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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Dec 18. 2023

개팔자가 상팔자라면 나도 상팔자 되어보자

인생이 개판이 됐다 4


개팔자가 상팔자. 얼마나 많이 들어 본 말인가?


특히 요즘은 유모차(펫모차)를 타고 다니는 강아지부터 털을 전문가에게 관리받은 말끔한 모습, 제철에 맞게 패셔너블하게 옷을 입은 모습도 흔하다. 

그런 강아지를 보면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개팔자는 상팔자'라는 말이 과거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꼭 비싼 돈을 들인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니리라. 


개는 인간과 함께 살아온 역사가 길다. 그만큼 인간의 시선에는 개가 있었을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힘들게 밭일을 하고 온 농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개를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을까.

주는 밥이나 먹고 뛰어다니고 아무 때나 잠들 수 있는 개가 얼마나 자유롭고 한가해 보였을까. 

그럴 때 자신도 모르게 '개팔자가 상팔자지.'라고 무심히 내뱉었을 것이다. 

여기서 상팔자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부러움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동만일까? 


노동을 하지 않는 게 육체의 해방이라면 정신적으로 근심이 없다는 것 또한 인간이 바라는 이상향이다.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서, 취업을 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비난을 받아서, 애인과 헤어져서 슬플 때 개를 쳐다보면 '너는 무슨 걱정이 있을까?'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니 '개팔자 상팔자'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인간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과 근심에서 벗어난 대상으로의 표현이다. 


그런데 그런 상팔자와 함께 사는 인간은 과연 어떨까?


나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강아지 영화관'을 자주 가게 되었다. 

이른바 '퍼피 시네마'라는 곳인데 강아지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정말 이쯤 되면 '개 팔자가 상팔자'의 절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영화는 개를 위한 영화가 아니다. 개를 위해 텔레비전을 보여준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내가 개를 키우면서 개가 영상을 보는 것을 아직 경험한 적이 없다. 좀 크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세계최초 반려동물 동반 멀티플렉스'라고 이름을 내건 곳이 우리 집과 가까워서 한 번 가본 후에는 개보다는 내가 더 그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용은 사람 2명과 반려동물 한 마리의 패키지 가격이다. 나는 딸과 강아지를 데리고 간다. 보통 영화관보다 당연히 비싸다. 주중 36,000원 주말 40,000원이다.


나는 이 비용이 합리적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 2명으로 나누면 1인당 18,000원, 20,000원인 셈이다. 일반 티켓의 3-40%는 가격이 높다. 그런데 반려동물이 포함되니 3으로 나누어야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럼 12,000원 13,333원이 된다. 그런데 강아지는 영화를 보지 않는데 3으로 나누는 건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이게 과연 맞나 싶다. 도대체 반려 동물의 퍼센트가 얼마나 반영된 것일까 싶은데....


비용은 차치하고 서비스를 보자. 

사료와 간식, 기저귀를 서비스로 받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인간만 가면 편할 것을 굳이 강아지를 데리고 퍼피 시네마를 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내가 퍼피 시네마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좌석이 소파다. 이 소파의 편안함은 리클라이너 이상이다. 집에서처럼 신발 벗고 다리를 자유자재로 뻗을 수 있다. 그러니 아이를 데리고 보는 것도 편하다. 아이는 나한테 기대기도 하고 강아지를 안기도 하고 자유롭게 영화를 본다.

핸드폰 사용도 그다지 다른 관람객들에게 방해되지 않고 심지어 우리 가족만 관람할 경우도 많아서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기분이다. 일반 영화관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vip 느낌이다. 


다시 비용 얘기를 하자면 4만 원(혹은 3만 6천 원)에 영화관 하나를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퍼피 시네마'가 그 어떤 영화관보다도 나에게는 편한 영화관이었으니 개팔자 상팔자를 따라가다 나도 상팔자가 되었다.


개를 키우면서 나는 동물이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동물 흉내를 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동물보다 늦게 출현한 인류가 가장 강한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동물들을 흉내 내고 학습할 수 있는 모방 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개팔자 상팔자'라는 말로 개를 부러워하며 노동과 근심에서 벗어나 그저 자신에게 삶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 개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 인간. 바로 오늘의 나다.


어제는 퍼피 시네마에서 '서울의 봄'을 봤다. 


영화 중에 '개도 간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란 대사가 나왔다. 강아지가 못 알아듣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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