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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소유 Feb 07. 2024

시간을 달리다

너와 내가 공유하는 무엇

 “엄마, 나 방학식 날 친구들이랑 남포동 가도 돼?”

집에서 가까운 대학가도 친구들끼리 가본 적 없는 딸이 갑자기 남포동에 나가겠단다. 딸아이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남포동은 우리 동네서 버스를 타고 40분이나 가야 하는데. 게다가 들썩이는 연말 분위기에 흥이 넘치는 사람들로 붐벼댈 그곳을 크리스마스 전날 가겠다니.


 맘 같아서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싶지만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아이라 무턱대고 내 뜻만 강요하기 조심스러웠다. 이미 나의 완곡한 거부 의사에 한차례 울고불고 난리를 친 터이기도 했다. 감정이 널을 뛰는 사춘기 초입 딸과 갱년기 초입 엄마 사이에서 남편이 협상에 나섰다. 허락하는 대신 장소를 옮길 때마다 엄마에게 문자나 톡을 보낼 것.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올 것.

 

 그럼에도 나는 불안했다. 결국 몰래 남포동으로 따라나섰다. 수염 달린 코주부 안경 쓰고 스토커처럼 딸 뒤를 쫓아다닐 작정은 물론 아니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라도 있어야 안심이 될 거 같았다. 그리고 이참에 나도 오랜만에 남포동 거리를 거닐어 보고 싶었다.


 띵동. ‘엄마, 남포동 가는 버스 탔어.’ 딸의 문자가 왔다. 버스 안에서 찍은 자신의 신발 사진과 함께. 그러고 보니 나도 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남포동으로 갔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6학년 때였나. 버스 뒷자리 나란히 앉은 여자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대낮의 텅 빈 버스 안에 울려 퍼졌던 그날. 우리끼리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건너 시내로 나가는 흥분감과 설렘 그리고 손잡이를 꼭 쥔 두 손바닥에 베인 땀들. 그날 엄마한테 말은 하고 왔던가. 기억에 없다. 불리한 기억은 참 빨리도 잊히는 법이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로 보이는 문우당 서점. 내리자마자 우리는 서점 뒷골목을 향해 달린다. 그 시절 우리들은 왜 그리 뛰어다녔을까. 그때만큼 시간이 천천히 흐른 적이 없는데 그 느림을 못 견디겠다는 듯 우리는 늘 그렇게 뛰어다녔다.


 띵동. ‘인생네컷’ 노느라 귀찮은지 문자가 짧다. 스티커 사진을 찍나 보다. 요즘처럼 누구나 폰만 있으면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도 20여 년 전에 유행했던 스티커 사진이 다시 아이들 사이에 유행이라니 참 희한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고 발전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닌가 생각했는데 것도 아닌가 보다. 유행가 가사처럼 돌고 도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건지. 하긴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코팅해서 책받침으로 들고 다니는 거나, 요즘 아이들이 유명 아이돌의 포카(포토카드)를 사 모으는 거나 다를 게 뭐 있나 싶다. 달라졌다면 박남정 사진이 박힌 책받침을 들고 다니던 여자 아이가 BTS의 포카를 모으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일까.


 띵동. ‘용두산 공원’

띵동 소리에 나는 다시 6학년 여자아이가 되어 친구들과 어딘가로 신나게 달음박질친다. 몇 개의 좁은 골목을 벗어나니 확 트인 대로가 펼쳐졌고 그 중심에 큰 건물이 서 있다. 바로 미화당백화점이다. 우리는 언제나 곧장 백화점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야외 옥상에는 유아들이 타는 작은 놀이기구가 몇 개 있었고 다른 한쪽에 용두산 공원과 연결된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바로 용두산 공원이었다. 구름다리 사이에는 새점을 봐주시던 할머니가 있었다. 돈 없는 어린이라 새점을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가 새점을 보고 있으면 부리나케 달려가 구경했다. 그 앙증맞은 새가 할머니의 리드에 따라 고민도 않고 점괘 하나를 쏙 뽑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리고 비둘기. 용두산 공원 하면 비둘기를 빼놓을 수 있나. 공원 마당 온 바닥이 비둘기로 가득했는데. 바닥을 쪼고 있는 비둘기 무리를 향해 친구들과 우르르 달려가면 그때마다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깔깔댔었다. 언제부터인가는 녀석들도 장난인 걸 아는지 도망갈 생각도 않고 슬쩍 걸어서 피해버리는 모습에 어이없어하면서도 그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아, 맞다. 용두산 공원에 ‘귀신의 집’도 있었는데. 진짜 뜬금없게 귀신의 집이라니. 그래도 그 덕에 친구들이랑 귀신인형에 놀래고 우리가 지르는 괴성에 다시 놀라며 울고 웃고 신나게 놀았더랬다. 이제는 다 없는, 내 기억 속에 남은 풍경이다.


 지금 용두산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나의 딸은 어떤 추억을 새기고 있을까. 이제 다이아몬드 타워로 이름이 바뀐 옛 부산 타워, 여전히 째깍째깍 바늘이 돌아가 고 있는 꽃시계.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딸과 내가 공유하는 지금 이곳의 풍경들 위로 휘황찬란한 빛들이 반짝인다.


 ‘딸아, 재밌니?’ 문자를 보냈다.

‘네 너무 행보케요’ 딸의 답. 행복하단다. 엄마도 행복하다. 그때도 지금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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