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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Feb 20. 2024

우주에서의 두 사람

예전 유홍준 선생님의 책에서 아프리카의 속담 하나를 보았다.

‘길을 떠날 때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둘이 가라’


아마도 누구나 그럴 거라 생각이 드는데,

세상에 태어나 자라다가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면 삶의 많은 부분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져 있다.


태어난 나라와 부모님, 이름과 성별.

그리고 함께 자라고 있는 형제자매 관계도 그렇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자식들의 형제자매 유무 정도겠다.


나는 태어나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당연하지만 동시에 참 다행으로 우리 엄마 아빠의 아들이었고,

웬걸 다섯 살 위의 형이 한 명 있었다.


내 기억 속 십 대의 형은 나 말고도 이래저래 참 바쁜 삶을 보내고 있었고, 많은 나이차 때문인지 혹은 바빠서 그랬는지 내 삶에 크게 끼어들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형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의 존재로 내 삶은 상당히 복잡해짐과 동시에 형에게서 많은 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형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복잡성과 주고받는 다방면의 영향들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자라는 토양의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형과의 상호작용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설날 밤 파주의 한식술집에서 세상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대화에서 그것을 여실히 느꼈다.


여담으로 그러한 관계도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형이 ‘형’이었다는 점이다.

어릴 때 나는 누나가 있었으면 했다.

형의 중상모략에 빠져들어 결국 내가 라면을 끓여줘야 하는 형이 아니라, 내가 배고프면 계란을 풀은 라면을 끓여주는 누나.

ㅜㅠ


아무튼 내가 결혼할 즈음 아이가 생긴다면 형제, 자매가 있음으로 생기는 복잡한 우주를 가능하다면 꼭 선물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난이와 이야기를 했었다.

형제자매가 마음에 안 들어 서로 연을 끊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지만, 선택조차 할 수 없도록 혼자 세상에 던져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같은 성질의 진동이 겹쳐 진폭이 커지는 형제, 자매보다는 상호 보완하는 남매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지 3년 후.

수많은 행운으로 그 생각은 요즘 내가 보는 장면 중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모습으로 현실이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 공유할 시간과 주고받을 대화와 영향들이 얼마나 깊고 많을지 기대가 된다.

나아가 두 사람이 나누는 시간과 대화와 영향이 세상에서 빠르게 달리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원하는 방향으로 멀리 나아가는 데에 잔잔한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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