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전화의 시작은 나의 스케줄 체크부터다. “일이 있냐, 없냐?, 쉬고 있냐?” 등. 그럼 나는 거의 일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외주) 스케줄이 없는 날에도 나는 일 모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일이 꾸준히 많이 들어오는 것이 신기해한다. 난 엄마가 생각하는 (외주) 일의 50% 정도만 진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의 외주(스케줄)를 다 알려줘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돈을 꽤 많이 버는 프리랜서라는 큰 착각을 하고 계신다. 그 오해는 용돈을 올려달라는 요구로 변질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외주) 일이 없는 날에는 내가 하는 하루 모든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손 풀려고 역 콘티를 하는 행위나,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기, 책 읽기, 그림일기를 그리는 등 이것이 모든 나에겐 일이라고 생각하고 성실히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연락이 와서 뭐 하냐고 물어볼 땐 (외주) 스케줄이 따로 없어도 ‘일한다.’라고 대답한다. (외주) 스케줄이 없는 나의 평일은 노는 날을 취급하지 않는다. 평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 정도까지는 나는 일 모드로 유지한다. 이런 내 생각 덕분에 (외주) 스케줄이 따로 없는 날에 (외주)가 들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받아넘길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생각해보면 일이 없는 날 회사 책상에 앉아있는 직장인을 보고 ‘일하고 있어?’라고 묻지 않지 않는가? 프리랜서가 되면서 불편했던 것 중 하나는 “나 일하고 있어요!!!”를 어떻게든 티를 내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일 때 내가 책상에 앉아서 영수증을 딱풀로 붙이던 드라마를 보고 있던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모든 사람의 안부가 ‘잘 지내?’가 더 연장된 ‘요즘 일은 많아?’로 변경되었다.
나에게 일 모드 유지는 꽤 중요시하는 신념 같은 것이다. 아마 건너편에서 내가 있는 모습을 본다면 ‘저 사람은 일이 없어서 시간을 때우고 있군!’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집중력의 코어를 매일 지키려 한다. 프리랜서 초기 때는 (외주) 스케줄이 없이 하루는 가장 두렵고 허망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난 이런 날을 가장 사랑한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꺼내어서 해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난 이 시간에도 할 것이 넘쳐나서 매번 목표치를 다 하지 못한다. 책도 읽고 싶고, 손은 풀어야겠고, 그림일기도 그려야 하고, 새로운 곳에서 작업도 해보고 싶다.
얼마 전 백신 휴가 3일을 끝내고 일 모드로 잘 돌아오기 위해서 나는 가계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려 3달을 한 번에 말이다. 가계부 정리를 하니 현실이 보이면서 정신이 팍 들었다. 난 가계부 덕분에 일 모드로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3달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보인 것은 나의 일 패턴이다. 난 9월에 쉴 틈 없이 콘티 작업을 계속하였다. 일이 계속 있는 스케줄로는 한 달밖에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케줄은 쉬고 싶다는 욕구가 계속 마음속에 쌓여갔다. 한 달 수입으로 보면 9월의 스케줄로 계속 쭉 해야지 어느 정도 평균 수입이 괜찮을 텐데.. 나의 수입은 한 달 차이로 v자 그래프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에너지를 한 번에 몰아서 다 써버린다는 것을 가계부로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여튼 화요일인 오늘도 난 일 모드를 유지하는 중이다. 오전에는 쇼핑몰 주문 확인과 송장을 뽑는 업무를 끝내고 오랜만에 씻고 일찍 나왔다. 프리랜서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외주) 스케줄이 따로 없는 날을 어떻게 잘 보내는지에 따라 어떤 분위기를 품는 프리랜서가 되는지가 나타나는 것 같다. 결국, 일이 없을 때 하는 행위가 자연스레 다시 일로 연결이 되고 그것이 또 자기의 색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자아 찾는 과정과 비슷한 건가? 참 흥미롭고 어려운 일이다. 만약 프리랜서 친구에게 안부 인사를 한다면 “잘 지내? 요즘은 어때?” 보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건강히 살아있는지 체크해주는 친구가 더 좋을 것 같다. 나라면… “운동은 하고 있니?”로 첫인사를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