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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도슨트 임리나 Apr 05. 2024

그림을 샀다

난생처음 그림을 샀다.


벽에다가 액자를 거는 걸 싫어해서 결혼하고 내 맘대로 집을 꾸밀 수 있을 때부터는 아무것도 걸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아트 포스터를 사서 액자에 넣어 걸기도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거기다 남들이 그림을 산다던가, 아트 테크를 얘기할 때도 관심도 별로 없었다.


나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단지 미술을 좋아서 감상하는 정도의 사람인데 그림을 살 일이 있을까 싶었다.


내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랬듯, 어느 날 갑자기 그냥 그렇게 일어난다. 일어난 다기보다 부딪힌다는 게 맞다.


몇 번의 우연이 겹쳐 전시회를 갔고, 그 전시회에서 전시 작품을 팔고 있다는 걸 도슨트 설명을 듣다 알게 됐고, 어떤 작품을 파는지 리스트를 보고 실제 작품을 보니 사고 싶어졌다.


물론 사고 싶다고 다 사는 건 아니지만.


그림을 보고 좋다, 마음에 와닿는다, 이런 마음은 많이 들었지만 '사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이라 나도 신기했다.


마침 딸도 옆에 있었는데 "그림을 산다고?" 놀라서 연신 물으면서도 함께 그림을 골랐다.


그림의 가격 때문에 선택의 폭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딱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라 별 고민 없이 사고 말았다.

더구나 전시 막바지라고 20% 할인을 해준다고. 

(어쩌면 모두 구매는 마지막 할인율이 화룡점정 같다.)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보내준다고 했다.

그림을 처음 사본 나는 두 가지가 궁금했는데

하나는 '어떻게' 보내주는가. 설마 택배로? 유명한 H사는 아예 따로 전용차로 보내준다는데, 그림은 과연 어떻게 보내줄 것인지? 

괜스레 처음 사는 티를 내기 싫어서 묻지 못했다.

아니면 내향형 성격 탓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액자'를 보내줄까 궁금했다. 

만약에 액자 없이 원화만 온다면 전용 액자를 맞춰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 작품이 왔는데 정확히는 작품보다 전화가 먼저 왔다.

'용달'이라고 밝힌 그분은 아주 친절했다.

내가 집에 없을 거라고 하자 경비실에 잘 맡겨놓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대신 나중에 받으면 꼭 사인을 보내달라고 했다.


오히려 나는 별 생각이 없는데 그분이 자꾸 강조를 하니 

"저...... 괜찮겠지요?" 라며 내가 물었다.


얼마 후에 경비원 아저씨가 저 은색 봉투를 받아 든 사진을 전송해 주었다. 

아마도 증거를 남기기 위해 물건만 찍지 않고 사람도 같이 찍는 모양이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 경비실에 가서 은색 봉투를 챙겨 왔다.

그리 크지 않은 작품이라 가벼웠고, 봉투에 붙어 있는 작품 번호, 작품 사진, 가격 등등

(모자이크 처리한 부분)을 보며 정말 세상에 하나뿐인 무언가를 소유한 기쁨이 느껴졌다.

겉으로 만져지는데 전시에 걸린 그 액자 그대로였다. 


내가 이 그림을 고른 이유는 우리 세 명의 가족 같아서였다.

나는 아이에게 그림을 남겨주고 싶었다. 

전시회를 같이 갔던 추억, 엄마와 그림을 고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도 함께.


현실에선 3명이 2명이 되고 나중에 한 명이 되고 결국엔 다 사라지겠지 싶은데

그림 속에서만은 3명이 영원히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나저나 너무 설레어서 아직 열지 못했다. 


일단은 혹시 이 작가의 전시회가 있다면 나한테 작품을 대여해 달라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

그런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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