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웨이걸의 성장스토리
나름 적응한다고 했지만, 나의 3개월짜리 방은 여전히 나의 온전한 방이 되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집 찾는 건 나중일이고 가장 중요한 건 3개월 동안 잘 지내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브라질리언 홈메이트가 오랫동안 아일랜드에서 일하고 있었고 깔끔한 이력서를 적기위해 홈메이트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봤었다. 이때 처음으로 영어 CV라는 것을 제대로 적었었다.
학원이 여전히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많이 바쁘게 산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많은 국적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았다. 어느 날은 같은 반에 브라질 친구 한 명과 친해져서 같이 아시아식당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갔다.
근데 이게 바로 내 배탈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서로 똑같은 오리고기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고 혼자서 집 근처에 있는 카페를 가서 맛있는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잠을 청했다. 그리고 새벽에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아파서 먼저 화장실에 갔더니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5번을 갔는데도 끝나지 않았다. 1시간 자고 다시 일어나서 또 가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새벽 1시에 시작해서 나의 설사는 새벽 6시쯤에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다.
브라질친구한테 상태가 어떤지 물어봤지만 나랑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멀쩡했었다. 아마 내가 먹었던 고기가 잘 안 익었던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라테까지 먹었으니 배 상태는 말도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일단 배탈 난 것 가지고 비싼 비용을 내며 병원을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만약 배탈이 났다면 평소에는 배탈이 난 당일에 아무것도 안 먹고 푹 쉬면 그 다음 날 저절로 나아진다. 이제까지 배탈 나면 이렇게 했었으니 당연히 하루동안 아무것도 안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도 낫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기에는 체력이 안 받쳐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시아마켓에 가서 쌀을 사서 직접 죽을 끓였다. 안 그래도 오자마자 화상 입었는데 이제는 배탈이라니... 점점 지쳐갔고 아프다 보니 한국이 그립기 시작했다. 그래도 죽을 끓여서 먹다 보니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이날 나의 밥은 한 끼 죽으로 충분했었다.
그리고 내 배탈이 지속되는 3일째 되는 날, 밥을 굶고 죽 한 끼만 먹었는데도 낫지 않아서 이쯤 되면 병원을 가야 하나 싶었다.
다른 브라질 친구도 만나기로 했었어서 친구와 함께 카페로 가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다. 배탈에 어떤 게 좋은지 물어봤었고 페퍼민트가 좋다고 하여서 페퍼민트를 골랐다.
차까지 마시니 이렇게 먹다가는 계속 낫지 않는 나의 배상태를 보며 병원을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어차피 보험도 들었는데, 그리고 돈을 떠나 안 나으면 병원을 가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어 그다음 날 병원을 가기로 했다.
나름 학원에서 추천해 준 병원으로 갔고 화상 입었던 곳은 우리나라로 치면 가정의학과처럼 일반병원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내과를 전문적으로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갔더니 몇 개의 방이 있었고 한 의사가 병원을 차린게 아닌, 몇 명의 의사들이 있었다. 앉아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았다.
진찰방으로 들어갔더니 아이리쉬가 아닌 인도계의 의사분께서 나에게 배탈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약을 먹었는지 등등 나의 상태에 물었다. 그리고 약을 지어줄 테니 한번 먹어보라고 했다. 대충 진찰을 하기보다는 그래도 나름 정성껏 진찰을 봐줬다.
무려 진찰 금액은 40유로가 나왔다. 전에 감기기운이 있어서 아이리쉬 홈메이트한테 물어봤었는데 감기 걸리면 그냥 따뜻한 차와 함께 푹 쉰다고 했었다.
그래서 왜 아이리쉬 사람들이 아프면 그냥 집에서 약 먹고 쉰다는 이유를 알았다. 사실 한국 나와서 살면 다들 알겠지만, 서양국가는 특히 비싸다. 퀄리티도 사실 한국에 비해 떨어지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대충 진찰 보고 이러지는 않았다. 대신 많이 비쌀 뿐이었다. 몇천 원 해야 할걸 40유로를 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와서 근처 약국에서 처방을 받았다. 처방받은 약을 좀 먹고 나니 5일째쯤 되니까 나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쉬거나 안 먹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일랜드에서는 안 통했는지 꽤 오래갔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탈이 났으면 바로 갈걸 후회라도 했었지만, 5일째 나아진 게 어디냐면서 그 뒤로는 배탈이 나지 않았다.
외국에서 다른 건 몰라도 아프면 서러운 건 맞다. 그래서 건강만 한다면 외국에서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내가 아프고 느낀 점은 병원을 2번을 갔다 보니 꽤 생각보다 아일랜드의 병원 시설이나 퀄리티척인 측면이 나쁘지는 않았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서 약국도 우리나라처럼 시스템도 비슷했다. 처방전 받고 약국 가서 약 받고 먹으면 끝이었다. 사람 사는 건 똑같아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단지 의료비가 비싸다는 게 큰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다. 비싼 거 제외하고는 아일랜드 병원도 괜찮았다. 내가 갔었을 때는 생각보다 대기가 길었다거나 예약을 미리 하고 가지 않아도 되었었다. 우리나라의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같은곳이 아닌, 일반병원이다보니 오래 안기다리고 의사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프면 병원 가서 전문의랑 얘기하는 게 맞다. 그러니, 가벼운 감기정도가 아닌 계속 아픔과 통증이 지속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자. 그게 답이다.
물론, 그 이후로는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런 잔병치레가 있을 때, 건강을 챙기자고 매번 다짐했지만 실패하여 결국 몇 년 후에 갑상선암을 얻었다. 그래도 암을 얻은 계기로 다시한번 정말로 건강을 챙기게 되었다.
그러니 잔병치레가 있더라도 건강을 무조건 챙기자, 체력과 건강을 못 이기면 무용지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