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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l 24. 2023

며느리와 딸





어떤 글에는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의 죽을 것 같은 진통 끝에 자식을 낳았다. 시부모님은 어렵게 얻은 손자만을 바라보며 연신 웃으셨지만, 친정아버지는 힘들어했을 딸만을 보고 계셨다."


언젠가는 이런 영상이 있었다.


60이 넘은 며느리는 치매가 있으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 딸은 방송을 통해 따로 살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한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다리가 아파 자주 가지도 못한다며 어머니가 좋아했던 음식을 하나하나 장만했다.

방송국 pd는 고이 보자기에 싸인 음식을 들고 친정어머니께 전달하며 영상을 틀어주신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딸은 말을 끝내지 못하며 울면서 겨우내 감사함을 전했다.

자신의 친정어머니도 치매였는데,

밥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환경에 눈물만 흘렸다.

자신이 없으면 시어머니가 식사를 잘하지 않는다며 친정어머니한테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며느리.

하지만, 그곳에는 남편도 같이 살고 있었다.



항상 하는 얘기지만,

며느리와 딸의 상관관계를 따지기는 어렵다.

그저 아들이 데려와 가정을 이루겠다며 인사를 하고 법이라는 보호아래 가정을 이루며 정을 쌓아가며 사는 며느리.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며 뱃속에서부터 성장을 같이 하며 나와 닮은 딸.


세상에는 딸보다 며느리는 좋아하는 시부모님이 계시고,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며 친가와 외가를 따지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어른들을 보시는 분들도 계신다.


마음가짐과

환경에 따라 가족이라 함께 살아간다.


'며느리는 딸과 같다.'

아마 그 말은 '딸처럼 여기겠다'이겠지 딸이 될 수는 없다.

몇십 년을 키워 장점, 단점을 다 알고 그 성격을 다 파악하는 자식과/

몇십 년을 모르고 살다가 가족이 될 거라고 데리고 온 며느리/

살아온 세월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세월에 그 사람에 대해 장점, 단점 그리고 성격을 파악하며 살아야 한다. 거기에 실망도 있을 것이고, 감동도 있을 것이고, 분노도 있을 것이고, 눈물도 있을 것이다.


요즘 시대를 보면 그 척도가 명확히 되지 않아 싸우고 분노하고 이혼이란 단어를 올린다.



친정엄마가 치매에 걸려 밥도 어떻게 드시는지 모르겠는데 시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60세 이전의 어머니들은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시고 사셨다.

결혼하면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며 남이라고 못 박는 친정과 시댁에 맞춰 살아야 했던 시대는 그게 맞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10명을 낳던 자식을 1~2명 정도, 3명을 낳으면 국위선양이라며 칭송하는 시대다.

배고프던 시대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해야 사는 시대다.

여자 목소리가 담벼락을 넘으면 안 된다는 시대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다.


결혼초가 되면 달라진 환경에 젊은 부부들은 부딪히고 싸운다.

'이게 맞는 거야?'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며 인내와 배려를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시부모님은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딸처럼 집에 가면 밥 차려달라 하시고, 거실에 누워 tv 보세요."

"시어버지한테 '나 오늘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았는데 한잔 하게 맥주 좀 사다 주세요.' 하세요. 그럼 다음부터 딸 같은 며느리를 찾지 않을 거예요."



"시댁에서 김장을 한다는데 전 시댁김치 먹지 않아요. 근데 오라고 하는데 가야 하나요?"

"김장을 하면 다 끝났을 때 시누가 김치통만 갖고 와 김치 담아서 그냥 가요. 시어머니는 더 못줘서 서운해하시고요. 김장하기 기운 빠져요."

질문에

"아들 보내세요. 왜 가는 건가요? 바보세요?"

"친정 김치 먹는다고 하세요."

(-조절해서 썼지만, 어떤 글은 적나라하게 비판의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 말들 속에 답은 없다.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저렇게 했다가는 가족 간의 정이고 뭐고 없게 된다.

'처신'을 잘해야 현명한 사람이 되고 가족이 불화가 없게 된다.


부딪혀 보고 살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시는지 파악하고 내 행동을 해야 하는 게 맞다.

참고 견디는 게 아니다.

가족의 일환이 되고자 결혼했다면 그 일환이 되게끔 노력도 해야 한다.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하시면 딸과 며느리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얘기하고, 딸은 뭘 해도 잘못이 감춰지지만(자신의 딸인데 흠을 어디 가서 얘기하겠나.) 며느리의 잘못은 그저 사돈의 흠처럼 사돈을 흉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뱃속부터 자신 옆에 살던 딸이랑,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가 어떻게 딸과 같은 관계가 되겠나.

서로가 노력해야지.

딸은 욕도 하고 꿀밥을 때려도 되는 사이지만,

며느리한테는 욕하고 꿀밥을 때리면 그날부터 남편이 시달림을 받기 마련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남편 아들만 바라본 어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와도 자신처럼 살기 원하신다.

내 아들의 밥부터 챙겨야 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밥 보다 아들의, 남편의 입으로 먼저 들어가야 한다.

내 아들 피곤하니 청소, 빨래 며느리가 다 해야 한다.

명절이면 아들 발걸음도 반가워 방에서 누워 있으면 술 상 봐주며 쉬라고 한다.


그런 대접을 받았던 아들은 당연히 자신의 아내에게도 그렇게 받길 원한다.

요즘 시대에 '출가외인'을 들먹이며 자신을 처가 제사에 가지 않는 게 당연하고, 자신집의 제사에는 며느리는 꼭 동참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딸은 제사에 동참하지 안 해도 되니 와도 그냥 손님처럼 있으면 된다는 생각... 여자, 아내를 지치게 하는 것이다.


왜 결혼하면 여자는 시집간 집의 귀신이 돼야 하고

딸이 결혼하면 사위는 백년손님이 돼야 할까...


얼마 전 엄마와 tv같이 보고 있었다.

오래전 방영했던 "사랑과 전쟁"이었다.

부부가 살다 이혼하겠다고 법정에 와서 그간의 이야기를 판사 앞에서 얘기하면 거기에

연기자 신구님이 "4주 후에 뵙겠습니다."하고 끝나는 드라마 형태의 단막극이었다.


지방에 사시는 시어머니는 미리 연락 없이 집으로 찾아온다.

마침 외출했던 며느리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향하고 집 앞에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보고


"집을 비워두고 어딜 그리 다니냐"

"어머니 오셨어요. 오신다고 미리 연락을 주시지..."

"아니 아들집에 오는데 무슨 연락을 하고 오니."


집에 들어선 시어머니는 냉장고를 열어보고 찬장을 열어보고 며느리를 탓한다.

"저녁 차려라."


그 장면에 엄마와 난 작은 언쟁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저렇게 그냥 온다고? 미리 연락을 해야지."

"아들집인데 뭔 연락을 하고 가니? 남의 집도 아니고."

"아니지~엄마! 저긴 아들 집이 아니라 아들, 며느리 집이지!"


장면이 바뀌고 아들은 지방에서 혼자 사시는 어머니를 집에 모셔 같이 살고 싶다고 했고 며느리는 절대 못한다고 한다.


"에고, 아들이 엄마랑 같이 살고 싶은데 저 며느리가 잘못됐구먼."

"엄마, 시어머니와 같이 살면 누구와 제일 많이 얼굴을 볼 거 같아? 며느리야. 근데 그걸 아들이 의논이 아니고 결정을 하고 얘기하잖아. 그건 아니지."

"아니 아들이 엄마랑 살고 싶다는데 며느리가 왜 반대를 해."


더 이상 말이 통할 거 같지 않아 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 말도 맞고, 내 말도 맞다.


엄마가 보기엔 거긴 며느리 집이 아니라 아들집이고,

아들이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는데 왜 며느리가 반대를 하냐는 말씀...


내가 보기엔 거긴 아들 내외의 집이고,

한쪽 부모를 모시는 건 같은 공간에 누군가 들어온다는 것이기에 양쪽에서 합의가 이뤄줘야 하는 것이다.


효를 강요해서는 안된다.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에 부작용은 없는 것이다.



며느리와 딸.

내가 낳은 자식이 딸이고,

내가 마음으로 품어야 할 자식이 며느리다.

















11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암이셨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시아버님과 번갈아가면 번을 섰고, 내가 오후 12시에 가야 아버님이 가시고 다음날 아버님이 오전 11시 오시면 집으로 와서 잠깐 잠을 자고 다시 병원으로 가야 했다. 몸도 지치고 잠을 자지 못해 더 힘들었다.

기운이 없으셔 병실에서 변 처리를 해야 했어서 다른 누가 와도 어머니가 싫어하셨다.

아버님과 내가 아니고서는...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해 어머님과 병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머님이 아버님을 만났을 적에, 그리고 자식을 낳은 얘기, 삼촌들 얘기 등...

병실 사람들이 딸인 줄 알았다고 놀라던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며느리는 저렇게 못해."

그렇게 몇 달 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지금도 난 어머니를 생각하면 병실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땐 정말 힘들었다.

'다른 자식들은 안 하고 다른 며느리는 시키지 않고. 왜 나만 해?'

이런 생각에 짜증도 났지만, 병실에 앉아 미안한 얼굴을 하시며 기다리는 어머니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그렇게 힘들었던 그 시간은 지금 내가 어머니를 기억하는 추억이다.

병상에 앉아


"얘! 들어봐. 니 시아버지가 그때 뭐라고 했는 줄 아니? 새로 시집온 색시가 얼마나 이뻤겠니. 근데 무서운 시어머니가 이~렇게 눈 치켜뜨고 보고 있는데 이쁘다고 말고 못하고 손도 못 잡고 그랬다."


어머니가 회상하는 그 추억 속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하루하루가 지금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전부다.


며느리면 어떻고, 딸이면 어떻겠는가.

가족이기에 조금 손해 본다고 그 손해가 어디 가겠는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며 상대를 대한다면 상대도 언젠간 나를 위해 손해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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