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사서 일일>이 계속되길 바라며
온몸이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한데 그보다 더 묵직한 침묵 속 간간이 들리는 다른 이들의 한숨 소리. 내 의지와 상관없이 뱃속에서 간간이 울리는 '꼬르륵' 소리는 분명 배가 고파서가 아닌데 왜 자꾸 이 적막을 깨보려 애쓰는 걸까. 다음번에 지원할 때는 꼭 빨리 제출해서 면접도 더 빨리 봐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떠올린 불합격을 가정한 재수 없는 상상은 못 들은 척 서둘러 날려 보내고, 미리 준비한 면접 멘트를 몇 번이나 입속으로 읊조리지만, 바짝 마른 입술 양쪽 끝으로 자꾸만 휘발되어 날아가버린다.
드디어 호명되어 면접장으로 들어간다. 안내를 받아 들어서자 긴 테이블에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있고 마주 보는 자리에 세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호명된 순서대로 자리 잡고 앉는다.
가운데 앉은 면접관은 까랑까랑 높고 자신감 충만한 목소리에서부터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중간에 앉았다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사람에게는 뭔가 좌중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대답할 차례를 기다리던 내 시선이 책상 아래를 향하다 그의 신발을 발견한다. 얼굴은 초면 같은데 신발이 낯익다. 작년 어느 면접 자리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신발 같다. 신발조차 존재감을 갖는 인물이라니. 이 도서관의 핵심 인물임에 틀림 없다.
오른쪽 면접관은 확실히 기억하는 얼굴이다. 왜냐하면 한강 작가를 닮아서 그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세세하게 눈코입이 닮았다기보다 그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래서 사서도 어울리지만 왠지 글을 쓸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이다. 왼쪽 면접관은 점잖은 일본 아주머니 상이다. 내가 대답을 할 때 그나마 셋 중에 제일 눈을 잘 맞춰주고 호응해 주는 면접관이다. 그 사소한 행동이 지원자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알까. 카리스마 면접관의 존재감과 기운이 대단해서 양쪽 면접관은 질문만 하나씩 던지는 것으로 역할이 끝이 났다.
각자 자기소개를 듣고 개인별로 궁금한 내용을 물어본다. 내 오른쪽에 앉은 첫 번째 지원자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년생이다. 책을 읽듯 한 자 한 자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떨리는 목소리에서부터 티 나게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증명한다. 그 투명한 떨림이 안쓰럽다. 이만큼 산 나도 떨리는데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그 아이의 심장은 얼마나 방망이질 칠까. 아줌마 오지랖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내 분위기 파악을 한다. 아, 대기실에서 내 옆 책상에 앉았던 친구구나. 얼핏 스친 얼굴 모습이 너무나 도서관 사서와 잘 어울려 보여서 내심 긴장했는데 햇병아리였구나. 이 아줌마도 네 엄마뻘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너처럼 햇병아리란다. 힘내라.
카리스마 면접관의 말투는 이미 뭔가 단정적이다. 말투 자체가 거침없고 확신에 차 있어서 그런가. 다들 경력도 적어서인지 이미 글렀다는 듯이 마치 '다음을 위한 조언'같은 말을 해준다.
"자주 면접을 보고 단시간, 주말 근무 같은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으세요. 일을 잘 모르는데 합격한다면 그건 운이 좋은 거예요."
카리스마의 말은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경력을 쌓으라는 뜻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내 짧은 면접 경험과 사서를 위한 인터넷 카페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그 작고 짧은 일조차 신입에게는 좁디좁은 문이다. 작년 어느 공공도서관 주말 근무 면접을 간 적이 있는데 2명 뽑는데 면접자만 스무 명 가까이였으니 과연 그 사람들 중에 새하얀 도화지 같은 신입을 뽑아줄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 전날 돼지꿈을 꿨든 뭐든 운이 좋아 뽑히는 일이 생겨야 실수하더라도 배워나가면서 경력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카리스마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후자의 말이 더 와닿았다. 신입은 운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내세울 수 없는 경력 외의 것에서 그 운을 뽑아내야 한다. 벌벌 떨고 있는 지원자 주제에 입만 살았다. 암튼 지원자들을 앞에 두고 아무리 조언이라 해도 안 뽑을 것처럼 말을 하니 참 난감하다. 그럼에도 그 기적 같은 운빨을 위해 오늘도 나는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예, 옳은 말씀입지요.
이 면접이 늘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지원할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그래, 오늘 나에게 운이 오지 않았다면, 다음에 올 운을 기다리면 되지.
* 운빨이 좋았는지 새로 공공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준사서 일일>을 쓸 정도로 여유가 생길 즈음 다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