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ongplate Apr 13. 2021

포문을 열다

아니, 이것은 대포는 필요없는 소규모 1인 전투이다.




글의 제목을 어찌 달아야 하나 모르겠어서, 흔한 관용구를 하나 데려왔다. 1분의 고민도 걸리지 않은 결정이었다. 요즘의 나는, 고민의 여지가 없는 단어나 관용구들에 대한 의심으로, 아니 정확히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 검색을 해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 관용구는 아마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로부터 전해져온 것이니라. 그렇다면 내가 ‘포문을 연다’ 했을 때의 뜻은 2번에 가까운 것이 맞을텐데, 나는 그 뜻으로부터 낯섦을 느낀다. 이렇게나 공격적인 뜻이었다고?


이왕 이렇게 된 것, 그 뜻을 이어받아 나의 첫 브런치에게로 포문을 연다.


1. 나는 ‘작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어떠한 압박과 나태, 무관심을 동시에 누리고 있지만 작가라는 이름은 무겁다. 그러니  플랫폼은 나에게 오로지 이용만 당할 것이다. 나는 양질의 글을 생성하지도 않을 것이며 저너머의 부러운 이들처럼 부지런한 업로드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누군가의 열렬한 독자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글들은 카테고리화할  없는 비전문적 일기에 그친다. 그것들이 오로지 몇바이트의 트래픽으로서 존재하리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의미없음은 가치없음과 동의어인가? 가치없는 것은 남겨지면  되는 것인가. 그런 반발심으로 걸린 시동은 털털털 제자리를 맴돌다가 이제 겨우 한바퀴를 굴렀다.


2. 그래서 남겨야 할 곳을 무던히도 찾아 헤맸다. 꼭 찢어져 버려지던 수첩, 그 언젠가의 블로그, 아이폰의 메모, ui가 제법 예쁜 어플, 적응에 한참 걸린 노션. 그렇게 나만이 볼 수 있는 소중한 유리 상자에 꽁꽁 숨겨온 백짓장이 켜켜이 쌓여 갈증을 일으켰다. 내가 비록 작가는 아니어도, 여기 살아 숨쉬는 기록자임을 밝히고 싶어서. 나의 이 그릇됨을. 나의 그릇이 작음을. 알려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아서.


3.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묻는다. 가치없는 것이 기록되는 것은 무의미한가? 무의미한 것은 가치가 없는가? 기록은 가치 있는 것의 전유물인가?


4. 아마도 나의 브런치는, 아침과 점심을 모두 해치우는 것이 아닌 아침과 점심의 애매한 상태로 머무를 것에 틀림없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나태함에 대한 반성문이 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