 반찬에 발효가 빠지고서는 조리가 가능한 음식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유럽에 지내고 있으면서 10년 전 프랑스에서 지낼 때에 비해 한국 문화와 이미지가 매우 긍정적으로 상승했다고 느낄 때가 꽤나 많은 게 지금이다.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들이 완벽한 비건 음식으로써 이 곳의 요리사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과 발효가 대세인 지금의 미식 씬에서 한국의 김치와 된장에 대해 물어오는 경우도 너무나 쉽게 볼 수가 있다.
우리 스스로는 느낄지 못할지 언정 그 트렌디함 속에 묻혀있는 우리의 음식과 식문화에 한번 더 자부심을 느끼며 바라보는 계기가 모두에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