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세까지의 기록
여섯 살까지 체험왕이라 스스로 칭하며 많은 체험을 하며 보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 이전에 자연스럽게 외출을 하며 접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주도학습을 얘기하는 요즘에 '자기주도외출'은 되는 것 같다.
지금도 어김없이 휴일이 되면 가까운 곳이라도 아이가 먼저 나가자고 한다.
그런데 일곱 살은 발달 단계를 보아도 학습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고 그 동안 체험한 것들을 다지고 발전시키려면 학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학습의 바탕은 '읽기 능력'이 중요하고 그 읽기 능력을 '독서'가 키워준다는 건 자명한 일이지만 학습은 결과가 아니라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지만 많은 엄마들이 '훈련'이 되는 과정 보다는 늘 '성과(output)'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쉽게 성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어떤 아이들은 이미 영어책을 술술 읽는데 내 아이는 알파벳도 모르다거나, 어떤 아이들은 세자리수 덧셈을 하는데 내 아이는 한 자리수도 힘겨워 하거나 어떤 아이들은 두꺼운 책도 읽는다는데 내 아이는 책보다 영상을 좋아한다거나.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과정을 들여다 본다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이들의 성과에는 어떤 형태로는 학습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훈육을 할 때 엄마를 괴롭히는 마음 속 갈등이 있었다면 그건 '내 아이가 착한 아이일까, 나쁜 아이일까'이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며 착한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훈육이 어렵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보면 싸이코패스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이를 잘 키우고 못 키우고를 떠나서 악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는 정말 잘 보여준다.
아마 엄마들 마음 속에 있는 '나쁜 아이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의 상상의 끝을 보여주 셈인 것도 같다.
그런데 대부분은 아주 착하거나 아주 나쁘지 않은 그 사이 어디 쯤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의 불안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는 것 같다.
아이의 학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부모들도 그랬지만 '될 아이는 밀어주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포기하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마치 이 말에는 자신의 아이가 천재이거나 바보라는 극단적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천재쯤 되어야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부모의 지원을 받는 아이는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아이가 도대체 어느 정도가 똑똑한 아이이고 그렇다면 왜 똑똑한 아이만 지원을 해야 하지? 싶다.
아마도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이에 대해 끊임 없이 어느 순간에는 바보아냐? 했다가 또 다른 순간에는 천재 아냐? 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아이가 천재도 바보도 아닌 그 어디쯤엔가 있다면 아웃풋 보다 아웃풋을 향한 '훈련'에 촛점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그랬다. 내 아이가 입양아라서 알 수 없는 유전자이니 천재일까? 바보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부모는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선'에는 늘 합리화와 변명도 혼재한다. 그래서 나의 최선이 자식에겐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
아직도 누군가는 '엄마의 불안'을 조장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들이 불안해 하지 않으면 사교육 따위에 넘어가지 않을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그 엄마의 불안은 누가 만들거나 사회가 조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엄마가 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극단적인 감정을 오가게 되는 것 같다.
마치 연애할 때 '이 남자와 헤어져? 만나?'를 하루에도 골백번 고민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극단적인 감정 기복을.
엄마의 불안이란 한국의 경쟁사회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인류가 생겨났을 때부터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수많은 동화에서 새엄마가 나오는 것 또한 친엄마의 감정 기복을 착한 엄마와 나쁜 엄마의 별개 인물로 나눠놓은 것이 아닐까.
엄마는 아이가 천재스러울 때 상냥해지고 바보스러울 때 포악해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천재나 바보가 아니라 천재와 바보사이 그 어디쯤엔가 있다는 걸 알면 천재스러울 때 칭찬해주고 바보스러울 때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글의 시작에서 우리 아이가 '영재'라고 썼었다. 그러나 웩슬러 검사 하나만으로 영재라고 단언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도 천재와 바보 사이 그 어디쯤엔가 있고 아직 일곱 살이고 갈 길이 멀다. 다만 나의 길에, 아이의 길에 서로가 의지할 수 있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좋은 동행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