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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Oct 26. 2020

같은 노예주제에 누가 누굴 평가해?

내가 회사를 관 둔 이유

회사에서 노예생활을 때려친 지 일 년이 됐다.

노예에서 벗어나니 많은 자유가 생기고, 생각도 많이 유연해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오늘은 내가 회사에서 관 둔 얘기를 해보려 한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그만두겠단 생각을 하기 전까지, 안타깝게도 나는 너무나 자유롭게 회사를 다녔다.

일단, 처음 써 본 자소서로 남들이 못들어가 안달인 공기업에 합격을 했고, 홍보팀에 배치를 받았다.

원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막상 일해보니 공기업 홍보팀은 정말 일이 없는 부서였고, 팀장님도 일이 있을 때만 일하자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육개월 뒤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본부장(상무급) 직속의 팀장 없는 팀에 배치를 받았다.

상무급 임원이 이삼십대 실무직원들의 근태나 보고에 일희일비 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실제로 그 분은 하필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라서 이렇다할 터치는 없었다.

최대한 논리에 맞게 사업을 기획하고 세부 실행계획을 짜가면, 예산을 조정해주거나 더 얻어올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는. 그냥 상식적인 임원이었다.


그리고 그 팀에 무려 오년이나 있었다. 그 땐 팀장없는 팀에서 근무하며, 상무급 임원과 마음이 맞는 다는 게 큰 행운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똘아이 임원을 만나서 애저녁에 노예짓을 그만뒀어야 했다.

여하튼 우리 옆팀엔 소위 말하는 똘아이 팀장이 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일반적인 대화에 잘 끼질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과 출신성분(공채 출신이 아닌데, 그건 그 회사에서 아무에게도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서 끊임없이 자기보다 잘난 아랫것들을 쪼잔하게 공격했다.

이를테면 문서의 줄 간격이 안맞는다거나, 앞에 들여쓰기를 안했다거나...말하기도 수치스러운 것들..


난 그런 팀장 밑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보다가 내 처지를 보며 정말 안심했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던 작년 초.

그 똘아이팀장과 한팀이 되었다. 서로 결이 안맞는다는 걸 애저녁에 알고 있었고, 난 싫은 사람(내 기준에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한테는 위아래 상관없이 얼굴로 욕할 정도로 싸늘하게 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직급이 깡패라고.

똘아이라도 내게 명령을 할 수 있는 팀장이고, 나는 명령을 받아서 수행해야 하는 팀원이라니.


발령이 난 첫날부터 현타가 왔다. 그리고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꼬라지를 부렸다.

업무분장 자체를 애매모호하게 나눠서 분열을 조장하질 않나, 같은 내용을 옆팀원이 보고하면 통과가 되고, 내가 보고하면 며칠 째 결재 대기 상태기 일쑤였다.


한 번은 십억에 가까운 큰 돈을 내보낼 일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문서의 회계관련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따져들었다.

처음엔 나도 팀장을 배려해야하는지라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난 니가 보고하는 게 뭐든 너무 싫어. 결재해주기 싫은데 어쩌지? 더 기어봐.'

이 기세로 했던 말을 반복하며 사람을 미치게 하니, 결국 나도 폭발해서 사무실에서 큰소리를 내며 팀장에게 맞서(?) 싸우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일은 내 퇴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에게 기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도무지 못찾겠는 것이다.

게다가 회사는 정부꺼든 개인꺼든 어쨌든 그사람껀 아니다. 결국 지도 나도 똑같이 한달마다 월급주사를 맞는 노예인 주제에. 노예가 노예에게 주인 행세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니.

그리고 그 해 상반기 평가는 보란듯이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똘아이 팀원이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점수는 그렇다치고,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건 대체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회사는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이고, 그 일이라는 건 대학을 나왔건 안나왔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회사에서 소위 말하는 "쟤는 참 일을 깔끔하게 잘해." 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결국 어찌됐든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서게 되면, 그 안에 내가 속한 조직이 생길 것이고, 그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과 "결"이 맞는 사람이 아닐까.


실제로 나는 저 똘아이 팀장과 일하기 전에는 윗사람들에게 육성으로든 건너서든 "일잘한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와 "결"이 잘 맞았었고.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똘아이와 함께 일하게 되자마자 나는 결재 올릴 때마다 번번히 결재가 막히는 사람이 되었고, 번번히 팀장에게 불려가서 어떤 이유든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팀장에게 매우 잘 개기는 사람으로 보였을거다. 실제로 개기기도 많이 했고.


결과적으로 일 잘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그저 나보다 직급이 높은 노예가 자기랑 결이 잘 맞는 노예와 계속 함께 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걔나 나나 같이 월급 받는 노예의 삶을 살면서 너따위 무식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인간이 나를 감히 폄하한다니. 자존심의 스크레치를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궁지에 몰려야 살 구실을 찾는다고 했던가.

그 무렵 이 똘아이를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할수 있는건 뭔지 필사적으로 알아봤고, 우연한 기회로 큰 돈은 회사에서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이 없었더라도 더이상 멍청한 노예와 한 곳에서 일했다간 내 멘탈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추진력이 최강인 나는 한 열흘 후 사표를 내겠다고 회사에 공언했다.


그 후로 그 팀장은 앓던 이가 빠져 요즘은 허허실실 웃으며 회사를 다닌다는 소식이 들린다.

물론 그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져서 휴업을 밥먹듯 해왔다는 소식과 함께.

그리고 나는 온라인에 작은 구멍가게를 열었고, 아주 느린 속도지만 지난달부터 파워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은 매출이 안나와서 일희일비 중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보다 멍청한 노예에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평가받는 일은 없어졌다.


거 같이 노예생활 하면서 상급자에 있어서 뭐라도 되는 줄 아는 양반들.

제발 좀 니들도 노예라는 본분을 잊지 말고 서로 도와가며 사십시다.

어차피 그 회사에서 갈데 없어서 그나이 먹도록 못 나가고 노예짓거리 하는게 아니겠소.

왕초놀이 한들 니가 왕이냐.. 정작 왕은 니 존재도 모른다 인마.



일년 전 퇴사를 앞두고 뒷골 땡기던 때를 추억하며.

한평 짜리 서재에서 BY 에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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