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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우 Aug 17. 2021

영국 음식은 왜 맛이 없을까...

음.... 인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재 영국 런던에서 소중한 경험들을 쌓아가고 있는 프랑스 요리 전공의 요리사이다. 뉴욕, 파리와 더불어 세계의 가장 트렌디한 도시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보니 먹는 부분에서도 이런 트렌디함을 느낄 부분들이 참 많다. 요즘 한참 유행인 내추럴 와인을 세계 최초로 상업화한 곳이기도 하며 매년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월드 베스트 식당 리스트에서도 런던에 있는 식당을 여러 군데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위의 언급한 이러한 트렌디한 먹거리들의 중심에 영국 음식이 있지는 않다. 대게 프렌치나 이탈리안 같은 유럽 본토의 요리가 베이스인 곳들이 많으며 영국에 있는데 영국 음식을 먹어 봐야지 하고 호기롭게 파이 앤 메쉬, 뱅거 앤 메쉬, 피시 앤 칩스 등을 도전했다가 아 영국 음식 정말 맛이 없구나.. 를 여러 번이고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영국은 대영제국의 찬란했던 역사와 함께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참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굳이 멀리 찾아보지 않아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 해리포터,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쉽게 볼 수 있고 비틀스를 배출해낸 나라이며 영국 영어 특유의 악센트, 런던의 랜드 마크 중 하나인 타워 브리지는 영국에 대한 좋은 환상을 심어주기에 좋은 요소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영국 음식은 왜 맛이 없을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들이 있으나 개인적으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을 소개해보자 한다.

우선 여러 가지 설들 중 몇 가지를 미리 살펴보도록 하자.


1. 날씨가 좋지 않아 농업이 쉽지가 않다


 영국의 날씨가 좋지 않음은 이곳에 일주일만 있어봐도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맑게 개인 하늘을 보기도 참 드물고 집에서 나가는 순간 매일 오늘은 몇 시쯤 비가 오나 하고 확인을 하고 외출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유럽 본토의 프랑스나 늘 지중해의 온화한 햇살을 받는 남부 유럽에 비해서 여러 가지 농작물들을 키우기에 불리한 환경에 처해있는 건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포도 재배가 불가능해 애초에 유럽의 가장 흔한 양조주 중 하나인 와인을 만들 수 없는 나라인 것을 생각해 봐도 말이다.


 그러나 이 가설에 대해 크게 반박할 수 있는 오류가 있지 않은가 하고 동시에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국은 말 그대로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을 무마시킬 만큼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을 보유하고 있던 나라로써 마음만 먹는다면 그 어느 나라의 진귀한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오히려 본인들이 세운 식민지에 의해 발전된 식문화들도 존재한다. 홍차와 IPA(indian pale ale) 맥주는 인도를 식민지화했던 탓에 유래가 생긴 문화였던 것을 봐도 말이다. 


2. 산업 혁명 때의 농민들의 도시 몰림 현상으로 농업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산업 혁명이 발생한 후 영국의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 그래프를 본다면 납득이 될 수도 있다고 보이나 이 가설의 가장 큰 한계점은 오히려 한 도시에 인구가 많이 모일수록 문화의 다양성이 더욱 풍부해짐과 함께 문화적 소양이 훨씬 커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식문화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좋은 예로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자. 임진왜란이 끝난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지지하는 진영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을 지지하는 파벌 사이의 갈등과 함께 내전이 일어났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승리와 함께 일본의 정권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전까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서 나라가 운영되었고 그 시기를 에도시대라고 한다. 

 에도 시대에 크게 눈 여겨볼 만한 점은 그 당시 나라의 수도였던 에도 즉 도쿄의 인구 밀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는 점인데 사농공상을 하였던 조선과 달리 일본은 상공업을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생겨난 음식이 그 당시에는 스트릿 푸드의 형태에 더욱 가까웠지만 지금의 일본을 가장 대표하는 음식인  스시가 탄생한다.


 결론적으로 영국 음식이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에는 ‘종교적’ 이유가 가장 크지 않았나 하는 가설에 무게를 가장 싣게 된다.


 역사적으로 16세기, 영국의 국왕이었던 헨리 8세는 교황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로마 가톨릭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사실 비슷한 시기의 유럽 본토에서는 이미 종교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면죄부의 등장과 함께 마르틴 루터, 칼뱅 등의 인물들에 의해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고 성경 그대로의 해석을 중시하던 그들은 교황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종교 역사를 다루는 글이 아니기에 정확한 과정은 생략하겠지만 영국에서의 기독교는 자기네들의 방식으로 영국 성공회의 형태로 지금까지 자리 잡게 되었고 성공회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칼뱅주의(지금의 우리나라 개신교의 장로회가 여기에 속한다)에 영향을 많이 받은 청교도적 사고가 일상생활에 많이 주입되게 되는데 특히 미식의 관점에서 크게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로 ‘금욕주의’이다


 대부분 세계적으로 지금 현재 요리가 발달한 나라들의 특징이 있다. 

바로 귀족 및 지배계급의 사치 문화가 엄청 발달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예가 가장 좋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 프랑스 왕족들의 사치는 극에 달했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통해서도 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금은 우리가 쉽게 먹을 수 있는 이를테면 마카롱과 같은 프랑스 디저트들은 사실 귀족 계급 외에는 보기가 힘든 음식이었으나 대혁명 이후 이 문화가 부르주아 계급에게 넘어갔고 결국 대중들에게까지 접근성이 올라가는 가장 대표적인 예를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 향락을 가장 즐겨야 할 영국의 지배층 또한 금욕주의 노선을 타다 보니 미식의 문화가 발달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오히려 식문화를 굉장히 천대하였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하나의 굉장한 사치로 여겼다고 한다.


 한 예로 프랑스 요리조리법에서 무언가를 소금물에 데치는 것을 Cuisson à l’anglaise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영국식 익힘’이라고 할 수 있다. 금욕주의에 따라 야채를 현란한 조리법을 배제한 채 단순히 삶아 먹는 것을 가장 알맞게 여겼다는 설이 여기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나 싶다. 


 그 이외에 영국의 생활 문화에서 식문화 속 금욕주의의 예를 찾아보자.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라는 문화를 보면 종교적 이유에 의해 금요일은 대게 금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주일인 일요일에도 교회를 가기 전에는 금식을 유지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교회를 마친 후 큰 고깃덩이들을 오븐에다가 통째로 넣고 구워 그레이비 소스 등을 끼얹어 먹은 문화인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식사 후 남은 고기들만으로 다가오는 주의 평일 음식들을 주로 채웠다고 한다. 

 그로 인해 생겨난 음식들이 익힌 고기를 파이 반죽에다가 넣고 구운 뒤 으깬 감자와 먹는 파이 앤 매쉬(Pie and Mash), 식빵 사이에 고기를 넣어 먹는 샌드위치가 이때 생겼다고 한다.


 끝으로 영국에 지내면서 영국 음식을 경험하며 우리 조상들께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 참 많았다. 한국만큼 ‘발효’의 문화의 끝판왕에 서있는 나라가 드문 만큼 맹물에 된장만 풀어도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유산을 후대에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런던에 여행을 오실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꼭 미식투어를 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언급했듯 영국 음식 자체는 몰라도 런던은 세계의 가장 트렌디한 도시 중 한 곳인 만큼 트렌디한 식당과 음식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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