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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중지추 Dec 26. 2019

싫다. 수행평가.

싫다. 수행평가가. 이것은 나의 말이다. 현직교사인 나의 말이다. 애들이 하는 말이 아니고 교사인 내가 하는 말이다. 수행평가가 싫다. 


 수행평가 -학생의 학습 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여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일. 평가 방법으로는 논술형 검사, 구술시험, 실기 시험, 연구 보고서 따위가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평가 결과가 내신에 반영되기도 한다.    


 수행평가를 표준국어대사전에 쳐보면 위와 같이 나온다. 핵심은 직접 관찰하여 전문적으로 판단한다는 것. 누가? 바로 교사가. 

 수행평가의 목적은 아주 훌륭하다. 지필평가로는 학생들의 수행능력을 직접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식 위주의 평가를 피하기 위해 수행평가는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수행평가로 줄세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심지어 지나가던 개가 봐도 납득할 수 있도록 아주 아주 공정한 기준으로. 왜냐? 그래야 학생들이 납득하니까. 


 '이게 왜 틀려요?' - 수행평가는 기본적으로 맞고 틀리고가 아니다. 성취기준을 어느 정도로 수행하냐, 즉 정도의 문제이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어떤 것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모든 지식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칼로 무 자르듯 정확하게 나눠서 채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행평가는 잘함의 정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전문적으로’라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즉, 교사를 전문가로 인정하기 때문에 교사에게 수행평가를 맡기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문제는 '줄세우기'다. 줄 위의 학생들은 전문가가 판단한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 '제가 왜 쟤보다 점수가 낮아요?' 학생들은 판단 근거를 요구한다. '응, 글 전체의 통일성이 좀 부족하고 유기성도 떨어져. 문단을 나누는 능력이 부족하고 표현도 좀 어색해.' 교사는 또 주절주절 말한다. 이것은 마치 요리경연대회에서 '염분이 0.5% 낮고, 물이 200cc 부족하고 두부의 모양이 정확한 육각면체가 아니기 때문에 저 1등이 끓인 된장찌개보다 못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웃기지 않은가? 그냥 전문가가 먹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1등보다 요리가 맛이 없는 거다. 그래서 탈락일 뿐이다. 맛이 조금 더 싱겁고, 두부의 싱싱함이 좀 더 떨어지고 등등, 말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자로 재듯 정확하게 측정할 순 없다. 그런데 줄세우기는 정확한 기준을 요구한다. 한마디로 교사를 전문가로 보지 않는다.


 입시 중심의 상대평가 체제. 사회는 교사에게 요구한다. 체중계로 체중을 측정하듯 명확하고 정확하게 학생들의 능력을 측정하라. 그런데 그렇게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하나 하나 잘게 나눠서 파편적으로 측정하는 평가가 바로 객관식 시험, 즉 지필평가 아니던가? 그것이 문제여서 수행평가를 도입한 게 아니던가? 근데 수행평가를 다시 잘게 나눠서 정확하게 측정하라고? 대체 뭐하는 짓인가.


 교사를 전문가로 보지 않는 수행평가. 그래서 교사인 나는 오늘도 수행평가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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