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일이었다.
늘 그렇듯 밥 한수저만 더 먹이려는 우리부부와 배부르다며 한사코 거부하는 소희와의 작은 실랑이를 마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잠깐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소희는 자기영역에서 책을 읽었고, 우리는 식탁에서 남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남편이 회사에서 있었던 속터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바보.멍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나보다.
책을 읽던 소희가 발끈해서 물었다.
"엄마, 나한테는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빠는 왜말하는거야?"
"......"
흠. 찰나였지만,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언제까지 아이에게 바보 멍청이란 단어를 쓰지 않게 해야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연하게 쓰는 이 단어를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애써 침착한 어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소희야. 어른들 중에는 진짜로 바보 멍청이가 있어."
" 왓????????? 진짜??????????????????????????????"
진짜 현실세계에 바보 멍청이가 있다는 게 적잖은 충격이었나보다.
그 표정이 제법 진지하기도 웃기기도 해서 우리 부부는 눈웃음을 지어보였다가 이내 감췄다.
"응 그럼. 어린이들은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고, 책읽고, 선생님 말씀 잘들어야한다고 하잖아?"
"어어."
"근데 어릴때 그걸 안하고, 맨날 티비 앞에서 티비만 보고, 게임만 하고, 엄마아빠한테 고집부리고 떼쓰고 그러는 어린이들이 크면. 진짜 바보 멍청이가 돼."
"오.마이.갓.근데 왜 그렇게 하면 바보 멍청이가돼?"
(소희는 할 줄 아는 영어가 왓. 오마이갓.이 전부다. 꽤 시의적절하게 쓰는 것에 놀랄뿐.)
"어. 너 머릿속에 보석들어있다며. 어린이들 머릿속엔 다 보석이 있거든. 태어날떄 보석을 엄청많이 갖고 태어나니깐. 근데 엄마가 말한 행동들 하면 보석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어른이 되면 바보 멍청이가 되는거야."
"그럼 바보 멍청이 머리에는 뭐가있어?"
"음. 똥?"
"우웩"
"그니까 어린이 친구들 중엔 바보 멍청이는 하나도 없으니까 어린이들은 그런말 안해도 되. 근데 어른되면 그런 사람들이 진짜 생겨서 엄마아빠가 그런말을 할 때가 있는거야."
"아 . 응 그래 알겠어."
대화를 끝으로 소희는 자기 책을 주욱 읽어내려갔다. (물론 세이펜이 읽어주는 책이다.ㅎ)
어제 내가 아이에게 대체 무엇을 설명했단 말인가.
태초부터 선한 사람이 사회 환경에 찌들고 물들어 악해졌다는 그. 성선설에 대해 알려준 셈이 되는건가..
아이가 자라는 게 매일매일 느껴진다.
그리고 질문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하지 않으면,
"엄마가 무슨말 하는지 못알아듣겠다."는 즉각적인 피드백이 날아온다.
이렇게 작고 영롱한 보석이 눈과 귀와 입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에 우리부부가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니.
대체 매일매일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걸까 고민이 깊다.
배우는 너에게 가르쳐주려면 엄마는 얼마나 더 많이 배워야하는걸까.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피부로 깨닫는 삶이다.
그런의미에서 행복하지만 책임감있는 책읽기는 계속 되어야 한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