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웨이걸의 성장스토리
아일랜드에서의 어학원 첫 번째 날.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스크린에 있는 내 이름을 보고 반을 들어갔다. 내 반은 Intermediate High반이었고 들어가자마자 꽤 많은 사람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원형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거의 13명 중 나를 포함해서 3명은 한국인이었고 나머지는 거의 브라질사람들과 유럽국가에서 온 사람들 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한국인이 내 반에는 적다고 생각하여 만족은 하였지만, 수업에서 적지 않은 놀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학원강사가 가르치는 것보다 너무 못 가르쳤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가 중학교 때 배웠던 문법들을 영국인 강사가 가르치고 있었다. 이 문법을 누가 모를까.... 하루 만에 듣자마자 너무 실망을 하였다. 그래도 첫날에만 별로였다고 생각을 하고 나름 학원에서 방과 후 수업처럼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개설한 게 있어서 참여해 보기로 하고 내 이름을 적었다.
골웨이 도시를 한번 둘러보는 액티비티였고 학원을 나서서 밖을 나가서 둘러보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일단, 그냥 도시 자체를 둘러보는 거였다. 이미 나는 오자마자 골웨이라는 도시는 둘러볼 만큼 둘러보았다. 도시 자체가 크지도 않았고 골웨이 거리는 하루이틀 만에는 충분히 돌아볼 수 있어서 나한테는 이런 액티비티가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선생님은 자기를 뒤따라 오라는데 갑자기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평소대로 학원 가는 날, 나는 티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텀블러를 손으로 잡고 한 손은 전기포트를 잡고 물을 붓는데 텀블러 구멍이 작아서 모르고 왼쪽으로 쏟아부어버렸다. 그리고 그 뜨거운 물은 고스란히 나의 왼손을 향해버렸다. 너무 뜨거워서 일단 찬물로 씻고 학원을 향해 나갔다.
수업을 듣는데 손이 너무나도 후끈거렸다. 따갑고 아팠다. 안 되겠어서 선생님한테 말하고 학원에서 연결해 준 병원으로 바로 향했다.
오자마자 병원행이라니... 들어오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그래도 상처가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 같다며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리고 먹을 약과 발라줄 약을 처방하며 약국으로 향해 약을 받고 바로 집으로 왔다.
나의 홈스테이맘은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냐며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도 나한테 괜찮냐며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갑자기 아일랜드에 온 게 후회되기 시작되었다. 아직 몇 주밖에 안 있었지만 골웨이라는 도시는 생각보다 너무 조용했고 고요한 도시였지만 재미가 없는 도시였다. 게다가, 친구를 아직 많이 사귀지도 않았을 때라 더더욱 재미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아일랜드가 아닌 미국으로 갔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후회가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적극적으로 학원에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닥치는 대로 참여하였고 다 같이 조를 짜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거기서 중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또한, 같은 조였던 스위스 친구들과도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가 한두 명씩 생긴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면 성당이나 교회를 가서 현지인들과 친해지는 방법도 있다고 하여 나는 무종교였지만 성당을 매주 한 번씩 가보기로 했다.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유럽 가톨릭의 문화를 알게 되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가는 게 더 나았다. 거기서 연세가 조금 있으신 할머니분과도 이야기를 하면서 아일랜드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 홈스테이 기간 3주-1달 정도의 시간이 끝나가기 전에 집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2019년에는 집주인이 오히려 갑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가 돈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집을 구하는 게 오히려 어려웠었다. 집을 구하려면 학원에서 친해진 외국인 친구들한테 물어봐서 인맥으로 구하거나 우리나라로 치면 '직방'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구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도 학원에서 친해진 친구들을 통해 집을 보러 가기도 하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처음에 구하는 게 매우 힘들었어서 정말 내가 홈스테이 기간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그리고 구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현지인 집주인도 만나서 고생이란 고생을 하고 아일랜드에 온 게 회의감이 들정도였다.
해외생활이 힘든 건 알긴 했지만, 집구 하는 것조차 힘들 줄은 몰랐다. 중국 교환학생 때도 숙소 때문에 밑에 프런트 직원들과 싸우는 일이 빈번했는데 그 과정에 있어 장점은 언어가 늘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일랜드에서도 구하는 과정에서 별의 별일을 겪기도 하며 언어실력이 향상되는 것과 상관없이 그냥 여기에 있는 게 맞나 싶었다.
일단 너무 안 구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들어가는 시기도 애매했었기도 했고 조건도 안 맞는 곳도 있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현지인 집주인이 운영하는 숙소로 가야 하나 싶었지만, 집주인이 이상하기도 했고 사실 룸 상태가 좋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그냥 다시 새로 구하자는 마음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그런데 키자마자 바로 킨 화면에서 하나 좋은 곳을 발견하여 바로 전화했더니 인자한 목소리를 가지신 아이리쉬 한분이 전화를 받았고 한번 만나러 그 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집은 매우 아늑했으며 누가 살고 있는지, 언제 들어오면 좋을지, 얼마인지 등등 집 관련된 설명을 매우 잘해주었다. 그래서 이 집에 꼭 들어오고 싶었다. 이제 홈스테이에서 나와야 할 시간은 다가왔었고 급했었다. 그리고 집주인도 좋고 집 환경도 나쁘지 않아서 빨리 집주인의 답을 기다리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내가 오기 전에 어떤 한 사람이 이 집을 선택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있었던 거여서 결국 그 사람이 들어가기로 했고 나는 이제 홈스테이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이틀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좋은 집주인이 자기가 아는 사람 명의로 운영하는 집이 하나 있는데 그 집이 3개월 정도 비어서 그 집으로는 들어갈 수 있다고 했고 집주인과 함께 뷰잉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3개월 뒤에 다시 구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3개월 정도의 아늑한 집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집자체도 넓고 좋았다. 이 소유 자체는 이 집주인 것이 아니긴 했지만, 홈스테이맘은 원래 이렇게도 운영한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들어가기 전에 3-4일 정도의 시간이 붕뜨게 되었는데 홈스테이맘은 왜 자기한테 얘기하지 않았냐며 또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내 무거운 짐만 몇 개 맡기고 3-4일 정도는 호스텔에서 지내다가 바로 이 멋진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음날,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아이리쉬 2명, 인도인 1명, 브라질 1명 그리고 스페인 1명 나까지 포함해 총 6명의 친구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제 뭔가 잘 풀린다는 느낌을 얻었고 이 집에서 어떤 생활이 그려질지는 예측하지 못한 채 이제까지 힘들었던 것도 사라질 정도로 이제야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