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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원 Aug 12. 2020

Mapping between modalities

디자인을 하는 행위 중에서 디자이너와 비 디자이너를 가르는 가장 명백한 차이는 무엇일까. 한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컨셉'의 유무이다. 컨셉이란 디자이너가 결과물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로서 문학 작품에서는 작가의 의도 정도로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학 작품이나 디자인이나 초심자가 컨셉의 존재를 의심하는건 매한가지인듯 하다) 디자인 초심자의 입장에서 어떤 제품이 예쁘고 편리하면 그만이지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디자인 과정에서 아무리 그럴싸한 결과물을 얻을지라도 컨셉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근거없는 우연으로 폐기되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인 수업은 일반인의 생각과 다르게 결과물보다는 교수와 학생이 서로의 관점을 가지고 씨름하는 일이 절반이다. (그러니까 포토샵 잘 안가르쳐준다고 서운해하지 말자.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디자인 행위가 어떠한 정치적, 미학적, 재정적 목적에 기반한 컨셉을 실현하는 것이라면, 디자이너는 개념적 어휘로 상정된 컨셉을 실현할 디자인 요소들을 조직한다. 디자이너는 명시적이지만 포괄적인 미학적 지침을 활용하여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 그 어딘가를 항해하는데, 최종 종착지는 대개 대중의 취향을 미묘하게 앞선 비젼과 감성이다. 이는 모든 창작자들의 보편적인 숙명과도 같다.


그림 1. 연세대 생활디자인학과 2016 통합디자인스튜디오 곽민지/김가영/윤희우/이강경 팀 브랜드 컨셉 및 색채


이런 면에서 필자가 주목했던 분야가 색채 디자인이었다. 학생들은 공간, 제품, 시각물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성을 선택한 뒤 이를 달성해 줄 (배)색을 만들어낸다. 색채는 제작 난이도나 비용의 측면에서 상당히 자유로운데, 이는 컨셉에서 결과물로 이어지는 과정이 압축적이면서도 색채 선호 경향에 순전히 영향 받음을 암시한다. 사실 색채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관해 알려진 사실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가시광선 영역밖에 볼 수 없는 것은 진화의 산물이되 (Ref 1) 붉은색은 식욕을, 초록색은 마음의 안정을 촉진하다. 전통 한방을 나타내기 위해 한국인은 주로 흙을 나타내는 황토색을 떠올리나 중국인은 풀에서 비롯된 초록색을 주로 사용한다. 빨강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이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도 해서, 필자는 아직도 우리나라 정당 로고에 문득문득 놀라곤 한다. 개인의 미적 감각에 따라 옷의 코디나 화장이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색을 보았을 때 떠오르는 즉각적, 무조건적 감정이 선천적이자 후천적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한데, 그 근간에는 진화론, 광학에서부터 문화, 교육을 지나 미학까지 뒤엉켜있다.


그림 2. Adobe Kuler에 제시된 배색 하나

색채 연구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설문조사로서 여러 (배)색을 제시하고 여러 감성 어휘가 '얼마나 느껴지는지' 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 데이터는 요인 분석이나 차원 축소를 통해 위 그림1의 왼쪽 책자와 같은 2차원상의 감성-배색맵으로 요약된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새로 등장한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색과 감성을 스스로 제시하고 공감하는 것에 '좋아요'를 누를 수 있게 한 것인데, 대상색 뿐만 아니라 태깅된 감성어들이 훨씬 다양해지게 되며 설문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수 또한 비교할 수 없다. 위 그림 2의 예시가 도대체 어떤 감성을 의도한건지 한 번 맞춰보도록 하자. (정답: 피렌체)   


이러한 도구들에도 불구하고 사실 디자이너가 색채 결정 과정에 이르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화장품 용기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중국인들의 선호색이라고 해서 붉은색, 금색으로 도배를 했다간 무슨 구태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본인 감각에 의존했다가 어떤 의도치 못한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당장 팀장님은 무슨 '근거'를 가지고 설득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디자인'의 영역이라고 차치하기엔 그 후과가 너무 명명백백하다. 




텍스트로 표현된 감성과 색채 간의 대응이라. 혹시 무언가 떠오르는 다른 도구가 없는지? 그렇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쓰게 되는 검색 엔진, 특히 이미지 검색을 한 번 생각해보자. 무슨 단어로 검색을 하든지 그와 연관된 이미지가 엔터를 누르는 동시에 까마득히 나열된다. 구글의 비결이 무언지는 제쳐두고, 이 이미지들로부터 배색을 뽑아내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일견 단순해 보이는 이 문제는 막상 닥쳐보면 의외로 쉽지 않다. 일단 signal에 대한 noise가 너무 강력하다. 다시 말해 검색어와 연관된 요소로 색 이외에도  형태, 글씨, 시각적 상징, 인간의 행태 등 생물학적이고도 관습적인 요인들이 이미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래 사례는 active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들이다. 실제로 배색을 추출해보면 배경이나 실루엣으로 인한 검정색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로고의 배경인 흰색이나 사람의 피부색 또한 너무 자주 나타나며, 게다가 사진으로부터의 배색은 대체로 채도가 낮아 칙칙하다.  


그림 3. active 에 대한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기는 너무 이르다. 이러한 noise 중에서 signal을 발견하는 방법은, 혹은 우리가 signal로 인식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떠한 배색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우일 것이다. 다시 말해 여러 이미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배색이 있다면 그것은 색 이외의 요인을 배제한 signal이라 여길 만하다. 이런 성질을 이미 십분 활용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자연어이다. 언어적 의미를 이루는 단어의 조합 규칙은 디자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제약적이어서, 일정 수준의 단어를 학습한 컴퓨터는 문법에 맞는 문장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다. 이에 필요한 인공지능을 word to vector, 혹은 embedding이라 하는데 이 기술은 각 단어를 고유의 숫자쌍과 연결 지어 준다. 예를 들어 'queen'이라는 단어가 (2,1,3,4,5) 로 치환된다면 이는 queen을 숫자 5개로 이루어진 vector로 매핑한다, 또는 5차원 공간에 embed한다 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규칙은 매우 간단하게도 "일상 문장에서 가까이 있는 단어들은 벡터 공간에서도 인접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king'은 'queen'과 같이 등장하는 문장이 많으므로 5차원 공간에서도 비슷한  숫자, (2,1,4,4,5) 정도로 매핑된다. 이게 뭐 그렇게 대단할까 싶지만 그 적용 분야는 매우 다양해서 Amazon 등 온라인 쇼핑몰의 제품 추천 시스템에서 활용될 수 있다.  'A' 'B' 'C' 'D' 를 구매한 사람이 많을 경우 이 4개의 제품은 벡터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게 되고 'A' 'B' 'C'만 구매한 사람이 발견되면 'D'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음을 인식, 제안을 할 수 있게 된다. 검색어를 잘못 오기하였을 때 나오는 '검색어 추천 서비스'도 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림 4. (좌) 98만 위키 단어로 이루어진 벡터 공간. 붉은 점은 색채를 나타내는 감성어휘들이다 (우) 색이 아닌 의미적으로 유사한 어휘들이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을 이미지 검색에서도 적용한다면 한 이미지에 등장하는 색들은 마치 색채 언어의 문장과도 같고, 이를 활용하여 색을 다차원 공간에 embed하면 서로 잘 어울리는 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흰색, 회색, 검정색 등 무채색이 가득히 채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배경이나 글씨의 색으로 가장 자주 활용되는 색이기 때문이다. 이를 제거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데 왜냐하면 실제로 무채색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단어 (눈, 철, 석탄 등) 와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 간단한 방법은 전체 검색어에 등장하는 색채의 빈도 대비 특정 검색어에 등장하는 색채의 빈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passion에 대한 색 중 검정이 빨강보다 빈도가 높다고 해 보자. 그러나 전체 검색어에 검정이 매우 많이 등장하고 빨강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게 등장하므로" passion에서 나타난 색의 빈도 / 전체 검색어에서 나타난 색의 빈도"가 빨강이 높아 passion의 특징 색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림 5. '전통적인' 이라는 검색어로 도출된 이미지에 포함된 색 간의 어울림 (근접도) 및 특징 색채 (크기). 중국어 (좌) 한국어 (우)로 검색했을 때 결과.

이러한 로직이 적용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림 5는 색채 embedding을 적용한 것으로 근접한 색들은 검색된 이미지에 같이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키워드 '전통적인'을 중국어로 검색했을 때에는 붉은 계통이,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에는 분홍과 푸른 계열의 색이 같이 등장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작은 동그라미 중 검정색/흰색의 경우는 실제로 빈도가 낮았거나 아니면 모든 키워드에서 등장한 흔한 색이므로 선택 확률을 낮추었다는 뜻이다. 




그림 6.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검색어 'Future', 'Good', 'Cold' and 'Power'.

자, 이제 키워드별 대표 배색과 이미지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저작권은? 에라 나도 모르겠다) 꽤 까다로운 검색어에 대해 나름 설득력있는 배색을 보여준다.  


그림 7. (좌) Sweet / Sweet Candy / Sweet Dream  (우) Hot / Hot Chilli / Hot Issue

검색 엔진 기반이므로 두 가지 이상의 검색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는 한 검색어가 다른 컨텍스트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될 때 이를 반영할 수 있다.  


그림 8. (좌) Modern (우) Active. 위 배색이 Google, 아래 배색이 Behance이다.

그리고 검색 엔진을 Google과 디자이너가 많이 사용하는 Behance를 사용했을 때의 차이점이다. 설문조사 결과 (놀랍게도) 디자이너 집단만 Behance 결과를 유의미하게 선호하였다.


그림 9. 전통결혼식 검색어 (중국어/한국어/일본어) 로부터 도출된 배색

마지막으로 한국어/중국어/일본어로 '전통결혼식' 배색을 추출한 결과이다. 언어에 기반한 문화권별 배색을 검증하기 위해 각 국가의 국민은 자국의 전통색은 알아보되 타국의 것은 구분하지 못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자국의 색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색을 구분해 내었으나 서로의 전통색은 구분하지 못하였다. 이 시스템을 만든 학생은 이를 중국 문화의 영향력이라고 해석을 하였는데,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실제로 여러 미디어를 통한 타문화에 대한 노출이 상당히 편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던져 볼 질문은 "과연 색채 디자인은 과학화되었는가" 이다. 위 시스템은 이미지 검색에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 태깅 및 소팅 매커니즘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태깅에 포함된 다양한 파라미터들 - 사용 언어, 단어의 컨텍스트, 특정 집단 - 은 색채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결정적인 사용자 정보를 내포하고 있고 이들의 유효성은 설문을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니까 팀장님, 나아가 클라이언트에게 써먹어보자! (현재 열심히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 어디까지나 최적이 아닌 하나의 솔루션이고, 검색 매커니즘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 한다. 이보다 조금 더 어려운 문제는 "과연 우리는 매해 팬톤 연구소의 현자들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가"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일 년에 두 번 유럽의 수도에서 여러 국가의 컬러 표준 그룹의 대표자들이 2일 간의 발표와 논쟁 끝에 '다음 해의 색'을 정하게 된다. 어쩌면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는 이 역할은, 적어도 대량의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한 통계적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미지의 영역에 한 발 내딛는다는 관점에서의 디자이너의 직능은, 인공지능의 등장과 함께 더 날카롭게 정의될 것이다.  


본 연구는 감성이라는 개념적 어휘가 색채라는 시각적 모달리티로 매핑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매개가 된 것은 역시 인터넷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원하는 signal을 추출해 낼 수 있는 수학적 원리였다. 소개된 핵심적 원리는 매우 단순하나 무수히 많은 방법 중에서 그 기능을 정확히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적용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는 디자이너가 도메인 전문가로서 혁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에게 상당 부분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과연 이러한 혁신을 얼마나 빨리 흡수하고 적응시키냐는 것은 적용 분야가 더욱 고차원, 복합적이 되면서 더욱 큰 차이의 원인이 될 것이다.  

 


Ref 1) https://horizon.kias.re.kr/1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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