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암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봐왔던 장면 하나가 있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다소 심각한 표정의 의사는 마치 담임 선생님에게 자신의 시험 성적 결과를 듣는 학생처럼 긴장하고 있는 환자를 향해
"보호자 같이 오셨나요?'
라고 묻고는 환자를 내보내고 진료실 밖에 있는 보호자가 불려 들어가면 의사는 그때서야 환자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때마다 나는 의문을 가졌는데
왜 환자한테 직접 얘기하지 않을까?
어차피 보호자를 부르는 거 자체가 심각하다는 뜻인데,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텐데 굳이 왜 보호자를 불러서 얘기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막상 내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냥 저한테 말해주세요!
라고 대답하고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도 혼자 꿋꿋하게 의사의 설명을 들으리라는 상상을 했었다.
얼마나 멋진가! 자신의 심각한 병마저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처리하는 여인네의 뒤태에는 씩씩한 아름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이런 상상을 한다는 건 그 반대로 나의 심각한 상황을 얘기하기 위해 보호자를 찾는 상황이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는 걸 막상 닥치고 나서야 알았다.
몇 달 전부터 심한 혈변으로 괴로워서 대학 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를 봤더니 대장내시경을 하라고 했다.
대장 내시경은 수면 내시경으로 진행하는데 꼭 보호자와 같이 와야 하고 보호자가 없이는 대장 내시경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내 보호자는 당연히 남편이기에 남편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평소 건강검진도 혼자 운전해서 다녀오는 남편이기에 굳이 왜 그 병원은 같이 오라고 하냐며 귀찮아하며 우리 세 가족은 병원으로 향했다.
전 날, 대장내시경을 위해 먹었던 약이 대장의 모든 찌꺼기를 탈탈 털어내는 역할을 한 덕에 나는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간신히 가운을 갈아 입고 대장내시경을 위한 마취를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마취가 깨는지 비몽사몽 한데 의사가 컴퓨터 화면을 보며 남편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용이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의식이 완전히 돌아왔을 때 간호사는 나더러 옷을 갈아입고 무슨 동의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
이때 나는 의아했던 게 대장내시경을 하면서 용종이 있으면 바로 떼어내는 시술을 할 거라 들었는데 그런 안내도 없이 그냥 나가라는 거였다.
그럼..... 괜찮은 건가? 뭐지?
이런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고 나갔더니 벤치에서 기다리던 남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아침에 귀찮다고 투덜거리던 그 표정 대신 금방이라도 울듯한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심각하대
심각?
설마....???
그리고 의사가 나에게 사인을 하라고 내민 태블릿의 제목은 '유전자 검사(조직 검사)'였다.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곳에 태블릿 펜으로 사인을 마치고 나니 2주 후에 결과를 들으러 오라고 했다.
이쯤에서 예상되는 건 바로 '암'이기는 했다.
그러나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만약에 암이라면 이렇게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없는 거 아닐까?
아 그리고 심각하면 난 곧 죽는 건가?
우리 애랑 남편은 어떻게 되지?
정말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유일한 희망은 아직 나는 아무 얘기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남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내일 죽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어떻게든 널 살리겠다"
"다시 성당을 나가야겠다"
라고 얘기하며 나는 침대에 누워만 있고 남편이 온갖 집안 일부터 아이 스케줄을 챙기고 돌보는 일까지 하고 있어다.
만약에 내가 심각한 병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검사만 한 상태이기에 어제의 내 상태와 오늘의 내 상태가 달라진 것도 없을 텐데 남편이 의사와 대화를 한 후에 심각한 상태가 되는 걸 보고는 문득
"왜 의사는 환자가 아닌 보호자에게 얘기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 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노인이라 자식인 내가 보호자가 되었고 아이는 어리니까 내가 보호자가 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나는 아직 젊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의사능력을 갖춘 사람인데 왜 보호자에게 말했을까?
나는 내가 상상했던
"보호자 같이 왔나요?"라고 물으면
"그냥 저한테 말하세요"라고 대답하려고 했던 그 기회마저 놓쳤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의사는 보호자인 남편을 불러서 얘기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왜 환자가 아닌 보호자가 말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는 의사가 시간이 없어서 환자인 내가 깨기 전에 보호자인 남편을 불러 이야기했다. 이런 경우는 단순히 의사의 편의성에 의한 해석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환자 본인에게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아직 그렇게 나이가 많지도 어리지도 않고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반박하고 싶다.
환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건가?
환자가 제대로 알아야 치료에 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경험하고 보니 세 번째 이유를 생각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 환자는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니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라고 하는 뜻인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동생과 병원에 다니면서 나에게 한 얘기가 있었다.
"아니 지금까진 내가 저 녀석 보호자였는데 이번에 갔더니 저 녀석이 내 보호 자래..."
그땐 당연한 얘기를 뭘 저렇게 하시나 싶었고 부모가 나이 들면 당연히 자식의 보호자가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내가 아이의 보호자로 병원을 따라다니면서, 또 아버지의 보호자로 병원을 따라다니면서 나이가 들어 이렇게 입장이 바뀌는구나 했는데 이제는 그 시기를 지나 다시 피보호자가 된다는 건 그만큼 더 나이를 먹은 건가 싶었다.
보호자 덕분인 걸까. 보호자로서 의사에게 얘기를 들었던 남편은 나에게 아직 구체적으로는 얘기해주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의 상황을 대비해서 동분서주 바쁜 것 같다.
이런 보호자(남편) 덕분인지 나는 아직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아직 확실히 얘기를 들은 것도 아니고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니 당장 암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단순 검사만 했으니 혈변의 증상은 멈추지 않았고 남편 덕분에 거의 침대에 누워서 또 남편이 해주는 밥을 먹으며 '환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 말로는 암이 아니면 좋겠지만 그래도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암이 아니라 치핵, 치질..... 뭐 이런 상대적으로 가벼운 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s1: 2주 후 나는 직장암이고 3기 추정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 2주 동안 마음의 준비도 하며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보호자(남편) 덕분이었다. 어쩌면 "저한테 말하세요."라고 하는 기회가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인생은 예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예상과 계획이 어긋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p.s2: 나의 이 글을 읽고 <꿈꾸는 현자>님이 글을 써주셨다. 덕분에 의사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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