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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보안관 Oct 02. 2021

등산과 소풍

오늘은 시월의 첫번째 토요일이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도 없고, 어젯밤 비까지 내려준 탓인지

하늘과 공기 바람과 햇빛이 마치 신이 내려준 선물처럼 황홀하다. 이런 날 우리가족은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한다. 되도록이면 산과 가까운 곳으로.


우리 딸은 등산을 싫어한다. 아니 사실 등산을 좋아하는 일곱살 난 여자애가 몇이나 되려나 싶기는 하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멀리까지 명산을 구경하러 가는 타입은 아니고, 동네 뒷산을 가는 걸 즐긴다. 그러다 어쩌다 여유가 되면 큰 인심을 써서 청계산 정도나 가면 그만이다.


아이와 함께 등산을 가려고 여러번 아이를 회유했었다. 처음 몇 번은 뭣 모르고 따라 나서줬고, 조금 크고 나서는 정상에 가면 작은 장난감 정도는 사주겠다는 거래를 해야 등산을 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그마저도 힘들어서 싫은지 등산은 절대 싫다며, 아예 산을 싫어하는 지경이 되버렸다.


벌써부터 산을 싫어하면 나처럼 족히 20년은 산과 멀리할 게 뻔하다. 그 모습이 불안해보였는지 남편이 어쩐일로 묘안을 생각해냈다.

묘안이라고 해봐야 단어를 바꾼 거에 불과하지만.


며칠 전 남편이 아이에게 "소풍"을 제안했다.

아이에게 돛자리와 캠핑의자를 챙기고, 김밥을 싸서 숲 속에 가서 노는 "소풍"을 가는 게 물어보니 단박에 좋다는 것이다.

세상에 알고보니 소풍 장소는 딸이 울면서 정상까지 올라가서 주변 사람들 배꼽을 빼놓고, 응원을 받았던 청계산이었다.

단어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매일 소풍 언제가는거냐고 조르기까지 한다.


오늘은 날씨도 쾌적하겠다 아이가 좋아하는 유부초밥과 간단한 과일을 싸들고 산에 갈 생각이다. 물론 우리부부가 가고싶은 정상에는 못가겠지만, 산에 기꺼이 따라준다는 딸만 있으면 뭔들 즐겁지 않을까.


살다보면 단어의 선택과 사용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친구와 지인은 묘한 어감의 차이가 있고, 돈 쓰는 건 매한가지인데 쇼핑과 장보기도 받아들이는 느낌이 꽤 다르다.

물론 각각의 용어의 정의가 다르고 표현해야할 상황도 다 다르지만 대개 비슷한 의미의 단어를 써도 통용되는 상황에서는 가급적이면 듣는 사람이 기분 상하지 않을 단어를 쓰는 게 본인의 언어습관에도 도움된다는 게 내 사소한 생각이다.

소풍에 설레하는 표정을 보니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오늘은 우리 가족이 설레는 소풍을 떠날 참이다. 참 날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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