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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Jan 01. 2024

여행의 시작은 개판, 끝은 더 개판

인생이 개판이 됐다 6


반려동물 사업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는 직접 키워보기 전에는 몰랐다.

마치 아이를 키워보기 전까지 육아 용품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랐던 것처럼. 

그러나 아이도 강아지도 진짜 고수들은 맨손으로 키운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면 다른 부모들은 어떤 아이템을 들고 다니는지, 유모차는 무엇인지 옷은 어떻게 입혔는지 관찰하게 되는 것처럼 강아지를 데리고 외출할 때도 어떤 하네스(가슴줄)를 사용하는지, 어떤 리드 줄(목줄)을 쓰는지 펫모차(강아지 유모차)는 어떤 스타일인지 보게 된다. 


나도 펫모차를 쓰기 전까지는 아기 유모차와 반려동물 펫모차가 헷갈렸는데 이제는 정확히 구분할 줄 안다. 


지난주, 펫 강의에서 만난 보호자들(견주들을 00 보호자분 이렇게 부른다.)은 연령에 따라 아이템들이 차이가 있었는데 역시 가장 나이 많으신 분이 정말 개만 달랑 데리고 오셨다. 그분은  젊은 보호자들을 둘러보며 '나도 유모차를 사야 하나...'라고 말했지만, 그분은 아마 사지 않을 것이라는데 내 펫모차를 걸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맨손으로 쭉 키우실 것 같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며 다른 아이템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입힌다는데 놀랐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까지는 '강아지 옷 따위... 필요한가?'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소비 패턴이 필요가 아닌 다른 여러 의미로 확산되어 있는 세상에서 강아지 옷은 필요를 떠나서 어렸을 때 인형놀이하는 마음으로 '예뻐서, 귀여워서' 입히게 된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유난이다' 싶겠지만. 



단순히 옷과 강아지 용품만이 아니라 '반려동물 전문 여행사'도 있었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까지 여행을 가면 강아지 호텔에 맡기는 정도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키우게 되니 강아지를 맡기고 여행을 간다는 게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하자니 아쉽던 차에 '반려동물 여행사'를 발견했고, 우선 강릉 당일치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나로서는 개만이 아니라 애도 함께 가는 여행이었다.


단체 여행이다 보니 집결지까지 가야 하는데  집결지는 '죽전 간이버스정류장'이라는 곳이었다. 

도대체 어떤 곳인가 싶었는데 관광버스들이 서울(사당, 양재 등)에서 출발해서 잠시 정차해서 손님들을 태우는 아주 작은 정류장이었다.


일요일 아침 7시 40분 탑승이라서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갔더니 그 시간에 관광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들로 가득했다.


말로만 듣던 등산의 인기를 실감했다. 소백산, 무등산 등등 한 번쯤 들어본 산 이름들의 목적지를 붙인 버스들이 끊임없이 와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반려동물 전문 여행사는 반려동물 전문 여행사답게 버스 좌석에도 강아지 이름을 붙여놓고 강아지 전용 안전벨트도 제공해 주었다. 


개별적으로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행할 경우 운전하랴 강아지 돌보랴 어려운 점을 해결해 준다는 점, 그리고 펫가이더가 잠시 휴게소 같은 곳에서 강아지를 봐줄 수 있는 것과 반려동물이 들어갈 수 있는지 일일이 체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여행하면서 가는 곳마다 반려동물이 가능한지 검색해 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오늘 코스는 강릉의 '하슬라 아트월드'와 강릉 커피 거리로 유명한 '안목 해변'이었다.


둘 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기대가 컸다.

그러나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하슬라 아트월드 야외 조각 공원을 구경하려는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강아지 때문인지 여행지마다 시간을 넉넉하게 주었는데 비가 오니 주어진 시간보다 빨리 구경을 끝내고 버스에 타는 편이 나았다. 거기다 애도 비가 온다고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싶었는데 못하게 되었다고 여간 속상해하는 게 아닌가. 


그래도 어찌 점심을 먹고 바닷가로 향했다. 다들 강아지를 데리고 함께 밥을 먹으니 눈치도 안 보이고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강아지들이 다들 얌전한 편이라 여행 내내 개가 짖는 소리는 몇 번 듣지 못했다.


처음에는 약간 비가 내리는가 싶었는데 바닷가에 오니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편의점에서 급하게 우산을 샀는데 우산이 꺾일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이는(개도) 비가 와도 바닷가를 구경하겠다고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고 나는 개를 건사하랴, 애를 건사하랴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인 건 반려동물 동반 카페들이 있다는 것.


아이를 키울 때는 '노키즈존'에서 발길을 돌렸다면 강아지를 데리고 있으면 대부분의 카페나 식당은 언감생심이다. 다만 테라스 좌석은 강아지와 동반이 가능한 곳이 많기는 하지만, 아주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은 사용하기 어렵고, 쾌적한 날씨라도 실내의 아늑함은 포기해야 하니 카페나 식당을 포기할 때가 많았다. 강아지가 없었을 때도 나는 개인적으로 테라스 좌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행 업체에서 반려동물 가능한 카페들을 안내해 준 덕에 바닷가의 비바람을 피해 카페에서 쉴 수 있었다.


어째 내가 기대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애와 개를 데리고 이만큼이라도 어딘가 싶어 그래도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가 보고 싶던 동해 바다는 그냥 내 머릿속 상상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운전이라도 안 하니 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렇게 다시 여행의 시작점이었으며 종착지인 '죽전 간이정류장'에 내렸다. 


이제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이럴 땐 차라리 개가 낫겠다 싶었다. 개가 잠시 실례를 할 곳은 주변에 많이 있는데.... 인간을 위한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강아지를 들고, 아이와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생략하고.....


그러는 사이 핸드폰 배터리는 방전되고 차를 세워놓은 공영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정확히 모르겠고..

대충 주차장 방향을 잡고 걷다 보니 공원에서 개랑 산책하는 남자분이 보여서 길을 물었다.

한 손에 개를 들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 아줌마에게 친절하게 안내해 주리라 기대하며. 


남자분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길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뭔가 낯선 곳에서 '개 커뮤니티'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탔건만, 나는 핸드폰 네비를 쓰는데 좀처럼 충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밤늦은 시간이고 차 안에서 충전을 기다릴 수는 없어 네비 없이 이십 년 전 표지판 보고 운전했던 실력을 발휘해 집으로 돌아왔다. 


애만 키우거나 개만 키우면 인생이 지금보다는 우아할 것 같다.


개와 단둘이 여행 온 젊은 여자는(아직 미혼으로 보이는) 카페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부러워하며 혹시 몰라 챙겨온 머플러로 아이의 물기를 닦고 강아지를 물기를 닦고 허겁지겁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여행의 시작, 중간, 끝까지 개판의 크레센도를 경험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또 떠날 것이다. 지금까지 나를 봐선 그렇다. 


안목 해변에서 강아지와 아이. 비를 맞으며 둘 다 좋다고 뛰어다니는데 나는 둘의 감기 걱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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